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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운오 Mar 28. 2022

오르고, 내리고

긴 여행을 다녀왔다. 아주 오래전부터 바라 왔던 여행. 바다가 있고, 산이 있는 곳. 어떤 그림은 바라보는 것 말고는 달리 무엇도 할 수 없다. 파도처럼 밀려오는 풍경을 그저 바라보고 감탄하기에도 부족한 시간. 너무 쉬운 표현이지만 눈앞의 풍경에 압도되었다.


6시가 조금 넘은 시간. 양손에 스틱을 쥐고, 운동화에는 아이젠을 착용했다. 해도 뜨지 않은 시간, 사람들은 줄을 서서 입산을 기다렸다. 어디를 가나 확인이 필요한 방역 패스를 내민 후에야 산에 들어설 수 있었다. 한라산의 성판악 코스로 들어섰다. 겨울이 앉은 산은 아직 잠자고 있었다. 입구를 지나 산으로 들어서니 시야가 더욱 어두워졌다. 앞서간 사람들의 불빛은 이미 시야에서 사라졌다. 작은 빛이 사라지니 다시 어둠이 자리를 차지했다. 발을 내딛고 있지만 도통 길은 분간이 가지 않았다. 고개를 숙여 두 발과 스틱에 시선을 두고 걸음을 옮겼다. 뒤쪽에서 흐릿한 빛이 다리를 비추었다. 뒤이어 입산한 등산객의 라이트가 발아래를 비춰줬다. 이내 옆으로 지나쳐 멀리 사라졌지만 다른 사람들의 빛은 앞에서 뒤에서 계속 길잡이가 되어 주었다.


빛이 없는 길에서는 소리가 대신해주었다. 먼저 걸어가는 사람과 뒤에서 걸음을 재촉하는 사람의 발소리. 주변은 온통 나무와 눈뿐인 길. 사위가 슬며시 밝아졌다. 가파른 오르막이 없는, 대부분이 완만한 경사로였다. 얼마나 걸었을까 갑자기 시야가 밝아지고 주변이 눈에 들어왔다. 조용히 눈 뜨는 아침. 하얀 눈과 잎을 모두 떨군 나무들만 대부분이던 주변으로 길고 초록의 삼나무가 보였다. 돌연 사려니숲이 사방으로 펼쳐졌다. 서둘러 걸어야 했지만 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그런 풍경이었다. 하얀 눈밭, 위로 솟은 삼나무. 겨울에도 밝게 숲을 채우는 나뭇잎. 나는 우뚝 서서 주변을 둘러봤다.


사방으로 향하던 시선을 접고, 걸음을 걸어야 했다. 시간이 많지 않았고, 체력도 마찬가지였다. 아쉬움에 걸음을 늦추면 가장 높은 곳에는 갈 수가 없을 터였다. 그중 다행인 것은, 내내 했던 걱정과 달리 추위는 없었다. 걸을수록 오히려 심박이 빨라지고 몸에 열이 올라 입고 온 옷이 거추장스러워졌다. 마스크를 써서 안경에 김이 서리면 순식간에 풍경이 사라졌다. 그렇게 거추장스러운 옷과 마스크를 걸치고 1시간 30분 조금 넘게 걸으니 속밭 대피소에 도착했다. 첫 휴식처. 목까지 올렸던 점퍼의 지퍼를 내렸다. 옷 안 쪽으로 맺힌 습기와 열기가 밖으로 뛰쳐나왔다. 나와 비슷한 얼굴을 하고 앉은 사람들이 보였다. 손에는 간단한 요깃거리를 쥐고, 물을 마시고. 거친 숨을 고르고. 아주 잠깐의 휴식 후, 다시 걸었다. 그것이 한라산에 온 이유였으니.


본격적인 산행이 시작되었다. 가파르고, 숨이 차고. 올라온 것을 후회하는. 속밭에서 진달래 대피소까지.  3Km가 넘는 거리는 조금만 걸어도 숨이 가쁘고, 다리를 올리는 것이 힘겨워졌다. 가다 쉬다를 반복하면서 뒤쳐져 걸었다. 아무리 속도를 내려고 해도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분명 속밭까지는 전혀 어렵지 않았는데, 순식간에 산행이 아주 고달파졌다. 다시 돌아가기엔 너무 멀리 왔고, 힘을 내 오르기엔 많이 지쳤다. 어쩌면 처음부터 불가능한 일이라는 생각이 스쳤다. 몇 년에 걸쳐 처참하게 망가진 몸. 요즘은 일어나 걷는 것만으로도 발이 지치고, 누적된 피로에 하루를 다 보내고 나면 몸이 아프다. 그런 상태로 한라산이라니. 물론 최근에 꾸준히(고작 일주일에 한 번) 요가를 했고, 종종 따릉이를 타거나 강변을 걸었지만. 체력은 바닥이었다. 제주에 와서는 그 마저도 하지 않았고, 사려니 숲을 걷거나 오름을 몇 군데 오른 것이 다였다. 그리고 여행 막바지에 한라산에 온 것이다. 더군다나 나는 등산은 좋아하지 않는다. 백록담까지 오르겠다는 나의 말에 엄마도 수차례 되물으셨다. 정말 가는 거냐고. 등산은 좋아하지도 않고, 체력도 좋지 않은 내가 과연 가능할 것이냐는 아주 당연한 말씀. 진달래까지 오르는 눈길에서 멈춰 서면 온갖 말들이 머리를 스쳤다. 숨이 차서 주변 풍경은 돌아볼 여유도 없이. 다들 나를 앞섰다. 사람들이 산을 오르면 조금 기다렸다 다시 출발했다. 그렇게 멈추고, 다시 움직이기를 얼마나 했을까. 시야에 사람들이 들어왔다.


