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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운오 May 24. 2020

이제 여기 사람 아니네

유영하듯 살아보겠습니다

일주일이 지났다. 큰 결심을 한 것도 아니고, 엄청난 변화가 있지도 않다. 크게 다를 것 없는 풍경도 있고, 너무 많은 장면들이 달라지기도 했다. 낯선 곳에서는 일부러 다섯, 여섯 개씩 하지 않아도 하루가 빨리 간다. 하루에 하나, 두 개만 해도 하루가 짧다.


아이들의 시간은 빨리 간다고 했다. 모든 것이 새롭고 낯설어서. 그 날의 경험이 다 새 것이고, 처음이라서. 어른의 시간은 느리다. 매일이 같은 경험처럼 반복되고, 낯선 것이 드물어서. 하지만 요즘 나의 하루는 모든 것이 낯설고 새로운 경험처럼 느껴진다. 분명 전에도 했던 일이고, 이미 많이 경험했던 순간들이지만 어떤 날은 많이 낯설다.


새로운 동네는 낯설지만 또 정겹다. 장을 보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 익숙하지는 않지만 내가 떠나온 곳이 그립지는 않다. 아직은 이곳의 생활이 처음이라 익힐 것이 많아서 일까. 아니면 떠나온 자리에서 내가 많이 힘들어서 일까. 내 친구들은 다 그곳에 있다. 나만 여기로 왔다. 여기에는 나를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고, 내가 아는 사람도 없다. 나에게 익숙한 풍경은 모두 다 어제에 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내가 다시 어제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낯선 도시에서 열흘이 넘게 살고 있다. 맘에 드는 장소도 생겼다. 집에서 혼자 보내는 시간도 좋다. 익숙한 도시에서의 생활과 크게 다르지 않은 이곳에서의 생활. 아직은 정리하고, 매일을 꾸리느라 그리워할 시간이 없는 걸까. 낯선 도시가 익숙해지면 나의 하루는 다시 길어질까.


간밤에는 이 도시에 비가 많이 내렸다. 공기가 좋아 창을 열고 환기를 시켰다. 아직 정리가 되지 않은 자리 곳곳에 조금은 차갑고 깨끗한 공기가 스민다. 창 밖으로 바람에 일렁이는 나무가 보인다.


"이제 여기 사람 아니네. 거기 사람이야. 거기서 서울 사람으로 잘 살아봐."


떠나오고 며칠이 지나 했던 통화가 떠올랐다. 내가 나고 자란 도시는 거기에 있는데, 나는 이제 거기 사람이 아니라는 말. 내게 이 말을 했던 그이는 여기에서도 거기에서도, 그리고 저기에서도 그곳 사람으로 살았었다. 아마 내가 있는 곳에서 나로 열심히 살라는 말이겠구나 싶었다. 통화 끝에 잘 지내겠다는 말을 전했다.


나를 염려해 주는 이들에게 작은 다짐을 전한다. 나는 여기 사람은 아니지만 여기에서도 잘 살아보겠다고. 하루가 다시 길어져도 다시 쫓기듯이 달아나듯 살지는 않겠다고.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작가의 책 제목처럼 살고 싶다.


앞으로 내 '남은 날은 전부 휴가'입니다. 물에서 유영하듯 밖에서도 그리 살겠습니다. 창 밖에서 여전히 나무가 일렁이고 있다. 휠 듯이 휘지 않고, 계속 춤을 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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