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 제10조
제2부. 선녀가 인간으로
10. 리비도, 나는 여자입니다.
노래방에서 다시 밖으로 나오자 아영이가 물었다.
“이제 어디가요?”
“집에 가기엔 오늘 시간이 너무 아깝지 않아? 길거리에서 눕더라도 오늘 만큼은...”
진호는 지금까지 너무 열심히 살아온 것에 대하여 어느 정도 후회하고 있었다. 그는 술도 담배도 배우지 못하고 살아왔다. 총각 때 친구들과 가금씩 노래방을 다니기는 했지만 그것도 그리 즐기는 편은 아니었다. 가족과 함께 다녀온 여름휴가도 둘째를 낳기 전까지 뿐이었다. 여지 것 그는 한눈 한 번 팔지 않고 가족의 행복과 가정의 앞날만을 위하여 열심히 살아왔던 것이다. 하지만 지금 남은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재산도 돈도 모두 아내에게 빼앗기고 남은 것은 마음의 상처뿐이었다.
“그래요, 다 잊고 싶어요. 오늘만큼은 내가 장애인이라는 사실까지 다 잊고 싶어요.”
“아영이는 장애인이 아니야, 결코. 누가 선녀(仙女)를 보고 장애인이래?”
진호는 이기적이고 편협한 정신적 장애인은 아영이가 아닌 이혼한 자신의 아내라고 생각하였다.
자동차는 어느 새 이름 모를 모텔의 주차장으로 들어가 버렸다. 서로의 의사를 묻지도 않았지만 거부하지도 않았다. 배정받은 방으로 들어가서 커피를 한 잔 마셨다. 커튼을 열어 제치니 한강이 희미하게 보였다. 그 앞으로는 드물지 않게 자동차의 헤드라이트가 지나가는 세월처럼 빠른 속도로 움직이고 있었다.
침대 근처의 탁자 옆에서 아영이와 마주보며 빗겨 앉으니 서로의 눈길이 부딪혔다. 한동안 서로 말이 없었다. 하지만 심심하지는 않았다. 마음속으로 각자 상대방의 마음을 읽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진호는 천천히 아영에게 얼굴을 내밀며 가까이 갔다. 점점 더 가까이... 상대의 가느다란 숨결소리마저 들리기 시작하였다. 서로의 입술이 맞닿을 듯 좁혀오자 아영은 모든 것을 진호에게 맡기며 살며시 눈을 감았다. 드디어 맞닿는 순간, 찰떡같은 상대의 사랑스런 온기가 거침없이 밀려들었다.
태어나서 32년 만에 처음 마주치는 한 남성의 입술! 이 순간을 맞이하기 위하여 얼마나 길고 긴 인내의 시간을 견디어왔단 말인가! 평생 자기에게는 찾아올 것 같지 않았던 이 설레는 접촉의 순간, 자신도 모르게 환희를 느끼며 숨소리조차 조심스럽게 받아들여졌다. 누가 가르쳐주지도 않았지만 가슴을 열고 양 팔을 올려 진호의 목덜미를 꼬옥 감싸 안았다. 시간이 갈수록 숨은 거칠어지고 두근거리는 가슴의 고동은 커져만 갔다.
어느 순간, 신기루 같은 상상의 무지개가 걷히며 입술이 떨어졌다. 그러나 다시 부딪히는 애원의 눈빛, 또다시 입술은 포개지고 새로운 무아지경의 시간 속으로 깊이깊이 빨려 들어가고 말았다. 가장 아름답고 행복한 공주는 동화 속에 있는 것이 아니었다. 바로 이 모텔 방, 진호 앞에서 설레는 마음으로 앉아 있는 자기 자신이라고 아영은 생각하였다. 자신은 결코 장애인이 아니라, 한 남성의 뜨거운 사랑을 받고 있는 한 여성일 뿐이었다.
아영에게서 뿜어대는 살 냄새는 이혼한 아내와 전혀 달랐다. 진하지 않은 옅은 화장의 얼굴, 순진하도록 은은한 머릿속 향기에 진호는 자신도 모르게 도취되고 말았다.
셀 수없는 시간이 지나고 다시 떨어져 나간 아영의 입술은 달콤했던 여운을 참지 못하고 진호의 가슴에 깊숙이 파묻혀버렸다. 긴장이 가라앉을 무렵, 진호는 욕실에 들어가 먼저 샤워를 한 후 아영의 옷을 벗겼다. 따듯한 물로 사워를 시키면서 숨겨졌던 속살을 보니 피부가 붉고 무척이나 고왔다. 앙상한 두 다리는 불쌍해보였지만, 행여 상처라도 받을까 두려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사워가 끝난 후 침대위에 이불을 덮고 나란히 누웠으나 잠이 올 리 없었다. 진호는 오른손으로 팔베개를 해주고 왼손으로는 그녀의 부드러운 젖가슴에 올려놓았다. 뛰는 숨결이 느껴졌다. 진호는 아영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자못 궁금하였다.
