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법제10조.나는 지체장애인, 뜨겁게 사랑하련다!_03

헌법 제10조

by 이종섭

大韓民國憲法

第10條 모든 國民은 人間으로서의 尊嚴과 價値를 가지며, 幸福을 追求할 權利를 가진다. 國家는 개인이 가지는 不可侵의 基本的 人權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義務를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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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부. 슬픈 인간들


3. 법이라고 하는 것


“이름은?”


검찰조사관이 물었다. 진호는 얼굴이 몹시 창백해 있었다.


“편하게 대답해요. 알았어요?”

“최진호입니다.”

“나이는?”

“만 사십 세입니다.”

“전화번호는?”

“네?”

“전화번호! 핸드폰 없어요?”

“...”

“이봐, 최진호! 안 들려?”


그러나 진호의 눈동자는 이미 풀려있었다. 바야흐로 전조증상이 끝나고 경련이 시작된 것이었다. 이를 알지 못하는 조사관은 큰 소리로 물었지만 이미 의식을 잃고 있었다. 조사관의 큰소리가 떨어지는 순간, 진호는 책상을 걷어차고 옆으로 굴러 넘어졌다. 가슴에 양쪽 손을 힘주어 모으고는 쥐약을 먹고 바둥거리는 것처럼 부르르 떨기 시작하였다. 입에서는 거품을 뿜어내며 뿌드득 뿌드득 이를 갈았다.

기겁을 한 여러 조사관과 검사가 달려와 진호의 팔을 잡아 흔들어 보았다. 그러나 온 몸은 엄청난 힘에 의해 부러질 정도로 강력하게 굳어져있었다.


“머리를 옆으로 뉘어요.”


한 여성 수사관이 말했다.


“혀가 목으로 밀리면 기도가 막혀 위험해요. 그렇다고 입에 손을 넣으면 손가락이 잘려요. 그냥 가만히 있으면 곧 깨어날 거예요.”


그녀는 이런 증상에 대하여 상당한 경험과 지식이 있는 듯하였다. 그녀의 말대로 약 2분 후 깨어났다. 본인은 영문을 모르는 듯하였다. 다만 의식을 잃었었다는 사실만은 짐작하고 있을 뿐이었다. 천천히 일어나며 쑥스러운 듯 흘린 침을 손으로 닦아 내었다.

이후 진호는 구속적부심을 신청하지 않았으므로 구속은 계속 유지되었고 조사도 조심스럽게 계속 진행되었다. 정상 컨디션으로 돌아온 진호는 혐의를 대부분 순순히 인정하였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고 재판 날짜를 기다리는데 한 통의 소장이 배달되었다. 바로 아내가 청구한 이혼청구소송의 소장이었다.

소장에서 아내는 이혼을 요구하면서 아이들을 자신이 데려가 키우겠다고 하였다. 그러면서 전 재산의 4분지 3을 자신의 몫으로 달라고 청구하였다. 부부의 재산 형성의 기여도에 있어 자신이 남편보다 크다는 것이었다. 일시불로 계산한 아이들의 양육비와 위자료를 포함한 금액이라고 주장하였다.

재판이 시작되자 판사는 당사자의 이혼의사를 확인한 다음 재산분배에 대한 조정을 권고하였다. 권고 내용은 총 재산을 2억4천만 원으로 하여 원고가 소장에서 청구한대로 4분지 1인 6천만 원을 진호의 몫으로 하고 자녀양육은 아내가 한다. 라는 것이었다.

진호는 조정안이 부당하다고 주장하였다. 피고(최진호) 자신은 혼인 파탄의 원인을 제공하지 않았으므로 이혼을 원하는 원고(아내)가 피고에게 위자료를 지불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또 결혼 당시 자산은 모두 피고 자신의 것뿐이었고 자산의 평가도 2억4천만 원은 실제의 반밖에 되지 않는 것이며, 그동안 처갓집에 지원한 금액만도 5천만 원이 넘는다고 주장하였다.

뿐만 아니라 아이들도 아버지로서 충분히 양육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자신이 독자로서 아이들은 집안의 대를 이어야 마땅하므로 아버지와 함께 생활하며 자라야 할 뿐 아니라, 장애인도 아이를 키울 권리가 있는바 장애인도 아닌 지병이 있다는 이유로 자녀양육이 허용되지 않는다면 이는 차별이라고 주장하였다. 자신은 평소 아이들은 무척 사랑했으며 아이들도 아빠를 무척 따랐다는 사실 또한 추가하였다.

그러나 원고 측 변호사의 주장은 억지스러울 정도로 강경하였다. 장사는 함께했지만 아이들 육아와 살림살이까지 원고가 했으므로 원고의 기여도가 훨씬 크다고 주장하였다. 게다가 간질이 있으면서도 병력을 속인 채 결혼하였을 뿐만 아니라 절도까지 저질러 혼인생활을 함께 할 수 있는 처지가 아니므로 혼인파탄의 원인은 애초부터 피고에게 있는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이에 판사까지 여성의 의사를 가급적 참고하는 것이 현 시대의 재판 경향이므로 조정 권고를 따르지 않고 재판에 의할 경우 더욱 불리할 수도 있다고 압력을 가하였다.