갈 수 있을까. 오를 수 있을까. 스스로 되뇌는 와중에 진달래밭에 도착했다. 9시 30분쯤. 입산한 지 3시간 정도가 지난 시간이었다. 눈 위에 주저앉아 다른 사람들처럼 컵라면과 김밥을 꺼냈다. 제대로 익지 않은 라면이지만 순식간에 국물까지 비웠다. 김밥 한 줄을 동행과 나누어 먹었다. 나머지 한 줄은 다시 가방에 넣었다. 허기를 채운 것이 아니라 없는 체력을 채운 것 같았다. 그렇게 또 잠깐의 휴식. 고민할 시간도 없이 일어섰다. 12시 전에는 백록담에 도착해야 했다.


얼마나 걸었을까. 이제는 하산을 하는 사람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여전히 겨울나무와 눈으로 덮인 산속에서 경치를 즐기지 못하고 발아래만 바라보며 걸었다. 열 걸음도 떼지 못하고 가에 멈춰 서서 숨을 고르고, 다시 오르고. 그렇게 산을 오르는 사이 누군가는 정상에 도착했다가 다시 내려가고 있었다. 잠시 멈췄을 때, 고개를 드니 파란 하늘이 보였다. 그리고 시선 너머에 높게 솟은 산이 보였다. 내가 올라야 할 정상이 너무 멀리 있었다. 정말 내가 오를 수 있을까. 불가능하다는 생각이 산처럼 솟았다. 그럼에도 뒤돌아 갈 수 없어, 스틱을 쥐고 아이젠을 눈에 박으며 다시 올랐다. 오르고 싶다는 생각보다 그저 갈 수 있는 길이 하나뿐이라 걸어야 했다. 무거운 다리를 움직이며 스스로에게 잘하고 있다고 말했다. 동행에게도 계속 물었다.


"나 잘 오르고 있지?"


밝은 빛에 눈이 녹아 걸음이 미끄러웠다. 그럴수록 다리에 더 힘이 들어갔다. 비틀거리고, 멈추고. 가쁜 숨을 쉬기를 반복하다 고개를 들었다. 눈이 부셔서 쓴 선글라스를 뚫고 밝은 빛과 하늘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시야에는 더 이상 오를 봉우리가 보이지 않았다. 길게 이어진 줄처럼만 보였던 사람들의 얼굴이 보였다. 누군가는 나처럼 거친 숨을 몰아쉬고, 또 누군가는 마스크 위로 활짝 웃었다. 다들 서서 기념사진을 찍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백록담에 올라 기념비 앞에서 사진을 찍으면 정상에 올랐다는 인증서를 받을 수 있다. 나도 줄지어 섰다.


언젠가는 꼭 오르고 싶다고 생각했지만 겨울에 올 거라고, 설산을 오를 거라고 생각 못했다. 그저 막연히 오르겠다는 다짐뿐이었다. 여행의 시작부터 준비했던 산행, 걱정했던 것처럼 힘들었지만 결국 정상에 올랐다. 스스로가 뿌듯해 다시 출발점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힘든 줄도 몰랐다. 산을 내려오는 길에는 다리가 아픈 줄도, 숨이 가쁜 줄도 몰랐다. 하산을 하면서 미처 둘러보지 못했던 풍경을 눈에 담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다. 정상까지 올라 백록담을 보고, 다시 내려가는 스스로가 대견스러워 마음이 벅차 다른 걸 담을 여유가 없었다. 그저 웃으며 가벼워진 다리로 아래로 아래로 향했다.


오르는 길에는 힘에 부쳐서, 내려오는 길에는 벅차서 나 말고는 누구도 돌아보지 못했다. 오롯이 나만 바라보며 했던 산행. 그저 나를 위한 여행. 이번 여행은 정상에서 설산의 광경을 보기 위한 것이라는 걸 깨달았다. 주변 풍경이 아무리 아름다워도 담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없었다. 어떤 풍경도 산을 오르며 보았던 나의 모습보다 중요하지 않았다.


나는 잘 오르고 있다. 나의 속도로 꾸준히 오르고, 내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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