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보고 싶다
떠도는 글을 읽었다. 반려 동물이 말을 할 수 있다면 어떤 말을 듣고 싶은지.
‘아프다’였다. 글을 읽고 떠올랐던 말들은 순식간에 증발했다. 아프다는 말 뒤에 놓인 감정과 상황.
목이 메었다.
우리 집의 나이 많은 친구. 큰 수술을 세 차례나 받고도 회복이 빨랐다. 의사들도 놀랄 만큼. 여러 고비를 지나 2023년 여름. 크게 아팠다. 가지고 있는 병, 너무 많은 숫자 때문이기도 했다.
여름이 깊어지며 음식을 삼키는 일도 몸을 움직이는 일도 줄었다. 하루 중 절반 이상을 자고 나면 간간히 방을 돌아다니다 물을 마신다. 새벽이면 방바닥에 놓이는 작은 발소리에 잠에서 깼다. 물도 음식도 삼키지 않고, 몸은 점점 기운을 잃었다. 모든 일이 너무나도 갑작스러웠다. 아니, 그 작은 몸에서는 매일이 전쟁이었을지 모른다. 당장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입원 치료뿐. 의사는 좋지 못한 예후를 설명했다. 아픈 데다 나이도 많은 강아지이니까. 짧은 면회를 마치고 돌아올 때마다 울었다. 입원 치료가 도움이 되길 바랐다. 부디, 부디. 하루는 집으로 돌아가는 차에서 무지개를 발견했다. 아주 큰 무지개. 마치 우리 강아지가 잘 회복하고 집으로 돌아올 수 있을 거라는 암시 같았다. 부디.
3일의 입원. 치료는 소용이 없었다. 가족과 시간을 보내야 할 것 같다는 의사의 말. 계획보다 이른 퇴원을 하고 돌아오는 길. 조용히 몸을 뉘인 채 있던 모습. 많이 야위어 작은 몸은 더 작아졌고, 눈빛은 힘이 없었다. 이름을 불러도 반응은 작았고, 가만히 가만히 숨을 쉬었다. 조그마한 머리와 몸을 쓰다듬으며 집으로 돌아왔다. 자리에 누워 눈도 깜빡이지 않고 고개만 조금씩 움직였다. 물이나 사료를 주면 아주 소량만 삼키는 정도. 목 넘김이 보일 때마다 크게 칭찬하면서 울고 웃고. 온 가족이 둘러앉아 이름을 부르고. 모두 한 구석에 눈물을 머금은 채로 밤을 보냈다.
알지 못했다. 알고 있었지만 그저 어제와 내일과 다름없을 하루일 것이라 여겼다. 새벽부터 저녁까지 몇 번 울고, 웃었다.
'앙'
방을 울리는 소리. 잠시 모두의 시선이 다른 곳을 향한 순간이었다. 이제와 생각해 보면 마치 지금 자기를 바라봐 달라는 건 아니었을까. 가족들이 주위로 모여 이름을 부르고, 쓰다듬으니 다시 머리를 가누고 조용해졌다. 작은 몸의 작은 움직임. 아주 작은 움직임에도 마음은 크게 요동쳤다. 한 편으로는 아직 함께 할 시간이 조금 더 있다고 믿었다. 내일도 함께 아침을 맞고, 잠들 수 있을 거라고. 다른 날과 다르게 조금씩 거칠고 빨라지는 호흡을 들으며 옆에 누웠다. 부정하고 싶은 불안이 차올라 눈을 맞추고, 몸을 쓰다듬으며 더 가까이 누웠다.
하루가 넘어갈 즈음. 마지막 잠에 들며 뱉던 숨. 소리도 없이 홀로 멀리 가던 눈. 아무리 몸을 쓰다듬고 이름을 불러도 너무 빨리 달려 나갔다. 순식간이었다. 힘주어 외면해도 마주할 수밖에. 할 수 있는 것이라곤 머리와 등을 쓰다듬으며 말을 전하는 것뿐. 달리 무엇이 있을까. 행여라도 불편할까, 추울까 자리를 정리하고 다시 눕혔다.
안녕 귀여운 내 친구야 멀리 뱃고동이 울리면 네가 울어주렴 아무도 모르게 모두가 잠든 밤에 혼자서
안녕 내 작은 사랑아 멀리 별들이 빛나면 네가 얘기하렴 아무도 모르게 울면서 멀리멀리 갔다고
안녕, 산울림
모두가 잠든 밤에 혼자 멀리 간 친구. 아무도 모르게 멀리멀리 가 버린 친구. 울면서 갔을까. 모두가 함께여서 편히 갔을까. 무슨 말을 했을까. 짐작하고 가늠하고 미루어 생각하며 알 길 없는 마음을 헤아리는 일. 당장 할 수 있는 일의 전부.
옆에 누워 기억을 더듬었다. 함께한 시간이 오래되어 기억도 가물가물한 어제들. 여러 기억 중 좋아하는 몇 가지. 가만히 내 등에 등을 기대고 잠들던 밤. 맛있는 음식 냄새에 눈물 흘리던 모습. 내 베개를 침대 삼아 잠든 작은 몸. 이불속으로 들어오던 느릿한 걸음. 사진을 찍을 때면 카메라를 응시하며 멈추던 눈빛. 마치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표정과 몸짓에 절로 웃음 짓던 시간이었다. 매일 같지만 늘 다른 하루하루. 이제는 없을 일상. 당연하게 함께 보냈던 시간이 더는 오지 않을 내일이 되었다. 아프다 말할 수 있었다면 달랐을까. 울고 떼쓰며 옆에 있어 달라고 말할 수 있었다면. 듣지 못하고 놓쳤던 순간이 얼마나 많았을까. 미안함과 후회만 남은 밤.
입 밖으로 소리 내어 말하면 울까 속으로 삼키는 말.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