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신 없음'

글 감 : 머 신

by 운오

야구를 즐겨 본다. 물론 내가 응원하는 팀의 경기만 챙겨 본다. 광은 아니고, 그냥 본다. 야구에는 다양한 포지션이 있다. 그중 경기장 한가운데 서서 공을 던지는 투수가 있다. 메이저리그에서 공을 던지는 류현진의 포지션이다. 투수가 공을 던지면 포수 뒤에 선 심판이 볼 판정을 한다. 스트라이크인지, 볼인지.


야구 중계 화면에서 마운드에 선 투수가 던지는 공을 잡는 포수 앞에 직사각형 네모가 그려지는데, 그것이 가상의 스트라이크 ‘존’이다. 경기에서 볼의 기준을 가르는 스트라이크 존은 포수 뒤에 선 심판의 몫이다. 그가 그리는 가상의 직사각형을 벗어난 공은 ‘볼’이 되고, 그 안으로 들어와 포수의 글러브에 들어가는 공은 ‘스트라이크’가 된다.


경기를 보다가 간혹 심판의 판정에 고개를 갸웃한다. 방금 던진 공이 왜 스트라이크가 되지 않았는지. 어떻게 스트라이크라고 볼 수 있는 것인지. 아주 편파적으로 내가 응원하는 팀의 편에 서서 판단하게 된다. 그러다 심판을 욕하기도 하고, 공 던지는 투수를 욕하기도 하고.


사람이 하는 일이다 보니, 종종 모두에게 공평하게 느껴지지 않는 경우가 있다. 그래서 가끔 야구 경기 중에 ‘비디오 판독’을 한다. 심판의 판정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면 비디오를 보고, 다시 판정의 시간을 갖는다. 물론 매 경기마다 신청 횟수는 정해져 있고, 비디오 판독의 모든 결과에 수긍이 가는 것도 아니다. 아마 육안으로 확인하기 어려운 부분을 기계의 힘을 빌어 더 정확히 본다 한들, 결과를 유지할지, 번복할지는 사람의 몫으로 돌아가기 때문일까. 그런데 야구 경기에서 비디오 판독이 요구되지 않는 부분이 있다. 앞에서 이야기한 가상의 네모를 그리고 이루어지는 심판의 볼 판정 부분이다. 굳이 성역이라고까지 말할 필요는 없지만 마치 모두 동의하고 건드리지 않기로 한 부분 정도일까.


최근 야구 중계를 보던 중, 퓨처스리그에서 자동 볼 판정 시스템을 도입한 시범 경기를 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말하자면 로봇 심판이 투수가 던진 공에 대해 스트라이크와 볼을 판단하는 것이다. 로봇 심판이 내린 볼 판정이 심판에게 전달된다. 분명, 다양한 기계를 활용해 오차를 줄이고 정확도를 높여 논란을 줄이기 위함일 것이다. 그리고 경기 중 심판들의 오심을 줄이려는 노력이지 않을까 싶다.


실수를 최소화하기 위해. 오차를 줄이고, 가장 가까운 값에 다가가기 위해. 우리가 사용하는 기계는 다양해졌다. 그런데 때로는 너무 다양한 기계들을 접하게 될 때면 당혹스럽기도 하다. 사실 이제는 기계들이 변하는 속도를 내가 따라잡을 수 있을까 싶을 정도이다. 분명 기계를 만들고, 사용하는 것도 사람이 하는 일인데 가끔은 사람이 그 시간차를 따라가기에 급급하다는 생각도 든다.


지금은 어떤 매장을 가도 카드를 이용하거나 핸드폰 속 바코드로 계산을 한다. 그리고 패스트푸드나 포장을 주로 하는 매장에는 키오스크가 많이 있다. 굳이 점원과 마주하지 않아도 원하는 것을 주문하고, 찾을 수 있다. 지갑에 현금을 가지고 다니지 않은 지도 오래다. 솔직히 가볍고, 편하다. 오히려 카드로 결제할 수 없는 경우는 불편할 정도로 이런 생활에 익숙해졌다. 처음에는 당황스러운 모습이 당연한 일상이 되었다. 이제는 마스크를 쓰지 않는 내일을 생각할 수 없는 것처럼. 우리는 이전의 세상으로 돌아갈 수 없게 되었다.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시작되고 지나온 것 이전으로 온전히 돌아가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내가 모르는 사이에 너무 많은 일들이 일어나고, 변하고 있어 알아차릴 때는 이미 생활 깊숙이 들어와 있다. 당연하게 그 자리에 있었던 것처럼.


