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 제10조
제2부. 선녀가 인간으로
7. 빌어먹을 세상
진호는 재판을 모두 마친 다음 선고공판이 있었다. 초범인데다가 지병으로 말미암아 수형생활을 하기에 적당치 않은 점을 고려하여 집행유예를 선고받고 즉시 풀려나왔다. 진호는 아이들을 만나러 자신의 집이었던 아파트로 달려가는 것이 급했다. 만약 이사라도 간다면 영영 아이들을 볼 수가 없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아내와 마주치지 않기 위하여 치킨 집 영업시작시간 이후인 초저녁을 택하여 아파트로 달려갔다.
그러나 정작 아파트의 문은 잠겨있었고 초인종을 누르고 문을 두드려도 집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전자키의 비밀번호도 바뀌어 있었다. 하는 수 없이 돌아서서 허탈한 마음으로 엘리베이터를 기다렸다. 잠시 후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사람들이 내린 다음 타려고 하는 찰라 아이들이 엘리베이터에서 튀어나왔다.
깜짝 놀란 아이들은 너무나 반가운 나마지 소리치며 왈칵 달려들었다. 여덟 살짜리 아들 지수는 아빠의 허리를 감싸 앉았고, 다섯 살짜리 딸 선아는 아빠의 품에 안겨 엉엉 울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아빠가 많이 보고 싶었지?”
“훌쩍... 훌쩍... 응.”
선아가 어리광스런 말투로 대답하였다. 아직 어리광도 부리고 칭찬만 들을 나이의 아이들인데 아빠가 자리를 지켜주지 못해 미안하기도 하였다.
“아빠도 너희들 많이 보고 싶었어. 근데 밤중까지 어디 갔다 왔어?”
“심심해서 어린이놀이터에서 놀다 왔어. 집엔 아빠두 없구... 이제 아빠 매일 들어올 거지?”
가슴이 뜨끔했다. 아이들은 아직 아내와 이혼한 사실을 모르는 것만 같았다. 그렇다고 자신이 솔직하게 알려주는 것도 아이들에게는 충격이 너무 클 것 같았다. 아파트로 들어가 사가지고 왔던 빵과 음료수를 아이들에게 주고는 거실에 앉아서 말을 계속하였다.
“엄마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니?”
“그냥 아빠 오지 않을 거랬어. 그리구 아빠 찾아와도 만나면 안 된다고 그랬어.”
진호는 기가 막혔다. 아무리 이혼을 했다 해도 아이들에게 아빠를 만나면 안 된다고 하다니, 정상적인 사고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아이들의 장래보다도 자신의 입장을 먼저 생각하는 아내가 무섭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래서?”
“그래두 난 아빠가 보고 싶다고 했어. 그런데두 엄마가 안된다구 해서 내가 막 울었어. 엄마 미워.”
“그랬구나, 그럼 우리 엄마 몰래 만나자. 그럼 되지?”
“그럼 아빠는 매일 안와요?”
이번엔 지수가 제법 어른스러운 말투로 물었다.
“미안해, 지수야. 오늘도 곧 가야 되거든....”
“아빠가 매일 있었으면 좋겠어요. 엄만 매일 늦게 들어오잖아요.”
“하지만 그럴 사정이 있어. 이담에 크면 이해할거야.”
선아는 어느새 소파에 누워 잠이 들어 있었다. 아이들 방을 들여다보니 어수선하기 짝이 없었다. 결손가정에서 문제아가 나온다는 말이 일리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방안을 대충 정리해준 다음 다시 거실로 나오자 눈치 빠른 지수가 뿌루퉁한 표정으로 물었다.
“벌써 가는 거예요?”
“응, 아빤 가야 해. 엄마 말씀 잘 들어야 한다. 응?”
막상 아이들과 헤어지려 하니 눈물이 나오려고 했다. 하지만 아이들 앞에서 함부로 눈물을 보여서는 안 된다는 생각으로 침을 삼키며 참고 또 참았다.
“그럼 아빠 언제 와요?”
“응... 그러니까, 다음 주 화요일 날 저녁 일곱 시에 어린이놀이터에 올게. 그리고 급하게 아빠가 보고 싶으면 아빠한테 전화해. 전화번호 알지?”
“네, 알았어요.”
“선아도 네가 잘 보살펴줘라, 알았지? 그럼 잘 있어.”
