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감 : 라 면
‘뚜껑을 개봉 표시 선까지 열고 스프를 넣은 후 끓는 물을 용기 안쪽 표시선까지 부은 다음 뚜껑을 닫고 3분간 기다린 후 잘 저어서 드십시오.’
맛있는 음식을 좋아한다. 음식을 맛있게 만들어 먹는 것도 좋다. 설거지는 싫지만, 요리는 재미있다. 가끔 새로운 요리를 검색해서 집에서 가능한 것은 시도해 본다. 그럴 때면 올라온 레시피를 읽어가며 순서를 따라 한다. 소스를 만들 때도 평소라면 하지 않을 계량을 하고, 재료를 다듬는 방식도 레시피를 만든 이의 방식을 따른다. 그렇게 만들면 먹어보지는 않았지만 가까운 맛을 낼 수 있지 않을까.
다시 꼼꼼히 읽어 본다. 뚜껑을 개봉 표시 선까지 열어야 한다. 그리고 스프를 넣고, 뜨거운 물을 붓는다. 다시 뚜껑을 닫고 3분을 기다린다. 그리고 잘 저어서 먹는다. 내가 좋아하는 ‘컵라면’의 조리법이다. 아주 간단하다. 이미 머릿속에 박제되었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조리법을 따르지 않고 있다. 거의 모든 순서를 따르고 있지만 기다림의 시간은 3분이 채 되지 않는다. 그리고 생각해 보니, 뚜껑을 열어 젓가락으로 면발 위에 살짝 남은 스프를 잘 저었는지는 기억에 없다. 예전에는 스프가 면발 위에 남지 않게 면발 주변을 둘러서 넣었던 것 같은데, 이제 그런 수고는 하지 않는다. 쉽게 얻을 수 있는 만큼 주의를 덜 기울인다. 스프가 녹지 않은 채로 남아있어도 젓가락으로 면발을 쿡쿡 찔러 바닥으로 밀거나, 몇 번 휘적이는 것이 전부다.이지 컴, 이지 고. 이지이지 컴, 이지이지 고. 금방 사라진다. 대개의 한국 음식이 들이는 노동에 비해 맛으로 즐기는 시간이 짧다는 생각을 한다. 그런데 컵라면은 들이는 노동도 즐기는 시간도 짧다. 쉽고 빠른. 순서를 약간 어겨도 맛이 보장되는 음식. 반면에 직접 끓여야 하는 ‘봉지 라면’은 조금 다르다.
솔직히 라면을 자주 먹지 않는다. 거의 먹지 않는다. 먹게 되더라도 끓여 먹는 것보다는 끓는 물 붓기를 선호한다. 끓이는 라면은 조리법이 추가된다. 우선 냄비에 일정량의 물을 넣고 끓인다. 스프를 넣고, 면발을 넣은 후 다시 몇 분. 끓이는 시간도 라면의 종류에 따라 조금씩 달라진다. 물론 컵라면도 예외는 아니지만, 기다리기만 하는 컵라면과 기다리면서 면발을 잘 저어줘야 하는 것에 차이가 있다. 뭐, 컵라면은 기다린 후에 잘 저어야 하지만 끓여 먹을 때는 불 앞에 서서 잘 저어야 한다. 즉, 내 노동의 강도와 시간이 달라진다. 그렇게 끓인 라면은 냄비째 먹기도 하지만 나는 그릇에 다시 담아 먹는다. 그렇다면 내가 싫어하는 설거지가 노동란에 추가된다. 좀 더 솔직해지면, 라면 봉지에 적힌 일정량과 스프와 면발을 넣는 순서, 그리고 끓이는 시간도 정확히 지키지 않는다. 그렇게나 공을 들일 일인가 싶다. 하지만 그런 말도 들었다. 적힌 조리법대로 하면 맛있는 라면을 먹을 수 있다는 말. 음…….
어릴 적 동생과 라면을 끓여 먹었다. 어른들이 집을 비운 시간이면 나와 동생의 끼니를 챙기는 일은 내 몫이었다. 가스레인지를 쓸 수 있게 되면서 종종 라면을 끓여 먹었다. 그런데 동생은 내가 해 준 볶음밥도, 부침개도 찌개도 다 맛있다고 했지만, 라면은 맛없다 했다. 면이 불었다거나 국물이 싱겁다는 말을 들었다. 그렇게 라면 끓이는 일은 내 손에서 벗어났다. 대부분의 끼니는 내가 챙겼지만, 라면은 동생이 끓였다. 심지어 내가 물을 부은 컵라면도 동생은 맛이 없다고 했다. 왜? 나는 정해진 선까지 물만 부었는데? 동생이 말했다.
“컵라면은 선보다 조금 아래까지만 물을 부어야 해. 그래야 맛있어.”
