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감 : 샘 플
엄마의 서랍 속에는 화장품 샘플이 가득했다. 비닐에 싸인 엄지손가락 정도의 화장품 덩이가 서랍장에 늘 있었다. 과연 저 화장품을 다 쓸 수 있을지도 모를 양이 어떻게 항상 있을까. 아직도 알 수 없다. 엄마가 그 화장품을 다 썼는지.
“그거 다 담으면 화장품 하나 나오겠어.”
지나는 말로 내가 한 말이었다. 그럴 때면 엄마는 샘플의 다양한 사용법을 알려 주다. 목욕탕에 갈 때, 굳이 무겁게 화장품을 챙길 필요가 없으며 집이 아닌 곳에서 지내야 할 때도 그렇다. 그리고 샘플용으로 나온 화장품이 판매용보다 효과가 더 좋다고 말씀하신다. 샘플로 효과를 내야 제품을 사고 싶어질 테니까. 나는 그 말에 ‘아, 그렇구나’ 하며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샘플용 화장품을 손바닥에 가득 덜어내어 다리와 팔에 바르시는 엄마를 바라보았던 기억이 있다. 그렇게 엄마가 서랍 깊숙이 모아 둔 샘플은 이모와 엄마 친구 서랍에 들어가기도 했다. 샘플이니까 모두가 나눠 쓰기도 간단했다. 비닐에 포장된 채로 전달하면 끝이었다. 엄마도 이모도, 엄마 친구도 모두 다 다른 화장품을 쓰고 있었을 텐데. 샘플로 효과를 보고 그 제품을 산 사람은 있을까.
샘플에서 결정까지 이르는 과정. 과연 얼마나 될까. 가만히 생각해 본다. 샘플은 언제 쓰게 될까. 화장품 말고 딱히 떠오르는 것이 없다. 화장품 가게에 들어서면 온갖 제품이 진열되어 있다. 그리고 구매를 해도 내가 산 제품의 샘플이나 다른 제품을 샘플이라며 받게 된다. 솔직히 그렇게 받은 화장품을 거의 써본 적도 없다. 그리고 적은 양을 한두 번 사용한 경험으로 나에게 맞는지 맞지 않는지 알기도 어렵다. 대신 사람들의 후기를 찾아 읽는다. 물론 모든 글이 솔직한 글인지, 광고성 글인지 분간이 안 되지만 일단 그런 방법으로 제품을 고른다. 그렇게 찾은 화장품 중에 내 피부에 딱! 맞는 것을 찾기도 했고, 꾸준히 사용한 적도 있다. 하지만 문제는 따로 있었다. 바로 변화.
내 몸이 변했다. 나이가 들고, 생활환경이 바뀌며 몸도 바뀌기 시작했다. 내 맘 같지 않은 것들이 점점 늘어나는데 나도 그 ‘것’들에 추가됐다. 아주 작은 차이에도 몸은 크게 달라졌다. 매일 바르던 화장품은 다음 날 갑자기 쓸모가 없어졌다. 바르기만 해도 얼굴 전체에 이유를 알 수 없는 트러블이 생겼다. 아무리 비싸고 좋은 제품도 문제를 없애지 못했다. 방법은 나에게 맞고, 필요한 성분을 찾아야 했다. 사용해 보고, 문제가 생기면 바꾸기 일쑤였다. 그렇게 찾을 수 있으면 운 좋게 한 가지에 안착할 수 있었다. 운 좋게.
“그런 거야. 어릴 때 못 먹던 음식을 먹게 되는 것처럼. 식성처럼 마음도 변하는 거야.”
피부와 식성이 변하듯이, 마음도 변하는 것. 늘 같은 것,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는 말을 엄마가 내게 했다. 사는 것은 그렇게 계속 변하는 것이라고. 항상 같다고 생각하지만 결국 늘 같은 것은 없다고. 화장품은 변하지 않지만, 그 화장품을 사용하는 나는 달라지고 있었다. 변치 않을 것 같은 모든 것이, 내 몸도 마음도 지금을 살려고 계속 모양을 성질을 달리하면서 자신의 항상성을 유지하고 있었다.
오래되고, 상한 화장품은 버렸다. 더는 쓸 수 없으니 가지고 있을 필요도 없었다. 물론 버리지 않는다고 달리 방법이 있는 것은 아니니. 상한 물건은 없던 문제도 만들게 되니, 잘 버려서 문제를 줄이는 게 낫지 않을까. 그런데 오래되고, 변한 마음과 관계는 쉽게 버려지지 않았다. 문제가 생기고, 상처를 입으면서도 끌어안게 되는 것이 있다. 어떤 이들은 그런 모습을 멍청하다고, 실패했다고, 불쌍하다고 말한다. 그리고 나조차도 그런 자신의 모습을 처량하게 바라본다.
맘처럼 되지 않는 나를 보는 것이 힘들어지면, 모든 것을 그만두고 싶어졌다. 그런데 또 일어나면 계속하고 있는 자신을 본다. 오래되고, 상해버린 나를 버릴 방법은 없었다. 주변의 시선과 말들에 자신에게 새기는 흉터만 늘었다.
“힘들면 도망쳐요. 숨어 버려요.”
친구는 내게 말했다. 모두 남겨두고 도망치라고. 그래도 살 수 있다고. 그렇게 사는 삶도 있다고. 아픈 나를 멍청하다고, 실패했다고, 불쌍하다고 하지 않았다. 마냥 씩씩하고, 대단하다고 해줬다. 물론 무엇보다 나의 행복을 우선에 두라는 말과 함께. 그러다 웃는 날이 있으면 된 거라고.
샘플이라고는 화장품 살 때나 있었다. 그나마도 도움이 되었는지 모르겠다. 그래도 내가 살았던 어제는 나의 오늘에 아주 조금은 쓸모가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엄마가 내게 해주는 말, 친구가 내게 전하는 위로가 더해져 다시 일어나 운동하고, 밥을 먹고, 메일을 확인하고, 글을 쓴다. 내가 버리지 못하는 많은 것들이 남들에게는 보잘것없는, 서랍 속에 넣어 둔 샘플용 화장품 같을지 모르겠다. 그런데 지금은 버리지 않고 모아둔 샘플로 한 편을 섰다.
“엄마, 정말 다 담으니 한 병이 됐어.”
개인적으로 글감을 받아 글쓰기를 계속하고 있습니다. 매주 메일로 글감을 받고 한 주에 한 편씩 글을 씁니다. 그렇게 쓴 글을 싣는 공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