지수를 한 번 안아준 다음 떨어지지 않는 무거운 발길로 뒤돌아서서 ‘하나가스’ 영업 사무실로 돌아왔다. 진호가 임시로 갈 곳은 그곳 밖에 없었기 때문이었다.
진호가 영업소 문을 열고 들어가자 다른 직원들은 다 퇴근하고 사장 혼자 앉아서 장부를 정리하고 있었다. 사장 김영준은 진호를 매우 반갑게 맞아주었다.
“형님! 저 왔습니다.”
“최진호! 어서 와라. 고생 많았지?”
“고생은요, 뭐 조금 답답하기만 했지요, 뭐.”
“반성은 많이 했나?”
“네, 반성은 정말 많이 했습니다. 할 일이 그것 밖에 없었거든요.”
“그동안 자네 아들 지수와 막내 선아가 가끔씩 아빠 찾는 전화를 하더군. 핸드폰을 받지 않는다고 말이야. 가슴이 아팠어.”
“그랬군요. 그렇잖아도 지금 아이들 만나고 오는 길입니다. 영업은 잘 되죠?”
“항상 그렇지 뭐, 자네가 왔으니 이제 나 숨 좀 돌리겠군. 하하.”
“받아 주시겠습니까, 저? 이젠 사무실에서 먹고 자고 해야 하는데...”
“이사람 무슨 소리야! 난 자네를 믿네. 우리 한 두해 함께 했나? 자네 마음속까지 난 다 알아.”
“고맙습니다, 형님. 그럼 다음 주부터 일 할게요. 그동안 마음 정리도 좀 하구요.”
“좋아. 하여튼 우리 저녁이나 먹으면서 그동안의 얘기나 좀 할까?”
자리를 음식점으로 옮겨 식사를 하면서도 이야기는 계속 되었다.
“근데 말이야, 최진호!‘
“말씀하세요, 형님.”
“그 왜 있잖아, KR 사회복지원에 있는....”
“아영이요?”
“그래, 조금 안 됐더라구.”
“아영이가요?”
“그래. 자네 생각은 도대체 뭐야? 어쩔 작정이야?”
“어쩌긴요, 뭐.”
“그럼 태도를 분명히 해야지. 여자는 잘 대해주면 착각할 수 있어.”
진호는 아영이에 관한 한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었다. 진호는 계속 듣기만 하는 가운데 영준의 말은 이어졌었다.
“남자가 착각하면 성희롱이 될 수 있지만, 여성이 착각하면 상사병이 된다구. 상사병은 사람이 죽을 수도 있다는 거, 모르나?”
“...”
“솔직히 말해서 자네가 그녀를 어떻게 할 건 아니잖나? 그렇다면 더 이상 마음의 상처는 입히지 말아야지. 그녀는 몸이 성한 사람이 아니라구.”
“그녀도 남자와 사랑하고 싶을까요? 한 여자로서 말입니다.”
“이사람 큰일 낼 사람이군. 알면서 왜 그러나, 응? 선녀 같다고 사람이 아닌가? 꼭 똥인지 된장인지 찍어봐야 아느냔 말이야? 자네 그러면 못써. 죄를 짓는 거야. 큰 죄를 짓는 거라구. 내일 당장 서운하게 생각하더라도 끝내버려. 일 키우지 말고...”
“자신이 없어요.”
“뭐가 자신 없다는 거야?”
“그녀가 나로 인해 충격 받는 건 상상도 못할 것 같거든요, 형님.”
“그럼 내가 대신 애기 해줄까? 사실 나도 잘못은 있거든.”
“아녜요, 형님에게 무슨 잘못이 있겠어요.”
“아니야. 사실 내가 그 말은 하지 말았어야 하는 건데.”
“무슨 말씀을요?”
“자네가 이혼 했다는 것 말이야. 난 아무 생각 없이 자네가 안됐다는 뜻으로 이야기를 한 건데...”
“근데요?”
“근데, 그 이후로 자넬 기다리는 낌새가 달라진 거야. 아주 심각해진 것 같더라구. 요샌 병도 앓았다더군.”
“설마하니 그것 때문에 그러겠어요?”
“아니야, 보통 문제가 아니야. 난 눈치가 없는 줄 아나? 자네나 나나 그녀가 처녀라는 걸 잊었던 거야. 그 여잔 엄연한 처녀라구. 그리고 마음 통하는 남자하고 사랑하며 아이 낳고 살고 싶은 지극히 정상적인 여자란 말이야. 장애인이라고 절대 다르게 생각하면 안 돼.”
