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제10조.나는 지체장애인, 뜨겁게 사랑하련다!_09

헌법 제10조

by 이종섭

제2부. 선녀가 인간으로


9. 첫 외출, 32년만의 데이트


사무실로 돌아온 진호는 도대체 마음을 가다듬을 수가 없었다. 가만히 있자니 두 남매의 어린 모습이 자꾸만 떠올라 견딜 수가 없었고, 아내를 생각하면 울화통이 터져 견딜 수가 없었다. 잠도 올 것 같지 않았다. 진호는 오늘을 넘기려면 어떻게든 기분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생각되었다.

다시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차를 타고 평택 사회복지원을 향하여 액셀러레이터를 힘껏 밟았다. 복지원에 거의 다다르자 약 50여 미터가량 남겨 놓고 길옆에 주차를 시켰다. 차에서 내려 천천히 걸어 다가갔다. 잠이 들었으면 그냥 되돌아가려는 속셈이었다. 그러나 아영이는 잠을 자기는커녕 창밖만을 물끄러미 내다보고 있었다. 조심스럽게 다가가 출입문을 두드리자 아영이가 진호를 발견하였다.


“오, 오빠, 오빠~!”


아영이가 소리를 질렀다. 동시에 큰 소리가 나도록 출입문을 활짝 열어제쳤다. 도우미 정숙희 언니와 부원장실에서 누워있던 할머니까지 소리를 듣고는 냉큼 달려 나왔다.


“안녕하세요?”

“어서 오게, 어서 와. 고생 많았지?”

“면목이 없습니다, 할머니.”

“그래, 하나님은 모든 죄지은 자를 다 용서하시지. 주님께서 우리의 죄를 대신 짊어지고 가셨다네. 그럼 그동안 하지 못한 이야기 좀 천천히 나누게나.”


할머니와 정 언니가 들어가자 아영이는 타 놓은 커피를 진호에게 내밀었다.


“이 커피도 오래간만이예요.”

“그래 그동안 잘 있었어? 우리 마당으로 나갈까? 산보...”


진호는 휠체어를 밀면서 밖으로 나와 자동차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방범등 불빛아래의 화단에는 철쭉꽃이 만발하여 있었다. 진호는 철쭉꽃 몇 가지를 꺾어 아영의 손에 쥐어주었다. 얼굴을 쳐다보니 어느새 화장이 젖어있었다.


“오빠 만나면 밝게 웃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는데... 자꾸만 눈물이...”

“괜찮아, 울고 싶으면 실컷 우는 것도 좋아.”

“근데 언제 나왔어, 오빠?”

“응, 며칠 됐어. 애들 때문에 정신이 없어서 그만... 늦게 와서 미안해. 우리 오늘 밤 한강 구경 갈까?”

“정말? 야, 너무 좋아. 나 한강 한 번도 못 가봤어요. 얼른 가요.”

“늦었는데... 지금 가면 오늘 못 들어올지도 몰라. 할머니께 말씀드려.”

“알았어, 걱정 마 오빠.”


아영이는 금새 웃는 얼굴로 변해버렸다. 그리고는 다시 되돌아 들어가서는 옷을 갈아입는 등 외출준비를 하고 나왔다. 자동차로 이동한 진호는 아영을 번쩍 들어 앞좌석에 앉힌 다음 휠체어를 접어 트렁크에 넣었다. 장애인에게는 앞좌석이 위험하긴 했지만 오늘은 왠지 그러고 싶었다. 그리고 다시 엑셀을 밟으며 달려 나아갔다.

올 때에는 조금씩이나마 밀렸던 고속도로가 이제는 소통이 아주 원활하였다. 제한속도를 20km쯤 초과한 120km정도로 밟아도 별로 위험을 느낄 수 없었다. 판교톨게이트를 지나니 소통은 더욱 원활해졌다. 계속해서 양재를 지나 서초를 거쳐 한남동에서 올림픽대로로 진입하였다. 한강을 가로지르는 개개의 다리마다 색다른 조명이 화려하기만 하였다.


“너무 좋아, 오빠!”

“정말 좋아?”