그 시절 내게는 충격이었다. 그리고 이후에 알게 된 것은 많은 사람이 그렇게 컵라면을 먹고 있었다는 것이다. 심지어 이제 9살 된 내 조카마저 컵라면에 물을 부을 때, 당부를 잊지 않는다.
“이모, 선까지 물 다 붓지 마요.”
몰랐다. 모두 정해진 조리법처럼 물을 붓지 않았고, 끓여 먹는 라면도 정해진 재료 말고도 더 많은 재료를 추가해 각자의 레시피를 만들고 있었다. 계란을 넣고, 파를 넣고, 만두를 넣고, 소시지나 치즈를 넣기도 한다. 각기 다른 라면을 섞어 끓이기도 하고. 다들 어떻게 그렇게 다양한 방법으로 즐기고 있었을까. 이제부터 선까지 물을 부으면 안 될까. 그렇게 기다린 라면은 맛이 없을까.
여전히 선까지 물을 붓는다. 또 한 번 솔직해지겠다. 몇 번 아주 조금 모자라게 물을 부어 먹어 보았다. 그런데 나에게 그 컵라면은 짰다. 아주 작은 차이라 별 의미가 없을 줄 알았는데, 짠맛이 더 느껴졌다. 그 후부터는 그냥 전처럼 선까지 물을 붓는다. 하지만 여전히 3분은 채우지 않고, 조금 덜 익은 면발을 젓가락으로 쿡쿡 찔러 바닥으로 밀었다가 몇 번 휘적인 후 먹는다.
여전히 라면을 끓일 때도 정량의 물을 맞추지 않는다. 대충 맞추고, 스프를 넣고 물이 끓으면 면을 넣고, 적당히 저어준다. 계란을 넣고 노른자가 익기 전에 불을 끈다. 계란으로 탁해지는 국물이 싫어 계란을 넣으면 익을 때까지 잠깐 기다리기만 한다. 그리고 사실 내가 끓이는 라면은 내게도 그리 맛있지 않아 누가 끓여주는 게 좋다. 라면 끓일 일이 생기면 몇 발자국 뒤로 물러선다.
“내가 끓이는 라면은 맛이 없어요.”
설명서를 꼼꼼하게 읽고 일을 시작하는 사람이 있고, 만들면서 알아가는 사람도 있다. 끝내 방법을 찾지 못해 설명서를 다시 찾아드는 사람도 있고, 다른 사람에게 부탁해 마무리하는 경우도 있다. 비닐은 같이 뜯었지만 끝에 이르는 길은 모두 달랐다.
아무리 조리법을 따라 해도 내가 맛본 적 없는 음식의 맛은 확신할 수 없다. 레시피를 만든 사람이 만들고 싶었던 맛이 지금 내가 만든 음식의 맛과 같은지 알 길이 없다. 설령 그 사람이 만든 음식을 먹고, 비슷한 맛을 내기 위해 요리를 해도 마지막에는 결국 내가 원하는 맛에 가까워지기 위해 재료를 섞고, 다듬는다. 컵라면의 조리법조차 나에게 맞춰가는데, 더 노력을 기울이는 일에서는 더욱 나의 입맛과 취향이 중요해진다.
나는 선까지 찰랑하게 물을 붓고, 조카는 모자라게 물을 붓는다. 내가 조금 일찍 뚜껑을 열고 라면을 먹기 시작한다. 그리고 조금 후에 조카가 뚜껑을 연다. 조카는 식은 밥을 옆에 두고, 그 위에 라면을 덜어 먹는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국물을 밥에 부어 먹는다. 우리의 레시피는 달라도 같이 마주 앉아서 맛있게 먹는다. 그리고 가끔은 너의 방식을 따라 보기도 하고, 네가 나의 방식을 따라 주기도 한다.
시작해서 끝내는 방식이 서로 달라도 같이 가는 길이 즐거울 수도 있다. 조리법도 설명서도 읽지 않는 내가, 종종 조리법을 알려주고, 설명서를 읽어 줄 누군가를 만나도 된다. 너와 내가 가지고 있는 설명서가 다르다는 걸 기억하려고 한다. 쉽게 얻을 수 있는 만큼 쉽게 주의를 잃는다. 마주한 모든 것이 자연스럽게 당연하지 않다는 것을 잊는다. 물론 상대도 나의 다름과 고마움을 잊을 수 있다. 주의를 잃고, 서로의 목소리가 커질 때는 설명서를 천천히 읽어 주자.
“나는 선까지 물 부어줘.”
개인적으로 글감을 받아 글쓰기를 계속하고 있습니다. 매주 메일로 글감을 받고 한 주에 한 편씩 글을 씁니다. 그렇게 쓴 글을 싣는 공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