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제10조.나는 지체장애인, 뜨겁게 사랑하련다!_02

헌법 제10조

by 이종섭

大韓民國憲法

第10條 모든 國民은 人間으로서의 尊嚴과 價値를 가지며, 幸福을 追求할 權利를 가진다. 國家는 개인이 가지는 不可侵의 基本的 人權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義務를 진다.

---------------------------------------------------------------


제1부. 슬픈 인간들


2. 간질의 전조증상


밤부터 내리던 눈은 새벽이 되자 함박눈으로 변하였다. 최진호가 출근하기 위하여 일어날 즈음에는 마치 세상의 모든 비밀을 감추어버린 것처럼 집이며 도로 등이 온통 하얀 눈으로 뒤덮여 있었다. 그렇다고 일을 쉴 수도 없었다. 이런 날일수록 LPG 가스배달요청은 더욱 많아지기 때문이었다.

진호는 자신의 직장인 안성시 양성면 장서리에 위치한 ‘하나가스’라는 상호의 프로판 가스판매상 사무실로 나가 가스통을 싣고 배달을 시작하였다. 길이 미끄러운 덕에 평소보다 꽤나 많은 시간이 걸렸다. 아침 배달이 끝날 즈음엔 10시가 지나서였다. 마지막 배달처는 평택의 KR 사회복지원이었다.

이날은 날씨마저 몹시 추웠다. 실장갑을 낀 채 50kg용량의 가스통을 교체하고 난 다음 현관문을 열고 실내로 들어갔다. 이어 돈을 받고 돌아가려는데 휠체어를 탄 아가씨 류아영이 다가오며 진호를 불렀다.


“오빠, 커피 한 잔 타 드릴게요. 드시고 가요.”

“그럴까?”


눈이 내려서 그런지 오늘따라 아영이의 목소리는 더욱 낭랑하게 들렸다. 자주 만나는 것은 아니지만 올 때마다 커피를 타 주는 덕에 친해졌고, 그러다보니 그녀는 진호한테 오빠라고 불렀다. 동생이 없는 진호 또한 아영이가 오빠라고 부르는데 있어 조금도 싫지가 않았다.

그러나 진호는 가끔이기는 하지만 아영이를 동생이라기보다 여성의 한사람으로 볼 때가 있었다. 하반신을 못 쓰는 중증 장애인인 그녀는 겉으로 보기에도 무척 가냘프고 왜소하며 여성의 심벌인 가슴의 발육상태까지도 형편없어 보였다. 뇌성마비증세가 있는지 팔과 손의 놀림도 약간 부자연스러웠다. 하지만, 가느다란 목소리며 상냥하기만 한 미소 등은 여성스러움을 느끼기에 충분하였다. 지극히 여성스러운 하반신마비의 중증 지체장애인이라는 사실은 여자이면서도 여성으로서 사랑을 나눌 수 없는 선녀(仙女)에 다름 아니었다. 그러다보니 그는 가끔씩 신을 원망하는 투로 혼자 투덜거리기도 하였다.


‘신은 어쩌자고 저렇게 착한 여성을 선녀(仙女)로 만들었단 말인가?’


그러나 이런 진호의 마음은 그녀가 단순이 착한 여성으로 보였다거나 장애를 동정하고자 하는 뜻이 결코 아니었다. 자신도 모르게 아내에게 업신여김을 당하거나 아내와 말다툼을 할 때마다 두 사람의 인간성이 비교가 되기 때문이었다.

진호의 아내 이종숙은 성남시에 위치한 노래방에서 노래도우미로 일하던 시절 만나 사귀다가 아들을 하나 임신하는 바람에 결혼하게 된 여자였다. 직업이 그러했던 만큼 노래솜씨가 보통이 아니었으며 미모 또한 남에게 뒤떨어지지 않는 여자였다. 게다가 생활력도 무척 강했으며 재산에 대한 욕심도 많았다.

두 사람은 결혼을 했을 당시 진호가 모아놓았던 5천만 원을 자본으로 치킨 가게를 차려 운영했었다. 아내가 조금 사치한 편이었지만 진호는 무척 성실한 성격이었으므로 몇 년 동안 열심히 노력한 끝에 상당한 자금을 모아 아파트도 마련하였다. 처갓집에서 집을 산다고 할 때에는 수천만 원의 목돈까지 지원해주는 등 여유도 부렸고 딸 하나를 더 낳아 기르니 가정도 화목한 듯하였다.

그러나 두 번째로 낳은 딸의 첫 돌이 지날 무렵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하였다. 군대를 제대하고 나서 처음 발병했던 간질이 오랜만에 다시 재발한 것이었다. 그로부터 2년 후 또다시 발병했을 때까지만 해도 아내는 눈치를 채지 못했다. 집에 아무도 없을 때에만 경련을 일으켰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 다음에는 1년이 조금 지나서 발병을 했는데 장소가 하필 가게 안이었다. 가게 문을 닫기 직전 설거지하고 있던 아내 옆에서 거품을 입에 물고 쓰러져 약 2분간 실신하였던 것이다.

