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쁜 소식을 전합니다!

글 감 : 복 지

by 운오

고객님이 기다리시던 상품이 도착되었다는 기쁜 소식을 전합니다!
상품명 : 몬스테라 아단소니

그렇다. 결제했고, 도착했다. 상품명에 있는 몬스테라(이 녀석은 잎에 구멍이 뚫려 있고 낮은 키로 자란다) 말고도, 대나무 야자와 아지리 고사리도 함께다. 물론 외에도 다른 식물들이 벌써 함께 지내고 있다. 그중에는 다른 모양의 몬스테라와 아보카도 씨를 수경 재배해서 화분에 옮겨 심은 녀석, 만세 선인장, 아스파라거스, 홍콩야자, 문샤인 산세베리아. 그리고 최근에 먹은 아보카도 씨 세 녀석이 플라스틱 컵에 뿌리를 내렸다. 헤아리다 보니 생각보다 식물들이 너무 많다는 것을 깨닫고 있다. 지금껏 무수히 많은 화분과 기억하지 못할 식물들과 작별했다. 물론 최근에도 미니 홍콩야자 두 그루를 멀리 보냈다. 아, 이름까지 있었다. 지금부터 그들을 이름으로 불러야겠다. 가장 최근, 그러니까 8월 26일에 이별한 미니 홍콩 야자의 이름은 ‘야’이다. 그리고 이전에 더 빨리 떠나간 녀석은 ‘콩’. 다행히 홍콩야자 ‘홍’이는 씩씩하게 버티고 있다.


콩이를 떠나보낸 후, 식물마다 이름을 주었다. 애봇과 코스텔로. 샤샤샤(문샤인 산세베리아), 아쓰(아스파라거스), 자(만세 선인장). 그리고 이제 막 입성한 새 친구들은 아직 이름이 없다. 곧 그들에게도 어울리는 이름을 줄 거다.

그렇다. 나는 요즘 이들에게 내 온~ 마음을 기대고 있다. 내 이름을 부르듯 그들의 이름을 다정하게 부르려 한다. 명목상으로는 그들의 장수를 바라며 이름을 지었지만, 이를 구실 삼아 나의 안정을 찾기 위함이었다.

사는 게 힘들어질 때, 누구도 그리고 무엇도 위안이 되지 않았다. 가장 필요하다고 생각한 사람이 제일 큰 고통이 되기도 했다. 결국 입구도 출구도 없는 쳇바퀴만 열심히 돌뿐이었다. 그만두면 되는 것을 모르고 나를 탓하고, 너를 탓하고. 욕지거리를 뱉어가며 발만 굴렀다.

잠은 오지 않고, 온갖 불행은 다 나에게 오는 것 같고. 나의 의지로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검색하고, 결제하는 것밖에 없는 하루. 맘에 들고, 좋아 보이는 것을 나에게 주는 일. 아니, 가장 쉽고 빠르게 자신을 달랠 방법이었다. 유통기한 한 달짜리에 불과하지만, 그동안은 위안이 되니까. 그래도 식물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유통기한이 늘어났다. 물을 주고, 빛을 주면 더 길어졌다. 이름을 부르면 더 오래 함께 있지 않을까. 호명할 수 있는 것에는 분명 마음이 함께 자라지 않을까. 마음을 담아 부르면 그 마음이 담기지 않을까 싶어, 이름을 지었다.

운동도 시작했다. 마스크를 쓰고 하는 운동은 더 많은 숨과 체력이 필요하다. 열심히 땀을 흘리고 나면, 몸이 조금씩 가벼워지는 것 같다. ‘기분이’가 그렇다. 무게는 의미 없다고 되뇐다. 의미 없다. 무게는 의미 없다. 땀을 흘렸고, 기분이 가볍다 한다. 자신의 의지로 할 수 있는 것이 하나 더 늘었다. 몸을 일으키고 땀을 흘린다. 그렇게 움직이고 나면 자고 일어날 때, 아파야 할 자리가 아팠다. 허벅지와 어깨. 팔뚝과 엉덩이. 하루 반짝 아프고 나면 또 움직일 수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운동을 하면 어제를 돌아보는 시간이 줄어든다. 굳이 할 필요 없는 되새김질이 사라진다.

간밤에는 따릉이를 탔다. 두 시간짜리 일일권. 바비가 두고 간 비구름이 머리 위에서 빗방울을 떨어뜨렸지만 무르고 싶지 않았다. 페달을 밟아 성산에서 망원으로 다시 난지로. 두 시간을 꽉 채워 자전거를 탔다. 비도 좀 맞고, 땀도 흘리고, 또 울기도 하고. 집에 돌아와 개운하게 씻고 나와 잠에 든다. 이천 원으로 얻는 개운함 덕에 조금 더 깊이 잠들 수 있다.

자전거를 타거나, 운동할 때면 늘 노래를 듣는다. 요즘은 좋아하는 소설가의 소설 속 등장인물이 소개하는 재즈 피아니스트의 곡을 듣는다. 어떤 곡은 라이브여서 연주를 다 마친 후에 박수 소리가 함께 들린다. 그 박수가 마치, ‘당신의 완주를 축하합니다.’처럼 들려서 괜스레 좋았다. 거의 모든 드라이브 중에는 꼭 노래를 듣는다. 지금도. 물론 이를 위해서 매달 돈을 지불하고 있다. 8,960원.

직업이 없는 사람에게도 기본 생활을 위한 지출뿐 아니라 기호를 위한 비용이 계속 발생한다. 기타 생활자가 되었을 때는 생활을 제외한 거의 모든 비용을 줄이려 했다. 하지만 점점 삶의 폭이 좁아졌다. 사실 따져본다면 어마어마한 지출이 아님에도 덜컥 겁부터 났다. 마치 나의 모든 소비가 사치 같았다. 사실 엄청난 과소비를 한 것도 아닌데, 다섯 번 갈 카페 한 번 더 갔을 뿐인데.


마음을 기댈 수 있는 것들을 줄이고, 줄이며 삶이 건조해지고 말라갔다. 그렇게 척박해지는 내게서는 어떤 것도 새로이 자랄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래서 식물을 사고, 이름을 짓고, 운동을 하고, 좋아하는 커피를 꾸준히 마시며 노래도 듣는다. 그리고 지금은 글을 쓴다. 조만간 ‘기타’라는 직업에 ‘파트’라는 말을 남몰래 넣을지도 모르겠다. 다시 직업인으로 살 자신은 없지만, 기타의 삶을 지속하기 위해, 나의 안정적인 드라이브를 위해 매달 8,960원을 지불하고 싶어서다. 나를 위한 행복한 하루를 징검다리처럼 앞에 놓아두고 싶다.

새롭게 시작하는 9월에도 완주를 하고 싶다. 그리고 나의 이름을 부르듯 식물들의 이름을 다정히 부르며, 스트리밍으로 나에게 박수를 전할 거다.

‘당신의 완주를 축하합니다.’


개인적으로 글감을 받아 글쓰기를 계속하고 있습니다. 매주 메일로 글감을 받고 한 주에 한 편씩 글을 씁니다. 그렇게 쓴 글을 싣는 공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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