“저도 장애인이라고 다르게 생각하지는 않아요. 하지만 솔직히 결혼해서 아이 낳고 살 수는 없는 실정인 것은 맞잖아요.”
“글쎄, 차라리 그렇다면 얼마나 좋겠나. 그리고 그녀도 그렇게 생각한다면 아무런 문제도 일어나지 않겠지. 세상에 슬픈 일은 일어나지 않는 다는 말일세.”
“이해하기 어렵네요.”
“뭐가 어려워.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仙女)를 생각하면 돼. 선녀가 인간과 만나지 않으면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아. 하지만 인간과 눈빛이 마주칠 때에는 사랑을 느끼게 된다구. 그러면 어떻게 되겠나? 나무꾼과 결혼하지 않았나, 아이까지 낳게 되었단 말이야. 알겠어?
하지만 그건 행복이 아니라 엄청난 불행의 시작이라구. 그러니깐 쉽게 말해서 선녀의 사랑은 천벌이야, 천벌! 자넨 선녀의 가슴에 불을 지르는 아주 고약한 방화범이 되겠군.”
“하지만 아영이는 선녀가 아니잖아요. 비록 선녀처럼 착하기는 하지만...”
“그건 또 무슨 소린가?”
“아무리 장애인이라고 성을 포기하고 살아야 한다는 것은 신의 섭리는 아닐 거라구요. 그녀가 생리를 한다는 것은 여자로서의 성을 포기하지 말라는 것이 아닐까요?”
“도대체 알다가도 모르겠군. 그럼 자네는 그녀를 책임 질 수 있다는 건가? 거동도 할 수 없는 중증 장애인 여성에게 있어 생리는 저주일 뿐이야. 불행을 잉태한 저주의 붉은 피라구!”
“나도 모르겠어요. 이혼한 아내를 생각하면 허우대 멀쩡한 사람이 오히려 저주스러워요. 경멸스럽다구요. 사람의 탈을 쓴 마귀같다구요. 남자가 사랑해선 안 될 여자는 중증 장애인이 아니라 신체 멀쩡한 여자라구요. 하지만 장애가 심한 사람일수록 그런 사람 없어요..”
“이해하네. 세상살이가 다 그런 거 아닌가? 그래서 서로 이해하며 참고 살아야 하는 것일세.”
“그렇긴 해요. 하지만 난 보시다시피 버림받았잖아요? 얼마나 못났으면 마누라한테 버림을 받나요? 간질 환자는 사람도 아니라는 걸 이번에 알았습니다.”
“너무 상심은 하지 말게. 아내가 키우기로 했다지만 금 보다 귀한 아이들이 둘씩이나 되잖나?”
“자식이 둘이면 뭐합니까? 아내가 제 아빠도 못 만나게 했다는군요. 사람 같지 않아요. 그에 비하면 아영이는 정말 천삽니다.”
진호는 아이들 이야기를 시작하자 눈물이 글썽이기 시작하였다.
“내가 아영이를 착하게 보고 좋아하는 것은 딴 게 아녜요. 아내와 비교가 되니까 자꾸만 아영이에게 마음이 가는 겁니다. 정말 뭐든지 도와주고 기쁘게 위로해주고 싶은 여자예요. 난 뭐 눈이 없는 줄 아세요? 나도 예쁜 여자 볼 줄 알고, 그래서 아내와 눈 맞아서 결혼도 했거든요. 근데 지금은 너무나 후회가 됩니다. 이제 그런 여자 하나도 부럽지 않아요. 그건 예쁜게 아니고 요귀일 뿐입니다. 요귀.
하긴 내 자신도 이젠 남자가 될 수 없어요. 세상에 간질환자 좋아할 여자 없다는 것을 이번에 알았다구요. 나는 남자는커녕 사람도 아니었죠. 판사도 변호사도 결국은 내편이 아니었다구요. 간질환자라서 이혼의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이고, 그래서 재산도 손해를 봐야 하고, 간질환자라서 자신의 아이도 키울 수 없다는 겁니다. 이게 사람입니까, 어디? 내가 사람이냐구요. 빌어먹을 망할 노무 세상!”
진호는 비참한 심정으로 영준을 앞에 둔 채 눈물을 훔치고 말았다.
8. 눈치 보는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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