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인들의 한국 이민 개척사
제2부. 개척시대
9. ‘도이모이’(Doi Moi)를 외치는 평화의 나라
인천 발 하노이 향 ES 634편, 탑승객들 대부분은 식사를 끝내고 잠이 들었다. 자리가 비좁아 불편한 듯 한쪽 다리를 통로 쪽으로 향하고 앉은 아버지 지대일은 외아들 동철이 옆에 앉아 눈을 감고 지나간 젊은 날을 회상하였다.
그는 파병 당시 한국 병사들의 눈에는 베트남의 처녀들이 너무나 착하고 예뻐 보였던 것을 분명히 기억하고 있었다. 따라서 자신이 만약 한국 사람이 아니라면 도도하고 사치스런 한국 처녀들보다 착하고 순종적인 베트남 처녀와 결혼하겠다. 라고 심심찮게 말을 했었다. 하얀 아오자이에 긴 머리, 부끄러운 듯 하면서도 항상 상냥하기만 했던 베트남 꽁가이(처녀)들...
장가 못간 한국총각들이 2000년대인 지금에 와서도 필리핀이나 캄보디아의 여성들보다 베트남 여성을 더 선호하는 까닭은 그러한 사고방식이 현재까지도 조금은 남아있기 때문이 아닐까. 따라서 참전 당사자인 지대일의 외아들 동철도 지금 한국 처녀와의 결혼이 힘들게 되자 그러한 처녀들을 구하러 필리핀이 아닌 베트남으로 가고 있는 중이 아닌가?
베트남전쟁 이전만 해도 보통의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보릿고개도 없이 굶지 않고 사는 이곳 동남아 사람들을 부러워했었다. 국민소득도 그쪽 나라들이 훨씬 높아 필리핀의 경우는 우리 1인당 GNP의 세배에 달했었던 것이 바로 엊그제의 일이었다. 그러던 것이 어느 순간에 뒤바뀌어서 이젠 이 사람들이 우리를 부러워하게 되었으니 참으로 사람 팔자 알다가도 모를 일이 아닌가. 그렇게 되는 과정에서 우리는 이곳 베트남 사람들에게만은 많은 빚을 졌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역사적 사실을 동철은 알지 못한다.
스피커에서 안전벨트를 매라는 안내멘트가 흘러나오고 스튜어디스들이 안전점검을 하며 분주히 객석을 돌아다니면서 착륙준비가 시작되었다. 이어 덜컹하는 랜딩충격과 함께 착륙한 항공기에서 내려 입국수속을 마치고 검색대를 빠져 밖으로 나왔다. 출국, 입국하는 여행객들과 그들을 환송, 환영하는 사람들 중에는 심심찮게 한국말을 쓰는 사람들이 섞여 있는 것으로 보아 이곳 베트남이 이제 우리에게 낯설고 먼 나라가 결코 아니었다. 총칼을 들이대며 전쟁을 하던 과거의 적대국가는 더더욱 아니라는 사실을 실감할 수 있었다.
지대일과 동철을 마중 나와 서툰 한국말로 안내하는 베트남 여성을 따라 공항을 빠져 나오니 시끄럽고 어지러운 재래시장처럼 택시기사들이 나와 호객행위를 하고 있었다. 가만히 보니 대부분의 택시차량이 눈에 익은 한국제 경차였다.
대일은 묘한 기분으로 택시를 잡아탔다. 낮 익은 한국기업의 간판들이 심심찮게 붙어있는 공장들을 바라보며 3, 40분을 달려 하노이 시내로 진입한 다음, 다시 구불구불 골목을 들어서 아파트 같이 생긴 호텔로 들어갔다. 호텔의 시설 역시 한국의 모텔에도 훨씬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었지만 외국인을 맞아들이겠다는 종사자들의 성의는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었다.
객실에 들어가 우선 샤워를 하며 더운 열기를 식혔다. 다음 꿈을 꾸는 둥 마는 둥 하다가 방문을 노크하는 소리에 깨어나 밖으로 나가니 아직 새벽임에도 안내원이 프론트에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대충 세수를 하고 쌀국수(퍼, Pho)집에 도착하자 벌써 손님들이 바글바글 모여 있었다. 베트남 사람들은 아침밥을 해먹지 않고 주로 이런 국수집에서 사 먹는다고 하였다.
종사자들이 날라다주는 접시의 양념에서 베트남 음식 특유의 향료가 풍겨나와 숨이 막힐 정도로 지대일 부자의 코를 쏘았다. 바로 ‘라우무이(RAU MUI)’라는 향료의 냄새였다.
