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을 읽는 것의 의미
이번 주말은 금요일 저녁부터 일요일 저녁까지 꽉 차게 흘러갔다.
친구네와 함께 지내며, 의도적으로 일/직장으로부터 분리되려고 했다.
엄마로서, 그냥 나로서 온전히 보낸 주말을 지키고자 했던 것은 그만큼 이번 주가 길고도 벅찼기 때문이다.
시험대에 오른 듯한 긴장감, 정말 이제는 못하겠다 싶은 지점의 재경험, 마음이 딱딱했다고 해야할까?
가톨릭 피정에서 들었던 단어도 마음에 오래 남았다. 우리 마음 속에 있는 탐욕과 사악함, 그리고 그것을 자선으로 베풀어야 든 것이 깨끗해진다는 말. 이해가 닿을 듯 닿지 않는 그 말들 앞에서 나는 오히려 내 안에 고여 있던 감정들을 들여다보게 되었다. 그리고 결국은 모든 것이 내가 주관할 수 있는 일이 아니며, 자연스러운 순리대로 흘러갈 것이라는 생각도 해 보았다. 애쓰지 않는 연습이었나?
햇살이 따뜻해서 좋았던 토요일 오후, 서울랜드에서 놀이기구를 타러 간 아이들이 잠시 자리를 비웠을 때, 친구가 조심스레 이야기를 꺼냈다. 내년 2학기에는 아이와 함께 2년간 캐나다로 어학연수를 데려갔다 올 예정이라고_
그 말을 듣는 순간, 내 안의 작고 외로운 아이가 갑자기 고개를 들었다.
덜컥 치밀어 오르는 질투심, 비교, ‘나는 왜 못하지?’ 라는 마음들. 요즘 누구보다 도망치고 싶은 심정이어서 더 그랬던 걸까. 아마 전날 밤, 나의 힘든 마음을 들었던 친구도 쉽게 꺼낸 이야기는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다 오래 전의 내가 떠올랐다. 스무 살, 그 즈음의 나는 내 힘으로 할 수 있는 일 중에 유학이 있을까를 고민한 적이 있었다. 가능성은 있었지만, 그만큼 두려움과 걱정도 많았다.
결국 실행하지 못한 건 능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용기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인지 가끔은 난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야 하는 극도의 스트레스 기간을 겪고 싶지 않다 라는 핑계를 만들어본다.
선택하지 않은 길을 조금이라도 덜 후회하고 싶은 마음.
하지만 이제는 알 것 같다. 문득 고개를 들고 올라온 질투라는 감정을 바라보면서_
나는 그 길을 못 간 사람이 아니라 내가 선택한 자리에서 다른 삶을 성실하게 만들어 왔을 뿐이라는 걸.
이걸 인정하면 비교의 마음이 조금은 무뎌진다.
하지만 내 마음속 아이는 아직 어려서 질투할 수 있고, 심술이 날 수도 있다는 것도 안다.
하루가 지나 일요일이 되어서야 친구에게 이렇게 말할 수 있었다. 가족 걱정없이, 일도 잠시 쉬어갈 수 있는 지금이 가장 좋은 시기일 수 있겠다고, 응원을 건내 보았다. 그 말을 건네며 내 속에서는 여전히 복잡한 감정들이 움직였다. 하지만 어른처럼 다듬은 말로, 괜찮은 사람처럼 보이고 싶은 마음이 씁쓸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일요일 밤이 되니, 당장 내일이 걱정되는 나와 새로운 생활을 계획하는 친구가 나란히 떠올랐다.
내 딸에게는 그런 선택지를 열어주지 못하는 것 같아 가슴이 조여오기도 한다. 언젠가 아빠도 나에게 비슷한 이야기를 하며 미안하다고 했던 기억도 떠올랐다. 그런데 사실 그 시기, 가장 친한 친구들이 어학연수, 유학 등 해외생활을 준비할 때 부러운 마음은 있었지만, 가만히 머물러 있던 것도 바로 나였다.
그래서 다시 생각한다.
우리는 서로 다른 길을 걸어가는 사람들이다.
나는 내가 선택한 책임과 삶을 하루하루 살아가는 중이다. 비록 지금은 버텨내듯, 또 힘든 터널을 지나고 있지만 분명히 의미가 있다는 것을 나는 이제 안다.
내 안의 작은 아이가 느끼는 감정을 억누르기보다 어떻게 돌볼 수 있을지를 생각한다. 감정들이 덜컥 올라올 때, 마냥 숨기거나 부끄러워하지 않고, 그저 바라보고 흘려보내는 연습을 해 본다.
‘아 지금 내가 부럽구나?’ 이렇게 느끼는 것, 말해 보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한때는 수치스럽게 느껴지던 감정의 파도도 그것을 인정하는 순간 절반은 잦아든다는 것을 경험하게 되었다. 그 파도는 이제 나를 휘몰아치지 못하고 잠시 머물다 지나가는 흐름이 된다. 그렇게 감정을 흘려보내는 동안 내 안의 작은 아이도 안정을 찾고, 조금은 성장했으면 좋겠다.
이번 주는 비교의 마음보다 나의 속도를 느끼며 살아보고 싶다. 감정이 올라오면 그저 ‘그럴 수 있지’하고 옆자리를 온전히 내어줄 테다. 그 어떤 사람과도 비교하지 않는 한 주, 나를 다그치보다 조금 더 다독여주며 한 주를 보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