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빛 대파를 마주하는 자세

다듬는 행위는 대파를 위한 것인가, 나를 위한 것인가

by 초록

나에게 대파 한 단을 산다는 것은,

삼시세끼 꾸준히 집밥을 해 먹겠다는 용기가 필요한 소비였다.


그러나 우리 집은 연두 혼자 먹는 평일 아침 식사, 둘이서 혹은 셋이서 먹게 되는 평일 저녁 식사

주말 두 끼 정도씩의 상차림을 하는 정도이기에 굳이 그런 용기를 내지 않았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요즘 잘 나오는 절단 대파,

더 비싸고 양은 적더라도 버리는 양이 현저히 줄어들기에 오히려 현명한 소비라고 생각하며 항상 가장 양이 적은 절단 대파를 구매하곤 했다.


파의 맛을 알게 된 연두는 요리를 할 때 냉동된 파보다는 싱싱한 파가 들어가는 것을 좋아하게 되었고, 나도 이왕이면 몇 번 안 하는 요리여도 냉동된 파보다는 신선한 파를 넣어 요리하고 싶은 마음에 대파 한 단을 사볼까 기웃거리다가 초록빛 대파가 너무 예뻐서 벌써 두 번이나 큰 대파를 구매해 봤다.


의도적으로 파기름을 내서 요리하고, 국이나 찌개에도 신선한 파를 넣고, 초록초록하고 신선한 향을 내는 대파를 자르는 행위도 요리시간을 즐겁게 하는 요인이 되었다. 한 단을 사서 아낌없이 먹겠다는 마음으로 어렸을 때 엄마 어깨나마 어렴풋이 보았던 장면을 기억하며 가져온 파를 모두 깨끗이 씻었다.

대파 뿌리에 달린 흙이 털려 나가고, 조금 시든 부분들을 떼어내고 나니 하얀색부터 연둣빛, 초록빛까지 내가 좋아하는 색깔들이 섞여있는 대파가 참 예뻐 보였다.


물기가 마르도록 바람 잘 통하는 스텐 볼에 담아 싱크대 위에 놓여 있는 대파 한 단,

어렸을 때 엄마가 그렇게 대파를 두면, 왜 저렇게 한 번에 많이 씻는 걸까 하며 의문을 가졌었는데 이렇게 물기를 털어내어 적당한 용기에 키친타월을 몇 겹 넣어 함께 보관하면 2주는 거뜬히 먹을 수 있다는 걸 알게 된 나이.


한 단의 대파를 산다는 것부터, 그걸 다듬어서 나의 요리에 넣어 연두에게 맛있는 밥상을 내어주기까지~

오늘은 문득 대파를 손질하며 기분이 좋았다. 이 대파를 다듬는 행위가 단순히 대파를 보관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나의 가족에게 좀 더 맛있는 밥상을 내어주기 위한 사랑하는 마음의 표출이자 대파 한 단 정도는 씻을 여유가 있는 기분 좋은 날이라는 의미였다.


그리고 내가 정성스레 다듬은 대파를 썩지 않게 끝까지 소비하기 위해 어떤 요리를 할까 생각해 본다.


파기름을 많이 낼 수록 향긋하게 맛있는 토마토달걀볶음 (연두의 아침메뉴)

따뜻한 게 먹고 싶을 때 만둣국을 끓여서 초록 부분의 파를 올려내기

삼겹살과 함께 내어놓는 파절임

연두와 함께 맛살, 햄, 버섯, 파를 꼬지에 끼워 만드는 우리만의 야매 산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