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인들의 한국 이민 개척사
제2부. 개척시대
10. 번갯불 맞선
베트남 민족의 가난했던 영웅 호치민이 잠들어 있다는 바딘광장 앞을 지나자, 맞선을 향한 차량의 질주는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번잡한 시내를 빠져나와 긴 강을 한차례 건너 베트남 방식의 유료도로에 진입한 다음, 수 시간을 달려 작은 도시의 모텔에서 맞선을 보게 되었다. 하노이에서의 맞선은 최근 단속이 심해졌기 때문에 다른 지역으로 옮겨 선을 보기로 한 것이었다. 베트남의 법률에 의하면 상업적 중매행위 자체가 불법이었다.
맞선장소는 이름 모를 어느 호텔 3층 301호. 창가 쪽에 긴 의자가 놓이고 침대 쪽엔 안내원이 걸터앉았으며, 침대 앞의 낮은 의자에는 동철이 자리하였다.
아버지는 동철에게 외모만 보지 말고 사람 됨됨이를 우선적으로 보라고 했다. 하지만 딱히 물어볼 말도 없고 처음 보는 사람에 대하여 사람 됨됨이를 판단할 시간적 여유도 없을 뿐 아니라, 아무리 눈이 높지 않다 해도 피부를 맞대고 살 사람인데 외모 또한 무시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첫 번째로 아가씨 열 명이 한꺼번에 들어와 침대 앞에 일렬횡대로 섰다. 고갈모자(논)에 턱밑에 끈을 묶고 아오자이를 입은 베트남아가씨를 기대했던 것과는 달리 티의 디자인과 색깔만 다를 뿐 일률적으로 머리를 길게 늘어뜨린 채 모두 청바지 차림으로 서 있었다. 그러나 얼굴 모양은 중국인처럼 생긴 사람, 한국인과 비슷하게 생긴 사람, 인도인과 비슷하게 생긴 사람 등등 민족 자체가 다르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에게서 민족갈등이 있었다는 이야기는 아직까지 들어보지 못했다. 모두 베트남 국민일 뿐이었다. 다만, 시내에서 본 여인들과 달리 차림새가 어색하고 화장도 하지 않은 사람이 많아 이들이 대부분 시골 농촌에서 왔다는 것을 짐작케 했다.
동철은 조금 당황스러웠다. 1대1로 앉아 질문과 답변을 해 가면서 서로의 의사를 타진하는 것이 아니고 열 명씩이나 한꺼번에 앞에 모여서서 대기하고 있으니 무엇을 어떻게 물어볼지를 몰라 주춤거렸다. 그러자 안내원은 마음에 안 들어서 그런 것으로 알고는 눈짓을 하며 알 수 없는 소리로 말을 하니 모두 되돌아 나가고 새로운 여성들이 다시 들어와 섰다. 이번에는 안내원이 미리 한, 두 명만이라도 빨리 고르라고 일러주면서 동철의 프로필을 설명하고 난 다음, 아가씨들에 대한 프로필을 물어 한 사람씩 통역해주었다.
동철은 미인대회장의 심사위원이 된 것처럼 얼굴의 표정은 물론이거니와 가슴, 허리, 힙과 다리의 길이 등 위아래를 훑어가며 관찰하다가 어떠한 경우에는 뒤로 돌아보라고 하거나 입을 벌리라고 하여 치열의 고름새를 확인하기도 하였다.
특별히 예쁘지는 않았지만 비교적 거부감이 없는 두 명을 지정하자 그들만 한쪽 옆으로 비켜 세운 채 모두 내 보내고 다른 멤버들로 교체되어 들여보내졌다.
동철은 맞선 횟수가 반복될수록 사회주의 국가에서 치러지는 맞선이 아니라 퇴폐한 자본주의에 병든 인간시장에 온 느낌마저 드는 것을 숨길 수가 없었다. 그러면서도 한 편으로는 마음에 드는 아가씨가 한사람도 없을 것 같아 걱정이 되기도 하였다. 옆에 앉아계신 아버지를 힐끔 쳐다보니 처음과는 달리 무슨 생각에 젖어있는지 두 눈을 감고 계셨다. 혹시 이 해괴망측한 현실에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있는 것은 아니었는지.
