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제10조.나는 지체장애인, 뜨겁게 사랑하련다!_05

by 이종섭

大韓民國憲法

第10條 모든 國民은 人間으로서의 尊嚴과 價値를 가지며, 幸福을 追求할 權利를 가진다. 國家는 개인이 가지는 不可侵의 基本的 人權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義務를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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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부. 슬픈 인간들


5. 춤추는 상상의 밤


밤이 되고 달이 뜨자 절정을 이룬 창밖의 벚꽃 이파리들이 눈이 부시도록 아름다웠다. 오늘도 어김없이 밤은 깊어가건만 먼 하늘을 바라보는 아영의 마음은 갈수록 수심하기만 하였다.


‘어쩌자고 창가에 젖는 달빛마저 이리 밝은 것이냐?’


산들바람이 한차례 나뭇가지를 흔들며 구름의 그림자와 함께 마당을 스쳐갔다. 아영은 스치는 생각이 있어 컴퓨터 앞으로 다가가 전원스위치를 켰다. 그리고 오늘의 일기 대신 짤막한 몇 마디로 칸을 메워 나아갔다.


‘행여, 임이 오는 소리였어라.

창문너머 조용한 달빛이 흔들리면서

별빛마저 숨 죽여

두려움만 남아 있는 깊은 이 밤에

누군가 다정히 다가오는 소리

.............

하늘을 서성거리던 저 달이 기울어

모두가 사라질 때면

빛바랜 추억마저도 나를 외면 할거니


아마도 그것은 바람이었나 보다.’


타자를 치고 나서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한 시간정도가 지나자 온 몸에 피로감이 몰려왔다. 하는 수 없이 책상에서 손을 떼었다. 고개를 천정으로 향하고는 잠을 청하려 눈을 감았다. 그러나 좀처럼 잠은 오지 않았다. 시간을 보니 벌써 새벽 두 시를 지나가고 있었다. 또다시 허전한 마음에 이어폰을 끼고 음악을 틀었다. 먼저 베버의 ‘무도회의 권유’를 골랐다.

유혹하듯 흘러나오는 음악에 취하기 시작한 아영은 두 눈을 꼬옥 감았다. 이어 격렬한 빠른 템포가 폭발하듯 울리다가는 또다시 물 흐르듯 감미롭게 펼쳐지는 소리.

아영은 자신도 모르게 진호의 넓은 가슴에 안겨 춤을 추는 상상으로 이어져 갔다. 들판을 거쳐 숲속에 들어가니 온갖 백화가 방끗이 미소를 던지는 가운데 이름 모를 멧새들과 벌 나비가 함께 춤을 추자며 축복을 더해주었다. 어느 새 등에는 하늘을 나는 선녀처럼 날개가 펄럭이었고 긴 드레스는 파도를 일으키듯 위로 펼쳐지며 나풀거렸다. 가슴에 따듯한 온기가 느껴졌다.

그러나 음악이 끝나자 현실에 눈을 뜬 아영의 머릿속엔 실망감만 몰려들었다. 허리를 굽혀 휠체어에 의지한 자신의 빈약하기 짝이 없는 하체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허황된 꿈이었어.’


쓸쓸한 마음을 추스르며 이번에는 그레그의 ‘솔베이지의 노래’를 틀었다. 구슬픈 멜로디가 시작되자 또다시 눈을 감고는 슬픔을 공감하듯 속삭이었다.


‘오빠는 잘 견디고 있는지? 언제 다시 볼 수 있을 런지요.

남들처럼 사랑할 수는 없는 몸이지만 솔베이지처럼 기다릴 수는 있답니다. 누가 뭐라고 하던, 오빠가 무엇을 하던 나는 영원히 오빠 편이거든.