충격을 받은 아내는 이때부터 남편 진호를 대하는 태도가 달라지기 시작하였다. 부부관계도 기피하기 시작하였고 남편을 대하는 말투도 거칠어졌으며 처녀 때처럼 끊었던 담배도 다시 피우기 시작하였다. 나중에는 가게에도 나오지 못하게 하였다. 따라서 이때부터 아내는 혼자서 가게를 운영하고 남편은 총각 때 하였던 가스배달을 다시 시작하게 된 것이었다.

진호의 증세는 갈수록 점점 더 심해지는 듯 했다. 경련의 주기가 짧아지게 된 것이었다. 아주 빠를 경우는 한 달 정도, 보통은 두 달에 한번 정도 경련을 일으키곤 하였다. 의사가 처방해 주는 약을 먹어도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진호는 이상한 증상을 느끼기 시작하였다. 경련이 오기 며칠 전부터 가끔씩 이유 없이 얼굴이 달아오르는 등 긴장이 되는 것이었다. 특히 어떤 유혹에 직면하게 되면 강한 호기심을 느끼게 되는 경우도 있었다.

그날도 가스를 배달하던 중이었다. 사무실에서 2km정도 떨어진 안성시 양성면 노곡리 어느 농가에서 20kg들이 가스통을 교체한 다음 집주인 할머니께서 돈을 꺼내는 것을 우연히 목격하였다. 돈을 책상서랍에서 꺼내는데 상당한 돈뭉치가 있는 것이 보였다. 침을 칠한 손가락으로 뭉칫돈에서 낱장의 돈을 꺼내 주었는데, 그 방은 살림방이 아니라 창고였다. 살림방은 그 옆방이라는 사실을 진호는 옛날부터 이미 알고 있었다.

돈을 받아 사무실로 들어와 그날의 수금결과를 정산한 다음 집으로 돌아오는데 자꾸만 그 서랍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아냐, 그러면 안 되지.’


하고 생각하면서도 자신도 모르게 자동차는 그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날은 이미 칠흑같이 어두워졌다. 간헐적으로 불어대는 찬바람에 긴장의 강도는 점점 더해만 갔다. 머릿속에는 더 이상 아무 것도 생각이 나지 않았다. 문제의 농가에 다다르기 전 마을 입구의 도로 한 쪽에 차를 세웠다. 핸드폰 전원을 끄고 주위를 살폈다. 목표주택까지는 약 100여 미터, 아무도 지나가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 확인되었다. 실장갑을 낀 채 모자를 푹 눌러쓰고는 차에서 내려 빠른 걸음으로 다가갔다. 집 앞 전신주 뒤에 숨어서 보니 살림방의 불이 켜져 있어 인기척이 있는 듯하였다. 하지만 이 집에는 노인 두 부부만이 살고 있다는 것을 진호는 알고 있었다.

진호는 조심스레 서랍이 있는 방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는데 성공하였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서랍을 열어보니 돈뭉치는 온데간데없고 천 원짜리 20여장 정도만 남아 있었다. 당황한 나머지 우선 돈을 주머니에 넣은 다음, 다른 서랍을 두, 세 개를 연거푸 열어보았지만 아무 것도 없었다. 하는 수 없이 어둠 속에서 더듬거리며 나오려는 찰라, 쌓여있던 비료더미 위에서 연장 하나가 덜커덩 하고 떨어졌다. 안방에 있던 영감이 문을 열고 소리쳤다.


“누구여?”


그러면서 밖으로 걸어 나오려 하자, 진호는 다급한 나머지 방을 빠져나와 뛰기 시작하였다.


“도, 도둑이야!”


놀란 영감이 소리를 질렀다. 진호는 집 뒤쪽으로 돌아 뛰었다. 그러나 그곳은 다른 이웃집 마당이었다. 그리고 마당 한쪽에는 개장이 있었다. 그 개장에 묶여있던, 자신보다도 더 도둑같이 생긴 검은 개 한마리가 짖을 새도 없이 으르렁 하며 달려들어 허벅지를 냅다 물었다.


“어이쿠!”


진호는 넘어졌다. 그리고 땅바닥에서 한 바퀴 때굴 굴렀다. 개도 함께 굴렀다. 순간 개가 물었던 허벅지를 놓쳤다. 그러자 진호는 다시 뛰려고 일어섰다. 하지만 두 발걸음도 못 가서 다시 넘어지고 말았다. 아프기도 아팠지만 개가 다시 종아리부근 바지자락을 물고 늘어졌기 때문이었다.

이때 그 집 식구들이 몰려 나왔다. 50대의 남자가 달려들어 오른손으로 진호의 목덜미를 움켜쥐고는 왼손으로 따귀를 한 차례 후려 갈겼다. 모자가 벗겨지고 코에서 피가 쏟아졌다. 이때 그 남자의 부인 쯤 되는 여자는 어디엔가 전화를 걸었다. 아마도 경찰에 도둑 신고를 하는 것 같았다. 소리쳤던 영감도 쫒아왔다. 안면이 있음을 확인한 사람들은 피 흘리는 진호의 얼굴과 다리를 보고는 그만 때리라고 말려주었다. 이어 한참 후 경찰C-3 순찰차가 달려와 진호를 데려가 유치장에 수감시켰다. 다음 날 구속영장이 발부되었고 그로부터 5일 후 검찰청으로 송치되었다.



3. 법이라고 하는 것


-- 계속 --



이전 01화헌법제10조,나는 지체장애인, 뜨겁게 사랑하련다!_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