세 번째에서 또 한 명을 골랐고 다시 네 번째 멤버들이 들어왔다. 여기서 또 다시 두 명을 골랐다. 그리고는 잠시 더 이상의 출입을 중지시키고는 지금까지 고른 아가씨들 중 비교적 피부도 깨끗하고 미모 또한 가장 마음에 드는 한 사람을 택하여 통역을 통해 말을 걸었다.
“몇 살인가요?”
“20세입니다.”
“이름은?”
“레 티 마이(Le Thi Mai)”
“고향은 먼가요?”
“탄 호아(THANH HOA성), 이곳에서는 좀 멀어요.”
통역자가 통역은 해주었지만 과연 옳게 해 주는지 엉터리로 해 주는지 확인할 방법이 없었으므로 그냥 믿는 수밖에 없었다.
“학교는?”
“9학년 마쳤답니다.”
“9학년?”
“9학년이면 중학교 졸업입니다. 농촌사람치곤 나은 편이죠.”
“나와 결혼하겠어요?”
“네, 하겠답니다.”
학력이 낮은 것이 마음에 걸렸지만 긴 머리, 청바지차림의 날씬한 몸매, 수줍어 보이는 듯 한 미소가 동철의 머릿속을 살며시 흔들어댔다. 볼수록 제법 매력이 있는 것 같아 이미 동철은 마음속으로 굳히고 있는 상태였다. 아버지도 아들의 뜻에 반대하지 않았으므로 안내원에게 이야기하여 신부로 확정을 지었다.
맞선을 마치고 나서 점심을 먹기 위해 다른 건물의 식당으로 갔다. 한국음식을 파는 한국인의 식당이었으며, 메뉴는 삼겹살이 나왔다. Mai는 예비 시아버지의 눈치는 보지도 않은 채 벌써 다정한 연인처럼 동철의 옆에 바싹 붙어 고기조각을 동철의 밥그릇 위에 얹어 놓곤 하였다. 말이 통하지도 않았지만 동철에 대하여 궁금한 것이 아무 것도 없는 것처럼 물어볼 생각조차 하지 않았고, 오로지 40대 1의 경쟁을 뚫고 맞선에 성공한 것을 천만다행으로 여기며 행복해 하고 있는 것이었다.
하긴 Mai의 입장에서는 지금 꿈속에서처럼 소원이 모두 성취된 느낌이었다. 만약 오늘도 이 남자에게 선택되지 않았다면 또 다시 몇 달을 합숙하며 얼마를 더 기다려야 했을까? 참으로 긴박한 순간순간이 아닐 수 없었다. 그동안 한국으로의 결혼을 위해 소개비에다가 합숙비며 화장품 값 등 3백여만 원이 넘는 빚을 졌지만, 이젠 특별한 돌발사태가 없는 한 지긋지긋한 가난을 벗어나고 코리안 드림이 금방 현실로 다가올 것만 같았다. 내일 지구가 무너질지 모르겠지만, 지금 이 순간 Mai는 너무나 행복하였다.
저녁이 되자 Mai의 부모님께서 찾아와 다시 식당으로 가 양가 부모님들이 마주하였다. 서로 인사를 나누기는 했지만 Mai의 부모님들은 웬지 별로 흡족한 표정이 아니었다. 동철은 지참금조로 미화 500불을 신부 아버지에게 전한 다음 신부 부모님들이 다시 돌아가자 시내로 나가 신부에게 줄 귀고리와 목걸이, 반지 등을 사고 호텔로 돌아와 신부와 동침할 방으로 들어갔다.
만난 지 몇 시간 밖에 되지 않는 남녀는 겸연쩍고 부끄러운 표정으로 각자 샤워를 했다. 그리고 잠시 TV를 보다 함께 자리에 누웠다. 동철은 Mai를 살며시 껴안은 채 Mai의 가슴에 손을 얹어 두근거리듯 뛰고 있는 순결의 맥박을 느끼면서, 옛날 가금씩 아버지가 술 취해 부르시던 흘러간 노래를 작은 목소리로 불러주었다.