“응, 정말 좋아. 오빠하고 있으니까?”

“그래? 죽어도 좋아?”

“응, 죽어도 좋아. 정말.... 하지만 오빠는 살아야 해.”

“아니, 그 반대야. 난 죽어도 좋지만 아영이는 행복하게 살아야 해.”

“무슨 이유라도 있어?”

“난 사는 게 너무 고통스럽거든. 결혼을 하고 자식을 낳고 보니까 괴로운 일이 너무 많아.”

“오빠, 힘 내. 나 같은 사람도 살고 있잖아.”

“맞아. 난 아영이 때문에 힘을 많이 얻지. 우리 저기에서 구경 좀 할까?”


잠실공원으로 들어가 주차장에 차를 세운 다음 자전거도로를 따라 강가로 다가갔다. 아직은 차가운 강바람이 몸을 휘감아왔다. 진호는 가슴에 철쭉꽃다발을 안고 있는 아영이에게 윗저고리를 벗어 감싸주었다.

진호는 잠실대교를 오른쪽에, 잠실종합운동장을 뒤로하고는 강물 앞의 말뚝처럼 생긴 돌조각 위에 걸터앉았다. 강 건너 빌딩의 불빛도 아름다웠고 한강다리의 화려한 조명도 볼만했다. 하지만 강물은 아무런 소리도 없이 달빛을 흡수하며 묵묵히 흘러만 가고 있었다.


“저 강물 속 깊겠지?”


아영이가 진호오빠에게 살며시 기댄 채 나지막한 목소리로 물었다.


“깊겠지.”

“얼마나 깊을까?”

“궁금해?”

“응.”

“하지만 모르는 게 좋아.”

“왜?”

“세상은 아는 게 많으면 불행한 거야.”

“아는 게 많으면 왜 불행할까? 난 몰라서 불행한데.”

“이런 시가 있지. 들어 봐.


강물은 덧없이 흐르다가 / 폭포를 만나면 / 급격히 떨어집니다.

넓은 곳에서는 / 천천히 흐릅니다.

그냥 그렇게 흐를 뿐인데 / 뭘 그리 알려 하시오.

아마도 당신은 / 뛰어난 / 바보가 되려 하나 봅니다.”


아영은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그러네요. ‘강물은 그렇게 흐를 뿐’인데 뭘 알려고 하느냐”

“‘아영이와 나도 그냥 이렇게 살아갈 뿐’이야, 이유가 필요 없어.”

“‘뛰어난 바보’라는 것도 재미있어요. 우린 뛰어난 바보는 되지 말아야 해요.”

“무슨 뜻이지?”

“뛰어난 머리로 복잡하게 사는 거 보단, 그저 큰 고민 없이 평범하게 사랑하며 사는 것이 더 좋아요. 특히 여잔 그래요. 내가 촌스러운가요?”

“아니야, 아영이 말이 맞아! 지나친 페미니즘은 여성을 행복하게 하지 않아.”


진호는 이혼한 아내 생각이 났다. 뛰어난 머리로 돈은 많이 벌겠지만 결코 행복할 것이라고 생각되지 않았다. 공연히 아이들만 고통스럽게 만들고 있다고 생각하였다. 그러자 갑자가 초저녁에 헤어진 아이들 모습이 생각나고 머리가 혼탁해지기 시작하였다. 진호는 생각을 다른 곳으로 돌리기 위해 애를 썼다.

밤이 깊어갈수록 바람이 점점 차가워졌다. 진호는 왼팔로 아영이를 가볍게 감싸 안았다. 강 건너편 아파트와 빌딩들도 불이 하나둘 씩 꺼져가고 있었고 진호와 아영 사이에는 한동안 침묵이 흘렀다.

진호의 가슴에 기댄 아영은 자신이 지금 꿈을 꾸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진호오빠가 오기 전까지만 해도 한강의 강가에서 서울의 야경을 바라보며 단둘이 있다는 것은 꿈속에서나 가능한 일이었었다. 더군다나 연인처럼 어깨를 나란히 하고 깊은 밤을 함께 지새운다는 것은 소설에서나 나올 수 있는 낭만적인 이야기라고 생각하였다.