옛날 한국인들은 마늘냄새, 김치냄새 때문에 일본인이나 미국인들로부터 얼마나 손가락질을 받았던가? 6.25때 미군은 한국에서 한국의 물도 마시지 않고 다른 곳에서 가져다 마셨다고 했다. 하지만 경제성장의 결과로 대한민국이 잘살게 되고 국력이 커진 지금에 와서는 한국 음식에 대하여 손가락질은커녕, 거꾸로 별미의 한국고유음식이라며 선진 외국인들이 너도나도 비싼 돈 주고 사 먹고 있는 것이다. 한 나라의 경제력이 미치는 영향은 음식문화에 대하여도 예외가 아님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따라서 베트남도 경제적 수준이 높아지고 국력이 커지게 되면 라우무이 냄새도 세계인들로부터 상당한 인기를 끌 것이 분명하였다.
그러나 젊은 아들 동철은 경제성장과 음식문화에 대한 기호문제와는 관련지어 생각하지 않으려는 것 같았다. 민주주의보다는 민주화를 중시하고 성장보다는 분배를 우선시하는 21세기 젊은 세대들에게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이 너무도 당연한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뿐만 아니라 동철은 라우무이의 냄새를 역겨워하는 아버지와 달리 호기심어린 표정으로 별 거부감 없이 국수에 넣어 맛있게 먹고 있었다.
식사를 대충 마치고나니 벌써 8시가 다 되어갔다. 이제 미리 대절해놓았던 차량을 타고 맞선 장소로 가기 위해 골목을 빠져 나갔다. 도로에는 자동차들은 별로 없고 대부분이 오토바이였다. 시내 골목마다 쏟아져 나오는 작은 오토바이에는 한 대에 두세 명은 보통이고 서너 명씩 타고 가는 경우도 드물지 않았다. 아마도 아빠와 엄마는 직장으로, 아들과 딸은 학교를 향하여 한 가족이 모두 타고 가는 듯 하였다. 한국의 속담을 패러디 하여 말하자면 ‘신발 없이는 살아도 오토바이 없이는 못산다.’라는 말이 있을 만도 하였다.
다시 자동차가 좀 더 큰 길로 나서자 앞뒤로 밀려드는 오토바이 바퀴들이 여기저기 좌, 우로 가로막는 바람에 기가 죽어 좀처럼 나아가기가 어려웠다. 힘들게 기어가는 도중 커다란 사거리가 나오자 지대일과 동철은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는 광경에 너무나 놀라 벌어진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아~”
차량 앞에서 펼쳐지고 있는 광경은 이제까지 꿈에서도 보지 못한, 가히 착각일 수밖에 없는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저 멀리 하늘과 땅이 맞닿은 곳에서부터 이어져오는, 길이라고 생긴 곳은 어느 것 하나 예외 없이 넘쳐나는 인간홍수의 강. 천지를 뒤덮은 이 엄청난 오토바이 물결들... 갓 분출되어 나온 용암수처럼 둑을 쌓고 또 쌓아도 도저히 막을 수 없는 힘찬 역군들의 행렬들. 흐르고 흘러도 줄지 않으며 밀려가고 밀려오다가 다시 로타리에 다다르고는 정신없이 소용돌이치면서 쉴 새 없이 어디론가 빨려 들어가듯 사라져버리고 있었다.
중앙선만 중요한 듯 가운데만 분명하게 그어져 있는 확장된 차로에는 차선이 있으나 없으나 흐름에 지장이 없고, 어쩌다 서있는 신호등엔 불이 꺼져있어도 변함없이 순서가 지켜지는 자존심 강한 무질서 속 질서들. 해맑고 드높은 기상의 숨결이 베트남 새아침의 하늘 아래 정렬적인 햇살을 받으면서 여기저기 터져나갈 듯 힘차게 맥박치고 있는 것이었다.
예기(銳氣)로 가득 찬 남녀의 얼굴마다에는 희망과 자존심으로 넘쳐나 있고, 중심을 곧추세워 굴러가는 이륜의 바퀴는 번영을 향해 힘차게 전진하면서 또 하나의 위대한 역사를 창조하려고 몸부림치고 있는 것이었다. 이 감동적 현장! 그것은 아마도 30여 년 전 이 땅에 참전했다 철수한 노병(老兵)만이 느낄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충격적 사건이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어느새 전쟁의 상흔을 말끔히 씻어내고 ‘도이모이’(Doi Moi)를 우렁차게 외치는 평화의 나라 베트남! 그러나 아쉽게도 30여 년 전 길마다 오토바이 위에서 펄럭이며 순결을 상징하던 흰색의 아오자이는 이제 산업화의 물결에 밀려 청바지에게 생활복장의 위치를 물려주고 행사용 의상으로 밀려나는 듯 거의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지금 베트남이 어느 세상 어느 사회보다도 무서운 속도로 급속하게, 긍정적으로 변화해 가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마치 한국도 예외 없이 금방 추월하고 말 것 같은 기세로 말이다.
10. 번갯불 맞선
--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