흐르는 물에 비누로 30초 이상 꼼꼼하게 손을 씻기. 특히 외출 후, 배변 후, 식사 전과 후에 그리고 아이의 기저귀를 갈아주기 전과 그 후에도, 코를 풀거나 기침, 재채기 후에는 반드시 손을 씻기. 기침할 때는 휴지나 옷소매 위쪽으로 입과 코를 가려야 하고, 호흡기 증상이 있을 시에는 마스크를 착용하고, 씻지 않은 손으로는 눈, 코, 입을 만지지 않도록 하며, 주위 환경을 자주 소독하고 환기한다. 코로나 19 예방법으로 사이트에 적혀 있는 항목들이다. 그런데 읽고 있으니 마치 미취학 아동이 된 것 같았다. 위의 항목들은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을 할 때 내가 늘 하는 말이었고, 아이들과 항상 지켰던 약속이었다. 밖에서 안으로 들어왔을 때에는 가장 먼저 손을 씻었고, 아이들이 화장실을 갔을 때, 그리고 나와 점심을 먹기 전에는 자신의 자리를 깨끗이 정리하고 손을 씻었다. 다 먹은 후에도 마찬가지로 자리를 치우고, 양치질을 했다. 감기에 걸리거나 호흡기 증상이 있을 때에는 아이들은 손과 옷소매로 입과 코를 가렸다. 혹시라도 자신이 기침을 할 때, 입을 가리지 못하면 옆에 앉은 친구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잊지 않았다.


다시 투수가 던지는 공으로 돌아가 보자. 로봇이 아닌 사람이 공을 던진다. 그 공을 치는 것도, 볼 판정을 내리는 것도 사람의 일이다. 운동장에서 공을 던지고, 치고, 달리는 것은 선수다. 다양한 기계로 오차를 줄이고, 가장 가까운 답을 찾을 수도 있다. 하지만 경기의 결과를 바꾸는 것은 결국 우리의 일이다.

아무리 빠르게 검사를 하고, 다양한 정보를 제공한다 해도 지금 우리는 사람이 사람에게 옮기는 병을 앓고 있다. 스스로 조심하지 않으면 결국 나를 둘러싼 주변에 피해가 가는 삶. 사람의 일이라 공평할 수도 없고, 나만 주의한다고 나아질 수 없다.


투수가 마운드에 선다. 투수의 공을 받아치기 위해 타자가 배트를 손에 쥐고 자세를 잡는다. 포수는 투수에게 사인을 보낸다. 직구인지, 변화구인지. 타자의 몸 가까이 공을 던질 것인지, 아니면 스트라이크 존을 벗어난 볼을 던질 것인지. 포수 뒤에 선 심판은 공이 어떻게 스트라이크 존을 향해 날아올지 바라보고 있다. 투수가 공을 던진다. 포수는 자세를 고쳐 잡고, 타자는 공을 보며 방망이를 휘두른다.


깡!


타자가 친 공이 위로 떠오른다. 수비수들이 달린다. 공은 누군가의 글러브 속으로 들어갈 수도 있고, 수비수들 사이에 떨어져 안타가 되기도 한다. 혹은 저 멀리 펜스 너머로 날아가 홈런이 될 수도 있다. 기계가 스트라이크 존을 정하고 결과를 말해준다 해도 공을 던지고 치고, 달리는 것은 모두 사람의 몫이다. 그리고 그에 따라 결과는 매일 달라진다.


‘백신 없음’


지금 이 생활에는 백신이 없다. 6살 조카는 집 밖으로 나갈 때 마스크를 잊지 않는다. 한 번은 횡단보도에 서 있던 조카가 엄마 옆으로 슬금슬금 다가왔단다. 횡단보도에 서 있던 할머니가 마스크를 쓰지 않았던 것이다.


“에고, 미안해. 내가 깜빡 잊고 마스크를 못했어. 다음에는 꼭 할게.”


할머니의 말에 조카는 고개를 끄덕였다. 조카는 이제 겨우 6살이다. 벌써 마스크를 쓰는 생활에 익숙해졌다. 이제는 유치원에 가지 못할까 걱정하며 하루를 보낸다. 실수와 오차를 줄이고, 편의를 위해 기계를 사용하는 우리가 백신 없는 이 생활에서 벗어나기 위해 사용할 수 있는 기계는 없다. 지금은 아이들과의 약속을 잘 지키는 것이 사람으로서 할 수 있는 최선은 아닐까.


개인적으로 글감을 받아 글쓰기를 계속하고 있습니다. 매주 메일로 글감을 받고 한 주에 한 편씩 글을 씁니다. 그렇게 쓴 글을 싣는 공간입니다.

이전 09화매일 같은 뽑기를 뽑아 들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