“오빠, 지금 나 꿈꾸는 거 아니지? 서울의 밤은 너무나 황홀해.”


아영이가 빙그레 웃으며 물었다.


“모르지, 나두. 꿈인지 생시인지 지금만큼은 아무런 고민이 없어서 좋아. 그리고 내가 너한테 해 줄 수 있는 게 이것밖에 없어.”

“내겐 너무나 큰 선물이야, 오빠. 지금 난 너무 행복해.”


진호는 안고 있던 팔에 살며시 힘을 준 다음 자리에서 일어섰다. 휠체어를 끌고 나가 차를 타고 공원을 빠져 나왔다.


“뭐 먹고 싶어, 좋아하는 게 뭐 있어?”

“오늘 안 먹어도 될 거 같아. 배고픈 줄도 모르겠어요.”


사실 아영이는 밖에 나올 기회도 별로 없었지만 설령 나오더라도 외식을 잘 안하는 편이었다. 왜냐하면 화장실이 급할 경우 이동식 변기를 사용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기 때문이었다. 더군다나 오빠에게는 어떤 경우에도 그런 것을 보여주거나 알게 하고 싶지가 않았다.


“오늘 같은 날 또 오기 힘들어. 부담 갖지 말고 맘껏 먹어.”

“음... 진짜 난 배 안고파. 나와서 탈나면 분위기 깨지잖아.”

“알았어, 그럼 노래방 가자.”

“와~, 좋다. 근데... 근데 난 노래 못하는데. 어떻게...”

“노래방은 스트레스 푸는 곳이지 가수 되는 곳이 아니야.”


잠실 시내로 나와 노래방으로 들어갔다. 안내자를 따라 복도를 지나가자 반주와 노랫소리가 시끄럽도록 들려나왔다.


“여기 사람들은 잠도 안 자나봐.”


지정한 룸에 들어가서 안내자가 기계에 시간을 찍어주자 팡파르가 힘차게 울려 나왔다. 노래곡목책장을 넘기던 진호는 탁자위의 리모컨으로 노래 한 곡을 찍더니 마이크를 잡고 일어섰다. 아영이가 화면을 바라보자 곡목은 듣도 보도 못하던 ‘내 몫까지 살아 주’라는 옛날 노래였다. 모니터 화면 아래에 가사가 나오자 진호는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였다. 노래를 모르는 아영이는 속삭이듯 가사를 읽어갔다.


“이 가슴 뜨거운 한 당신과 난 사는 것

사랑해 사랑한다. 당신만을 위하여”


아영은 가사를 읽으며 생각했다. 자신도 누구 못지않은 뜨거운 가슴을 가지고 있다. 라고. 하지만 세상은 지금까지 자신을 그렇게 보지 않았다. 그것은 단 하나, 자신이 장애인이라는 이유였을 것이다. 죽음이나 다름없이 반복되어지는 일상 속에서 실낱같은 희망을 바라보고 사는 전신의 지체장애인들, 누가 보조해주지 않으면 일상생활 뿐 아니라 목숨까지도 위협받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사회적 편견이란 장애인들 스스로 “뜨거운 가슴”을 가지고 있는 지조차 의심하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실상은 육체적인 장애와 정신적인 장애는 대부분 별개의 문제였다. 따라서 심한 육체적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라 해서 정신적 장애까지 함께 가지고 있는 것은 결코 아니었다. 아영도 마찬가지였다. 아영이는 한국K복지대학에 입학해서 졸업할 때까지 단 한 번도 장학금을 놓친 적이 없었다. 특히 아영이는 기억력이 뛰어났다. 고전음악과 시를 좋아해서 지금도 한시를 포함하여 시 200여 편을 술술 외울 정도였다. 그런 관계로 작년에는 한국K사이버대학교 3학년으로 편입하여 수학 중이었다.

진호는 아영의 마음을 읽어주듯 계속 노래를 불러주었다.


“.....................................

아아 슬픔을 참고 당신 행복을 나는 빕니다

내 몫까지 살아주오.”



10. 리비도, 나는 여자입니다.


--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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