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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운오 May 19. 2020

하루에 하나씩

대여섯 개씩은 안 할래

동생은 나와 많이 다르다. 나는 천천히 걷고, 그는 늘 나보다 앞서 걷는다. 걷고 있는데 뛰는 것처럼 보인다. 하루는 동생이 운전하는 차를 타고 가고 있었다. 그는 운전을 하면서도 여러 가지 일을 처리하느라 바빴다. 그런 그에게 내게 말했다.


"너랑 같이 다니면 나는 숨이 차."


같이 밥을 먹고, 차를 마시고 앉아 있어도 내 마음이 조금씩 바빠졌다. 나는 하루에 하나씩 조금 서두르면 세 개까지 할 수 있는 사람인데, 동생은 하루에 다섯, 여섯 혹은 더 많이 해야 하는 사람이다. 그런 그를 따라다니다 보면 나는 겨우 하나를 했는데도 하루를 다 보낸 것처럼 지쳤다. 그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진이 빠졌다.


"난 네가 너무 답답해. 언니가 운전하는 차는 탈 수가 없어."


동생은 내가 운전하는 차는 도무지 답답해서 탈 수가 없다고 했다. 내가 일처리를 하고 있으면 세상 답답하다고. 나는 눈 앞에 있는 일을 하기 위해 한 걸음씩 걸어가고, 동생은 사방에 있는 일을 한 걸음에 다 하려고 한다. 그렇게 다른 우리는 서로를 보면 숨이 차거나, 숨이 막힌다. 그래서 어릴 때에는 그렇게도 많이 다투고, 서로 멀리 떨어져 있었나. 어른으로 사는 지금은 나와 그가 다르다는 것을 알고, 이해는 아니라도 인정은 할 수 있게 되었다. 동생은 내가 답답하지만 그런 나를 인정하고, 어떨 때에는 나보다 내 일에 앞서기도 한다. 그러면 나는 동네 아이들 앞에서 언니 뒤에 숨는 동생이 된다. 내가 못하는 걸 해내는 동생을 뒤에서 바라본다.


그는 하루를 이틀, 사흘처럼 산다. 나는 그와 함께 있으면 벅차지만 느리게 따라간다. 그리고 그에게 내가 필요하다면 한 자리에 머물 수 있다. 언제든 돌아올 수 있는 자리로. 내가 할 수 있는 건 언젠가 그에게 숨 돌릴 자리를 내어주는 것 정도가 아닐까. 어쩌면 내게만 할 수 있는 말들을 들어줄 수 있는. 그리고 가끔은 내 옆에 잡아두고 멈추게 해 줄 수 있는 정도.


같은 트랙을 다른 속도로 달리더라도 서로 어깨를 나란히 하는 순간은 꼭 오니까. 너와 나의 속도가 달라도 서로가 열심히 달려왔다는 것을 가장 가까이에서 봐 온 사이였으니까. 우리는 많이 다르고, 나눈 것이 많이 없어도 때로는 너무 쉽게 서로를 이해했다. 여전히 너는 내가 답답하고, 나는 네가 벅차지만 서로에게 솔직해지는 방법을 알아 가고 있는 것 같다. 여전히 자라는 관계. 가족도 너와 내가 자라야 유지할 힘이 생긴다. 누구라도 손을 놓으면 낯 모르던 이들보다도 더 쉽게 멀어질 수 있는 사이. 그렇게 멀어진 뒷모습을 많이 보았다.  


"엄마, 나는 하루에 하나씩 두 개씩만 하면서 살 거야. 다섯 개, 열개씩은 못 하겠어."


엄마에게 동생 이야기를 하며 말했다. 엄마는 웃었다. 나도 같이 웃었다. 나는 내 가족들과의 거리를 지키기 위해 솔직해지기로 했다. 그리고 그런 날 언제든 사랑해 줄 거라 믿기로 했다. 우리는 서로를 믿으며 쑥쑥 자라날 거다. 내가 있는 곳에 비가 많이 내리고 하늘도 꽃도 잎도 색이 짙어졌다. 엄마와 동생이 있는 곳은 아직 비가 내린다고 했다.


내일도 두 가지 정도만 하고 하루를 마무리할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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