하지만 난 오래 살 수는 없을 거야. 우리 같은 장애인은 오래 사는 사람이 없다는 거, 난 잘 알아. 언제까지 살 수 있을지는 나도 몰라. 앞으로 5년? 아니 10년을 살지... 어느덧 왼쪽 팔도 말을 잘 안 들어 사용하기 힘들어졌거든.

그래도 오빠가 오면 커피는 타 줄 수 있을 거야. 오빠에게 커피를 타주는 시간만큼은 가슴이 저리도록 행복하답니다. 행복...’


힘들고 지친 몸은 다이아몬드처럼 반짝거리는 두 줄기의 눈물이 아영의 귓가에 강줄기를 만들면서 꿈을 꾸듯 서서히 잠 속으로 빠져들어 갔다.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에 눈을 뜨니 벌써 아홉시가 넘었다. 자신의 몸은 누가 올려놨는지 침대 위에 뉘어져있었다. 그러나 고개도 돌릴 수 없을 정도로 온 몸이 아팠다. 아영은 또다시 눈을 감았고 한동안 고통스런 꿈속을 해매고 말았다. 다시 깨어난 것은 오후 5시가 넘어서였다. 부원장 박영순 할머니께서 아영의 머리를 만지고 있었다.


“많이 아프지?”


부원장 할머니가 물었다.


“괜... 괜찮아요.”


아영은 죽어가는 듯 가느다란 목소리로 대답을 하였다. 말하기도, 숨을 쉬기도 힘이 들 정도였다.


“열이 좀 있었어. 오빠만 찾더군.”

“그랬어요, 제가?”

“그래, 하지만 곧 소식이 있겠지, 좋은 소식으로 말이야.”

“그럴 거예요. 오빠는 착한 사람이거든요. 절대 나쁜 사람 아니예요, 할머니.”


오빠에 관한 말이 오고가자 아영의 얼굴은 또다시 강줄기로 변해버렸다.


“그래 나도 그렇게 생각해. 우리 모두 함께 기도하면 좋은 결과가 있을 거야. 안 그래?”

“그럼요, 그렇구 말구요. 곧 좋은 소식이 있을 거예요.”


옆에 서 있던 장애인활동보조도우미로 활동하시는 정숙희 언니가 맞장구를 쳤다. 이어 부원장 할머니께서 말을 이었다.


“자, 그럼 우리 함께 아영이의 앞날을 위해 기도할까?”


모두 경건한 마음으로 눈을 감았다. 부드러우면서도 카랑카랑한 부원장 할머니의 소망하는 기도소리는 조용하던 실내를 더욱 숙연한 분위기로 만들어주었다.


“하나님 아버지시여!

여기 우리의 어린 양이 누적된 피로와 힘든 싸움을 벌이고 있습니다. 반쪽의 생을 살아갈 수밖에 없는 슬픈 운명의 선녀처럼, 외롭기 짝이 없는 산 속에 핀 한 송이 산나리처럼, 연약하고 여리지만 우리 곁에서 이토록 예쁘게 피어 있습니다.

우리의 어린 양은 풍요로운 숲의 그늘에 가려 햇볕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어린 시절을 지내왔습니다. 하지만 젖은 땅을 디디고 서서 줄기차게 희망을 속삭이며 보람차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름을 불러주는 이 없어도 밝게 웃는 입술은 선명하기만 합니다.

사랑하는 주님이시여!

우리의 딸에게 용기와 힘을 주소서. 태어날 때부터 홀로 떨어진 몸은 외로움조차도 너끈히 이겨내면서 오늘을 꿋꿋하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의 여린 생명에게 세상에 비바람이 불어도 눈보라가 휘몰아쳐도 조금도 두려울 것이 없이 내일을 향해 힘차게 나아갈 수 있도록 더욱 큰 용기를 주시옵소서. 하루 빨리 일어나 사랑하는 오빠를 만날 수 있도록 우리의 어린 양에게 힘을 불어 넣어 주시옵소서.

주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아멘.”



6. 똑같은 마음, 똑같은 육체


--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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