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0000년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운오 Jun 09. 2022

모든 것을 슬픔이라


어린 나는 내가 가진 감정의 이름도 알지 못했다. 휘몰아치는 마음에 이름을 짓지 못하고 모든 것을 슬픔이라 말했다. 흘리는 온갖 종류의 눈물마다 다른 감정이 깃들어 있다는 것을 몰랐다.


방 안에 혼자 있기를 자주 했다. 즐겼다고 말하기엔 즐겁지 않았다. 자주 울었고, 불안을 안고 있었다. 사춘기를 맞이 한 십 대에도 주로 혼자 있었다. 하는 일이라곤 책과 만화책을 읽거나 텔레비전을 보거나 밤에는 라디오를 듣는 것이었다. 학교에서는 창 밖을 바라보는 것을 일 삼아 지냈다. 누군가의 말처럼 관심을 받고 싶어 그런 내 모습을 전시했을지 모른다. 사실 무엇도 바라보지 않고, 생각하지 않으며 보낸 시간이 대부분이었다. 그때의 감정이 외로움이며 고독함이었을지는 모를 일이다. 그저 나는 부를 줄도 모르는 감정을 몸소 전시했을 뿐이다. 그렇게 외로운 척, 고독한 척해야만 그 시기를 지날 수 있었다. 내가 가진 감정의 뿌리를 외면해야 했다.


언제까지 외면할 수는 없었다. 남을 속이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지만 나를 속이는 일은 불가능했다. 성인이 되어서도 나는 자주 외로웠고, 고독을 마주하는 순간이 잦았다. 이제는 스스로의 감정에 이름을 붙이는 것이 필요한 일임을 알았다. 아프고, 슬프고, 억울하거나 수치스럽기도 했다. 더러는 즐겁고, 행복하며 설레고 기대를 갖기도 한다. 언제부턴가 뿌리를 찾아 땅을 파고, 파서 캐내는 사람이 됐다. 이제는 외롭지 않고, 고독하지 않고는 시간을 지나갈 수 없게 됐다. 나를 바라보지 않으면 앞으로 갈 수 없게 됐다.(2022)

매거진의 이전글 그만하려고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