진호는 앞이 캄캄하였고 자신의 질병이 원망스러웠다. 자신이 구속만 되지 않았더라도 동분서주 자문도 구하고 자료도 만들어 변호사를 선임하여 싸울 수도 있었으련만 구속된 몸이라 손에 쥔 돈도 없고 활동도 할 수 없어 모든 것이 불리할 수밖에 없었다. 더더군다나 생각지도 않았던 간질이 혼인파탄의 원인이 된다는 사실은 충격일 수밖에 없었다. 치료도 되지 않는 것을 어쩌란 말인가? 그렇다면 간질 환자는 결혼도 할 수 없고 자식도 낳을 수 없는 몹쓸 인간에 불과하다는 말인가?

기가 막혔지만 어쩔 수 없었다. 재산을 다 포기 하더라도 아이들만큼은 자신이 키우겠다고 사정을 해 보았으나 그마저도 허사였다. 진호는 될 대로 되라는 심정으로 자포자기하며 조정판사의 권고를 받아들이고 말았다.

이혼재판이 끝나고 나니 진호는 아이들과 아영이가 더욱 보고 싶고 그리워졌다. 아내와 비교해 볼 때 분명 인간은 여러 종류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내를 생각하면 마치 행복은 돈과 함께 하는 것만 같았다. 그동안 함께 살아오면서 돈에 따라 울고 웃는 것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그러나 아영이를 생각할 때 그녀는 전혀 다른 것 같았다. 그녀는 돈을 벌지도 않으며 가진 것도 없어 보였다. 따라서 그녀가 지금까지 자신에게 줄 수 있었던 것은 아마도 커피 한 잔이 전부였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진호는 그것을 결코 작은 선물이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그녀의 커피에는 항상 그녀의 상냥한 미소가 따랐으며 커피의 따듯한 온기는 그녀의 따듯한 마음이 녹아 있는 듯 하였기 때문이었다. 그것이 자신에게는 신혼시절 아내가 자신에게 해주던 보약보다도 몇 곱절 가치 있는 보약이었다. 아내가 해주던 보약은 어찌 보면 아내 자신을 위한 보약이었는지도 모른다. 아내는 잠자리에 불만을 가질 때마다 보약을 해 주었기 때문이었다.

겉으로 보기에 아영이는 결혼하여 아이를 낳을 수 없어보이는 하반신 마비의 여자였다. 따라서 그녀는 남자를 육체적으로 사랑할 수는 없을 것만 같았다. 만약 보통의 여성이 그러하였다면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여 삶의 의욕을 잃거나 자살을 시도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하지만 서른이 넘은 그녀의 표정 어디에서도 그런 느낌은커녕 우울한 내색조차 한 번도 표하지 않았다. 그녀의 표정은 항상 맑았으며 눈동자는 초롱초롱 빛났다. 실제로 그녀는 선녀(仙女)같았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구치소에서 생활하는 동안 절도사건에 대한 형사재판도 이어졌다. 재판정에 출정하는 날에는 포승줄로 온통 팔과 몸을 묶인 채 이동하였다. 재판정에 올라설 때에만 포박을 풀어주었으나 사람들이 바라보는 가운데 죄수복을 입고 서있는 다는 것은 참으로 죽을 맛이었다. 따라서 진호는 항상 고개를 방청석과 반대쪽으로 돌리려고 노력하였으며 항상 고개를 숙였다.


“서랍을 뒤져 2만4천 원을 훔쳤다는 공소사실을 인정하나요? ”


검사가 심문하며 물었다.


“네.”


진호가 대답하였다. 이번에는 재판장이 물었다.


“언제부터 계획하였나요?”

“계획한 것은 아닙니다. 저도 모르게 그만...”

“그럼, 충동적이었다는 말인가요?”

“네.”

“피고는 직업이 있지요? 수입이 어느 정도인가요?”

“가스배달입니다. 월 250만 원정도 법니다.”

“피고는 직업도 있고 부인이 가게를 경영하며 아파트 등 재산도 꽤 있는데 무엇 때문에 절도를 했나요?”

“제 자신도 잘 모르겠습니다.”

“습관적이라는 뜻인가요?”

“아닙니다. 그러니까 그게.....”


그러나 진호는 더 이상 말을 하지 못했다. 간질 경련이 오기 전에는 무언가 긴장이 되거나 충동적으로 행동하게 된다는 사실을 설명하기도 어려웠을 뿐 아니라 간질이라는 말 자체를 꺼내기가 싫었다. 차라리 징역을 몇 달 더 사는 한이 있더라도 그 병에 대한 것만큼은 이야기하고 싶지가 않았다. 너무나 자존심 상하는 창피스런 병이라고 생각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검사는 알고 있었고 수사기록에도 적혀 있었으므로 판사는 진호가 간질환자라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는 상태였다. 판사는 진호가 초범인데다가 수형생활을 하기에 적절치 않음을 감안하여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4. 그리움이 변하면


--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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