회사를 떠난 후에야 보이기 시작한 것들
회사를 떠난 뒤에야
비로소 보이기 시작한 것들이 있다.
그전까지는 보지 못했다기보다는,
볼 여유가 없었다는 표현이 더 정확할지도 모르겠다.
일정과 성과, 책임과 판단 속에서
시야는 늘 ‘다음’에 맞춰져 있었고
멈춰 서서 돌아볼 시간은 허락되지 않았다.
가장 먼저 느낀 것은
시간의 속도가 달라졌다는 사실이었다.
그동안 하루는 늘 부족했고,
머릿속은 늘 해야 할 일로 가득 차 있었다.
하지만 모든 것이 멈춘 뒤,
같은 하루가 전혀 다른 속도로 흘러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 느린 시간 속에서
내가 얼마나 오랫동안
일과 나 자신을 거의 동일시하며 살아왔는지도
조금씩 선명해졌다.
나는 오랫동안
‘내가 하는 일’이 곧 ‘나’라고 믿으며 살아왔다.
프로젝트의 성과가 나의 가치가 되었고,
브랜드의 성장 곡선이
내 삶의 방향처럼 느껴지던 시간들이었다.
그래서 회사를 떠났을 때
단지 직장을 잃은 것이 아니라
나를 설명하던 언어의 상당 부분을
함께 내려놓아야 했던 것 같다.
또 하나 분명해진 것은
관계의 성격이었다.
함께 웃고, 함께 고민하고,
같은 목표를 향해 달려왔던 관계들조차
결국은 역할과 상황 위에 놓여 있었다는 사실.
그 자체가 틀렸다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그 구조를 너무 오래
절대적인 신뢰로 착각해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이 잘될 때는
관계도, 방향도, 말도 부드럽다.
하지만 상황이 바뀌면
관계의 무게와 말의 온도는
생각보다 쉽게 달라진다.
그 사실을 몸으로 받아들이는 데에는
조금의 시간이 필요했다.
반면, 변하지 않는 것도 있었다.
아무 설명을 하지 않아도
그저 그대로 받아주는 가족.
하루를 어떻게 보냈는지보다
함께 있는 시간이 더 중요한 사람들.
그 존재들은
내가 어떤 직함을 가지고 있든,
어디에 소속되어 있든
아무런 조건 없이 그 자리에 있었다.
그제야 조금 이해하게 되었다.
내가 그동안 지키려 애썼던 많은 것들보다
사실은 이미 충분히 단단한 것들이
내 곁에 있었다는 사실을.
회사를 떠난 지금,
모든 답을 얻었다고 말할 수는 없다.
앞으로 어떤 일을 하게 될지도,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게 될지도
아직은 정리되지 않았다.
다만 분명한 것은 있다.
이번 공백은
내 커리어의 실패라기보다는
나 자신을 다시 분리해서 바라볼 수 있게 만든
드문 시간이라는 점이다.
이제는
일이 나를 증명해주기를 기다리기보다
내가 어떤 사람으로 일하고 싶은지를
천천히 다시 정의해보려 한다.
회사를 떠난 후에야 보이기 시작한 것들은
어쩌면,
이전의 나에게는 필요 없었던 것이 아니라
너무 가까워서 보이지 않았던 것들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