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 제10조
제2부. 선녀가 인간으로
8. 눈치 보는 아이들
화요일 저녁 일곱 시가 되었다. 진호가 아이들과 만나기로 약속한 시간이었다. 즐거운 마음으로 어린이놀이터로 달려간 진호는 사가지고 간 과자봉지를 아이들에게 하나씩 나누어주었다. 그러나 아이들은 어쩐 일인지 선뜻 받지를 않고 머뭇거리며 주저주저하였다. 표정도 그리 밝지가 않았다. 그러다가 선아가 먼저 봉지를 받으면서 오빠의 눈치를 보는 것이었다.
“먹어도 돼, 오빠?”
“응, 먹어.”
뭔가 이상했다. 그러나 지수도 곧 마지못해 손을 내밀어 받아 쥐었다. 그리고는 입을 열었다.
“엄마가 아빠 만나면 혼날 거라고 했어요.”
“그래? 엄마가 알아?”
“저번에 아빠 왔다 간 날 사다 준 빵을 보고 엄마가 아빠 온 거 알았어요.”
“그래구나. 그럼 과자는 여기서 다 먹고 가져가지 말아. 또 먹고 싶은 거 없니?”
진호는 아이들과 이야기를 하면서도 너무나 분한 마음에 당장 아내를 찾아가 한바탕 싸우고 싶은 생각이 치밀어 올랐다. 그렇지만 아이들에게 보복이 갈까봐 억지로 참고 또 참았다.
“아빠! 응... 우리 데려가면 안 돼?”
막내 선아가 물었다.
“나중에 조금 더 크면 아빠가 데려갈게. 알았지?”
“지금 데려가, 나 외할머니 무서워.”
“외할머니 오셨니?”
“아빠 간 다음부터 외할머니가 우리 집에 와 있어. 잔소리 듣기 싫단 말야. 회초리도 갖다 놨어.”
“그래도 너희들 잘되라고 하는 거야. 말씀 잘 들어야 이담에 아빠가 데려가지.”
진호는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것을 알면서도 회초리까지 갖다 놨다는 소리를 듣고는 아이들을 달래주려고 마음에 없는 소리를 하였다. 아이들이 회초리로 얻어맞는 다는 것을 상상하니 가슴이 찢어지는 듯 아팠다. 그러면서도 훗날 경제적으로 안정이 될 때 어쩌면 아이들을 데려갈 수 있을 런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였다. 외할머니가 아이들을 때렸다는 소리만 나오면 아동학대를 이유로 법원에 양육권 반환소송을 청구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꿈이었다. 지금은 모든 여건이 안 되므로 아이들을 자주 만나면서 마음을 달래주는 것 외엔 할 수 있는 일이 아무 것도 없었다. 잠자코 있던 지수가 말을 꺼냈다.
“우리 곧 이사 갈 거래요.”
“왜?”
“아빠 병 때문에 동네사람들이 뭐라고 한데요. 나한테도 유전된다고 했대요.”
“그, 그래? 어디로?”
“이 근처인가 봐요. 나도 잘 모르겠어요.”
“다행이구나! 멀리 갈까봐 걱정했는데....”
이때였다. 갑자기 아이들끼리 서로 눈빛을 마주치더니 다른 한 곳을 주시하였다. 아이들의 표정은 겁에 질린 것처럼 순식간에 어두워졌다. 진호도 아이들을 따라 그쪽을 바라보니 30미터쯤에 아이들의 외할머니가 뒷짐을 지고 서 있었다. 그동안 외할머니는 아이들을 감시하면서 대화내용을 엿듣고 있었던 것이었다. 진호는 두려웠다. 온 몸에 경련이 이는 듯 전율을 느꼈다.
지수는 불과 한 달 남짓 지나는 동안 나이보다 더욱 어른스러워진 것 같았다. 아니 눈치만 빨라진 것인지도 모른다. 지수는 먹다만 과자의 봉지를 살며시 땅바닥에 내려놓았다. 그리고는 힘없이 고개를 숙인 채 할머니께로 돌아서려고 동생 선아의 손목을 잡아끌었다. 동시에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아빠에게 인사를 하였다.
“아빠, 갈게요.”
하지만, 어린 딸 선아는 오빠를 따르지 않았다. 오빠가 잡은 손을 힘껏 뿌리쳤다. 그리고는 먹다만 과자 봉지를 내동댕이치며 땅바닥에 털썩 주저앉아 숨이 넘어갈 정도로 울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으아~ㅇ, 아~ㅇ”
돌발적인 상황에 당황한 진호는, 사랑하는 딸 선아를 번쩍 잡아 올려 왼쪽 가슴에 덥석 끌어안았다. 그리고는 딸의 등을 두드려주며 달래주려고 애를 써 보았다. 하지만 서럽도록 찢어지는 선아 울음소리는 아빠의 품속에 고개를 묻은 상태에서도 그칠 줄을 몰랐다. 아빠의 가슴은 금새 흥건하게 젖어버렸다. 아빠는 외할머니에게 조금씩 다가가며 사랑하는 마음으로 더욱 힘껏 선아를 끌어안아주었다.
“선아야, 아빠가 곧 데리러 올 거야. 조금만 기다려, 응?”
그러나 선아는 더욱 크게 몸부림치며 발버둥을 쳤다. 울음소리도 더욱 커져만 갔다. 진호는 선아의 외할머니 앞에 다가가서도 한동안 움직이지 않은 채 선아를 껴안고 울음이 그치기만을 기다렸다. 한참 후 진호는 겸연쩍은 듯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그래, 미안하네.”
“죄송하지만 오늘 하루만 제가 데려가면 안 될까요?”
“이 사람아, 내 생각도 좀 해야지. 알면서 그런 소릴 하는가?”
그러면서 외할머니는 선아를 노려보며 칼날 같은 한마디를 내 던졌다.
“뚝!”
외할머니의 눈초리는 매섭도록 날카로웠다. 분위기는 갑자기 살벌해졌다. 그칠 줄 모르고 소리치던 선아도 외할머니의 눈빛과 마주치자 공포에 질린 아이처럼 숨을 헐떡거리며 울음을 참으려는 듯 멈칫멈칫 울컥거렸다. 그러다가 다시 아빠의 어깨에 얼굴을 파묻으며 여린 숨을 진정시키려고 애를 썼다. 어린 선아의 모습이 너무나 애처로운 나머지 진호는 차라리 다 함께 죽어버리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러나 하는 수 없이 외할머니 앞에 선아를 내려주자, 선아는 지금까지의 태도를 바꿔 운명을 받아들이려는 듯 할머니의 치맛자락을 한 손으로 움켜쥐고는 아빠의 얼굴을 한 번 쳐다보았다. 그 순간 겨우 멈추려던 울음이 다시 터지자 외할머니의 치마폭에 얼굴을 파묻고는 솟구쳐 오르는 감정을 억누르느라 무진 애를 썼다.
진호는 외할머니와 함께 돌아가는 아이들의 뒷모습을 멍하니 서서 바라보았다. 아이들은 몇 걸음을 걷다말고 아쉬운 눈빛으로 뒤돌아보고 또 돌아보았다. 그렇게 몇 번을 반복하고는 시야에서 쓸쓸히 사라져 갔다.
9. 첫 외출, 32년만의 데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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