가슴 위에 올려진 왼손에서 선녀(仙女)의 체온을 느끼고는 천천히 아래로 미끄러져 갔다. 허리 아래에 도달했을 무렵 선녀의 몸은 굳어지기 시작하였다. 숨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폭풍의 전야처럼 적막감이 돌았다. 왼손은 오대륙에 산재한 미개척지를 탐험하며 온갖 진귀한 음식을 맛보듯 사방의 굴곡에 기웃거렸다. 그러다가 예고된 운명의 길을 다시 찾았다.
조심스럽던 진호의 손에서 이성이 흔들렸다. 선녀의 처녀림을 헤치고 리비도(libido)의 옥샘(玉泉)에 다다르자 뜨거운 몸에서는 순간적으로 짧은 경련이 일었다. 리비도(libido)와 타나토스(thanatos)가 연합하여 마지막 남은 사회적 금기를 박멸하는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이제 타나토스(thanatos)가 베푸는 최소한의 절차만 있을 뿐 어떠한 도덕률이나 경건주의도 존재할 수가 없었다. 짓궂어진 손가락이 샘을 톡! 건드리자 놀란 선녀의 몸은 움찔하였다. 입에서는 멎었던 호흡이 터지며 리비도의 작은 탄성이 일었다.
거칠어진 손놀림이 거듭될수록 촉촉하던 샘은 어느새 홍수를 만난 것처럼 솟구치며 넘쳐흐르기 시작하였다. 대지가 젖었고 희롱을 일삼던 손까지 흠씬 젖었다. 선녀의 숨결도 점진적으로 거칠어져만 갔다. 더 이상 인내의 한계를 느낀 듯 온몸을 비틀려고 애를 써 보았다. 간헐적으로 일어나는 신비로운 전율의 진동은 뜨거운 혈액의 압력을 한 단계씩 올려놓고 있었다. 아영의 오른손은 흠뻑 젖어버린 진호의 손등을 힘차게 잡아당기며 치를 떨었다. 목 타는 갈증에 단비를 요구하듯, 다시 선녀의 두 팔은 진호의 목을 휘감으며 애원하듯 거친 신음소리를 토해내고 말았다.
“참을 수 없어!”
서로의 입술이 포개지며 진호의 몸은 순식간에 아영의 위로 올라가 모든 것을 덮어 버렸다. 타나토스를 앞세우며 단단하게 무장한 리비도는 무서운 기세로 돌진함으로써 질려있던 공포와 편견을 철저하게 파괴하였다. 여기 방향의 갈피를 못 잡는 순간순간에는 미래에 대한 잡스러운 걱정도, 과거에 쌓여온 후회도 아무것도 존재할 수 없었다. 남아있는 것은 오로지 미치도록 고통스러우며, 어지럽기 짝이 없는 비상(飛上)하는 희열뿐이었다.
아영은 숨을 크게 들이키며 백기를 높이 들어 터질듯 벅찬 마음으로 점령군을 받아들였다. 드디어 32 년 만에 존재의 이유가 규명되는 참으로 감격스럽고 성스러운 순간이었다. 여기 이 시간 어디에도 장애인은 존재하지 않았다. 이러한 엄연한 사실이 명명백백하게 증명되는 정의로운 순간이기도 하였다.
높이를 알 수 없는 가혹하도록 고통스런 시간들, 드디어 한참을 헤매던 암흑세계에 영광과 축복을 깨우치는 리비도의 샴페인이 힘차게 터져 나왔다. 황홀하게 쏟아지는 리비도의 물줄기를 흠뻑 받아들이고는, 섬광의 빛을 발하며 장렬히 산화해가는 본능의 슬픔을 다시 한 번 숨죽이며 감싸 안고 말았다.
이제 선녀 ‘류아영’은 지상에 존재하는 여성으로서의 마지막 권리인 리비도(libido)의 옥샘(玉泉) 마조히즘(Masochism)마저 체험함으로써 진정한 인간 ‘류아영’으로 당당하게 다시 탄생되었다. 방망이 치던 가슴이 진정되고 후희(後戱)마저 모두 끝났다. 아영의 얼굴에는 이유를 알 수 없는 두 줄기의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렸다. 아마도 태초에 하늘이 열려 처음으로 신비로운 환희를 경험한 한 여성의 가장 큰 감동적 카타르시스였으리라.
얼마나 지났을까, 해파리처럼 늘어진 진호는 머리 아래 받혀주었던 팔베개를 빼면서 조용히 잠이 들었다. 하지만 아영은 잠은커녕 산뜻할 정도로 점점 정신이 맑아져 갔다. 창밖에서는 강변을 달리는 자동차소리가 시끄럽게 들려왔다. 시간은 아침을 향해 새벽의 여명을 깨트리며 부지런히 나아가고 있었다. 천정을 바라보는 아영의 머릿속에는 어제 밤부터 지금까지의 모든 과정이 필름처럼 펼쳐지며 지나갔다.
두 귓가로 떨어지는 의미 있는 눈물은 베개를 흥건히 적시고도 그칠 줄을 몰랐다. 창밖의 어둠이 걷히고는 또다시 시간이 지났다. 눈부신 새 세상 아침의 햇살이 창문을 넘어 방안 구석구석을 밝혀주고 있었다.
제3부. 천형(天刑)
11. 흔들리는 여심
--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