大韓民國憲法
第10條 모든 國民은 人間으로서의 尊嚴과 價値를 가지며, 幸福을 追求할 權利를 가진다. 國家는 개인이 가지는 不可侵의 基本的 人權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義務를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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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부. 슬픈 인간들
4. 그리움이 변하면
음악과 시(詩)를 좋아하는 아영이는 귀에 이어폰을 꽂고 옛날 영화주제곡인 ‘<부베의 연인>’을 듣고 있었다. 음악이 끝나자 혼자서 중얼거렸다.
‘누군가를 기다리는 것은 좋은 일이야. 오랫동안 만나지 못하면 슬픈 일이지만 그래도 희망은 있는 거잖아? 세상에 희망보다 좋은 것은 없어.’
그렇게 기다리니 정말 가스배달 차량이 달려왔다. 반가운 마음에 커피를 타고 기다렸다. 하지만 배달 온 사람은 진호 오빠가 아니라 사장 김영준이었다. ‘하나가스’에서는 진호가 구속되어 결원이 발생했음에도 배달원을 충원하지 않고 사장 김영준이 그를 대신하였던 것이다.
이를 알지 못하는 아영은 이상하게 생각하기는 하였으나 물어보지는 않았다. 뭔가 두렵도록 불안한 예감을 느끼기에 충분하였지만 너무 예민하게 반응하는 것 같아 참은 것이었다. 몇 년간 한 번도 다른 사람이 배달 온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날 밤 아영은 진호의 모습을 떠올리며 컴퓨터 앞에 앉아 일기를 썼다. 어쩌면 일기라기보다 보낼 수 없는 편지였는지도 모른다.
‘진호 오빠, 오늘은 왜 안 보이셨나요?
누구나 그러하듯 사람을 기다리는 것은 슬픈 일이거나 좋은 일일 거예요. 하지만 지금 오빠를 기다리는 나의 심정은 왜 이리 두렵기만 한 것인가요? 언제까지 오빠를 볼 수 있을까요?
나의 몸은 오늘도 점점 굳어져만 가고 있답니다. 그래서 일기도 컴퓨터로만 쓰고 있습니다. 오빠에게 편지를 쓰게 된다면 아무리 힘들어도 그것은 손으로 쓰고 싶어요. 기다리면 언젠가는 오빠에게 편지를 쓸 때가 오겠지요?
하지만 이런 생각은 마음뿐이랍니다. 오빠에게는 아무런 말도 전할 수가 없답니다. 정말로 나는 이런 말조차 오빠에게 전할 수가 없답니다. 용기가 없어요.
그래도 나는 만족해요. 가끔씩이라도 오빠를 볼 수만 있다면 말이예요.
지금 어디서 무슨 생각을 하시는지. 잘 자요, 오빠!’
그런데 며칠 후 다시 가스가 배달되었을 때에도 기사는 역시 오빠가 아닌 김영준 사장이었다. 아영은 불안한 마음을 감추지 못하고 결국 묻고 말았다.
“진호 오빠는 그만뒀나요?”
영준은 아영의 질문을 받고 그녀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걱정스런 표정이 역력하였다.
“아, 네, 잠시...”
영준은 곤란한 듯 머뭇거리며 대답하였다. 아영은 더욱 궁금해졌다.
“잠시요? 무슨 일이라도 생겼나요?”
“예. 조금 일이 생겼거든요. 한동안은 못 올 거예요.”
“못 오다니요? 나쁜 일인가요? 얼마나 있어야 다시 와요?”
“잘 모르죠. 하지만 다시 오면 꼭 들리도록 할게요. 죽지는 않았거든요. 하하...”
사장 영준은 말꼬리를 흐리며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웃어넘겼지만, 아영의 마음은 더욱 답답하기만 하였다. 불길하다 못해 걱정이 되었다. 이제 아영의 말소리는 질문의 단계를 넘어 사정하기에 이르렀다.
“사장님, 얘기 좀 해 주세요. 병원에 입원이라도 했나요? 그렇다면 제가 면회라도 한 번 다녀오게요, 가르쳐주세요. 네?”
이제 아영의 말투는 애원이었다. 아영과 친하게 지낸다는 소리를 진호한테 가끔 들었던 터라 난처하게 생각한 영준은 담배를 한 대 꺼내 물었다. 그리고 한 모금 하늘을 향해 뿜어댔다. 잠시 침묵이 흐르는 가운데 허공엔 하얀 연기가 둥근 도넛을 그리다가 천천히 흩어져 갔다. 대답을 기다리는 아영의 모습은 더욱 애처로워 보였다.
“오후에 잠깐 시간 있어요?”
작심한 듯 무거운 침묵을 깨고 영준이 입을 열었다.
