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쉬지 못하는 사람을 위한 기록
회사를 떠난 뒤
나는 쉬고 있다고 생각했다.
정확히 말하면
쉬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된 김에
오랜만에 정말 제대로 쉬어보고 싶었다.
알람 없이 눈을 뜨고,
아무 일정도 정하지 않은 채
하루를 흘려보내는 것.
그게 쉼이라고 막연히 믿었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단 하루도 그렇게 쉬지 못했다.
지금이 4주 차인데,
여전히 그렇다.
몸은 분명 쉬고 있는데
머리는 쉬지 않는다.
눈을 뜨자마자
해야 할 일부터 떠오르고,
이미 끝난 프로젝트와
아직 시작하지도 않은 다음 단계를
혼자서 계속 오간다.
이게 갑작스러운 변화 때문만은 아니라는 걸
이제는 안다.
나는 오랫동안
쉼과 일을 분리해본 적이 없는 사람이었다.
돌이켜보면
나는 휴가를 가서도
제대로 쉰 적이 거의 없었다.
일주일씩 해외로 휴가를 가더라도
매일 노트북을 열어
메일을 확인하고,
급한 업무들을 하나씩 처리했다.
희한하게도
휴가를 갈 때면
사람들은 평소보다 더 나를 찾았다.
나는 그럴 때마다
‘브랜드를 대표하는 사람’이라는 책임감으로
휴가에 임했다.
쉬고 있다는 느낌보다는
다른 장소에서
조금 느슨해진 상태로
계속 일하고 있는 기분에 가까웠다.
물론 그럴 때면
아내는 늘 같은 말을 했다.
“이게 무슨 휴가야?”
그 말이 틀리지 않다는 걸
나는 그때도 알고 있었고,
지금은 더 분명히 알고 있다.
그럼에도 나는
그 방식을 문제 삼지 않았다.
그게 책임감이라고 믿었고,
그게 나의 역할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더 잘 성장했다고도 믿었다.
그래서 막상
아무도 나를 찾지 않는 지금의 시간 앞에서
나는 당황하고 있다.
어떻게 쉬어야 하는지
도무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그제야 인정하게 되었다.
나는 ‘쉬지 못하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는 사실을.
오랫동안
전력 질주만 해온 사람에게
갑자기 멈추라는 말은
생각보다 가혹하다.
멈추는 법을
배워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요즘은
조금 다른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본다.
어떻게 하면
정말 잘 쉴 수 있을까.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과연 쉼일까.
아니면
나를 다시 건강하게 만드는 방향으로
시간을 쓰는 것이
쉼에 더 가까운 걸까.
아직 명확한 답은 없다.
다만 분명한 건,
쉼 역시 연습이 필요하다는 사실이다.
이번만큼은
서툴러도 괜찮으니
쉬는 법부터 다시 익혀보려 한다.
이 시간이
다음 커리어를 준비하는 과정이든,
나 자신을 회복시키는 시간이든
어느 쪽이든 좋다.
제대로 쉬지 못한 채 다시 시작하는 일은
결국 나를
같은 자리로 되돌려놓을 가능성이 크다는 걸
이제는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요즘은
이렇게 글을 써 내려가면서
조금 다른 감각을 느낀다.
지금 써가고 있는 이 글들이
나의 쉼을 한 번 더 정리해주는 것 같다는 느낌.
머릿속에서만 맴돌던 생각들이
문장으로 정리되면서
비로소 숨을 고를 수 있게 된다.
그래서인지
덕분에
조금은 더 잘 쉴 수 있을 것 같다는
조심스러운 확신도 생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