“네?”
“오후에 만나러 갈 건데. 같이 갈래요?”
기왕 이렇게 된 바에야 마음으로 라지만 더욱 가까워지기 전에 모든 것을 솔직하게 알고 지내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영준은 생각하였다. 갇혀있는 진호에게도 위로가 될지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정말 만날 수 있어요? 그래요. 같이 가요.”
“하지만 조건이 있어요. 놀라지 마시고... 진호를 이해해 주실 거지요?”
“걱정하지 말아요. 친오빠나 다름없다고 생각하거든요. 준비하고 있을게요.”
기뻐하면서도 두려워하는 야릇한 표정의 아영을 보니 정말 진호 말대로 선녀나 다름없는 것 같았다.
아영은 점심을 마치고 나서 승용차를 몰고 다시 찾아온 영준과 함께 수원 구치소로 향했다. 둘은 신호등을 만날 때마다 가다 서다를 반복하면서 조심스레 말을 주고받았다.
“사실은 조그마한 실수로 구속되어 있거든요. 하지만 나는 진호를 잘 알아요. 본성이 무척 착한 사람이죠.”
“나도 그렇게 생각해요. 헌데 어쩌다가...”
“여자로 말하자면, 거 왜...”
“...”
“매달 한차례 씩... 있잖아요. 어떤 여성은 그때마다 자기도 모르게 백화점에서 슬쩍...”
“알아요. 신문과 tv에서 봤어요.”
“사실은 진호가 가끔 아프거든요. 경련을.... 언젠가는 알게 될 테니까 말씀드리는 겁니다.”
“그렇군요. 정말 안 됐어요. 글구 세상이 너무 슬퍼요.”
“게다가 엎친 데 덮친다고 이혼까지 하게 되었다지 뭡니까? 아이들을 부인이 데려가 키우겠다니 차라리 잘 된 건지 모르겠지만...”
백 밀러를 통해 뒤에 앉아 있는 아영의 모습을 슬쩍 바라다보니 창밖을 내다보는 표정이 초초하리만큼 어둡고 굳어져 있었다.
구치소에 도착하니 하얀 벚꽃이 천지에 휘날리고 있었다. 아영은 벚꽃 축제에 마음 놓고 구경을 다니는 사람들이 부러워졌다. 하지만 자신은 살아갈 수 있는 것만으로도 만족해야 하며, 어떤 경우에도 하늘을 원망해서는 안 된다고 스스로 마음을 달래고 또 달래었다. 지금은 그런 생각을 한다는 것 자체도 적절치 않다고 생각하였다.
영준이가 밀어주는 휠체어를 타고 면회소에 들어서니 실내는 면회 온 구속자의 가족들로 정신없이 붐볐다. 영준은 진호에게 넣어줄 영치품 몇 가지를 사서 접수시키고는 의자에 앉아 면회차례를 기다렸다. 면회차례를 알리는 전광판에는 쉴 새 없이 번호가 바뀌어 갔다. 그럴 때마다 면회객들이 물밀듯이 들어가고 나왔다. 시간이 갈수록 초초하기만 한 마음에 대화도 하지 않고 기다리는데 드디어 전광판에 진호를 면회할 방 번호와 접수번호가 나타났다. 아영은 ‘갇혀진 방 안에서 얼마나 갑갑했을까.’ 하고 생각하며 걱정스런 마음으로 방문을 열고 들어갔다.
구멍이 송송 뚫린 유리창 앞으로 다가간 아영은 가슴에 번호표를 단 미결수 복장의 진호가 수척해진 초라한 모습으로 의자에 앉아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순간, 참았던 감정이 일순간에 폭발하며 통곡에 가까운 소리로 흐느끼기 시작하였다. 눈물이 휠체어의 팔걸이 위에 뚝뚝 떨어졌다.
“오빠~, 흑흑...”
눈물은 멈출 줄을 몰랐다. 진호도 고개를 떨군 채 말이 없었다. 분위기가 지나치게 숙연하다 보니 진호 옆에 앉아있던 감시관도 머리를 옆으로 돌리고 말았다.
시간이 흘렀다. 얼마나 지났을까, 드디어 진호가 입을 열었다.
“이런 모습 보여줘서 미안해.”
아영이가 말을 받았다.
“괜찮아, 오빠. 힘 내. 흑흑...”
그리고는 더 이상 아무 말이 없었다. 스피카에서는 면회시간의 종료를 알리는 멘트가 흘러나왔다. 휠체어를 돌리며 문밖으로 나가면서도 진호를 향한 아영의 고개는 돌아갈 줄을 몰랐다. 진호 또한 아영을 바라보며 힘없이 터덜터덜 걸어 나갔다.
5. 춤추는 상상의 밤
--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