“첫날밤 침대 위에 / 손가락으로
그림을 그립니다 / 당신을 그립니다
늘어뜨린 긴 머리 / 이국적인 눈망울
부끄러운 미소까지 / 그렸지만은
아~ 아~
마지막 한 가지 / 못 그린 것은
지금도 알 수 없는 / Mai의 마음”
원래 이 노래는 여성이 남성의 마음을 믿을 수 없어 부른 ‘당신의 마음’이라는 유행가 가사였지만, 지금 여기서는 맞선을 보고 장래를 약속한 그날, 그 한국 남성이 자신의 품안에 안겨있는 베트남 여성의 마음을 알 수 없어 그 노래의 가사를 패러디하여 부르는 것이었다. 만난 지 채 하루도 안 된 이 여성, 하지만 그 가사의 뜻을 모르는 베트남 처녀 Mai는 자신을 사랑한다는 의미의 노래로 착각하고는 모든 것을 남편 동철에게 맡긴 채 설레는 마음으로 첫날밤에 깊이 빠져 들고 있었다.
11. 슬픈 결혼식
동철이 안내원을 따라 2층의 식장으로 올라가니 가운데 깔린 양탄자를 사이에 두고 두 줄로 정렬된 약 40여 좌석에 아버지와 신부측 하객들이 앉아 있었다. 그리고 그 식장 단상의 반대편 끄트머리에는 신부가 화려한 웨딩드레스를 입고 대기하고 서 있었다.
하객들 중에는 친구 Nguyen Thi Bao Anh과Vu Buoi Thy Xuan도 있었다. 그중 ‘Anh’은 한국으로 시집가기 위해 마담이 이끄는 한국국제결혼 합숙소에서 대기 중인 아가씨였으며, ‘Xuan’은 베트남의 애인과 결혼하기로 약속한 상태였다.
그러나 Xuan도 베트남에서의 고통스럽도록 가난한 맹물 같은 사랑보다는, 휴일마다 TV와 내비게이션이 설치된 승용차를 타고 드라이브를 하면서 쇼핑하러 다니는 한국의 생활이 더 로맨틱하다고 생각하는 보통의 여자였다. 따라서 한국으로 향하는 친구들에게 은근히 부러움을 느끼고 있던 차였다.
“Mai가 가고 나면 너도 곧 뒤따라 한국으로 가겠지?”
“Mai는 운이 좋았던 거야. 난 누가 데려가야 말이지. 어제 1차에 4명이 함께 선택되었다가 2차에서 탈락되었다니깐, 재수 없게...”
“한국에는 봄, 여름, 가을, 겨울 등 사계절이 있어 계절마다 색다른 맛이 있다지? 봄에는 울긋불긋 온 세상에 꽃이 피고 겨울엔 세상천지 백설탕처럼 하얗게 되고...”
“딴 건 몰라도 겨울에 눈 구경 좀 했으면 좋겠다. TV에서만 보던 눈썰매장이랑 스키장도 가보고 싶어...”
“설마, 추워서 얼어 죽지는 않겠지?”
“한국의 겨울에는 매운 ‘한 따이’(Hanh tay, 파)보다 더 맵고 매서운 ‘한파’(寒波)라는 것이 있데... 그 한파(寒波)는 사랑하는 남편이 뜨거운 가슴으로 꼭 껴안아야만 녹일 수 있다는 군. 킥킥...”
“한국엔 비빔밥이 있다는데, 그런 걸 말하는 건가보다. 한파와 사랑의 비빔밥... 아, 부럽구나! 정말...”
이런 가운데 사회자의 안내에 따라 신부 Mai와 신랑 동철이 서로 팔을 끼고 음악에 맞추어 단상을 향해 걸어가 섰다가 다시 돌아서서 하객들에게 인사를 했다. 비록 하객의 숫자가 적고 장식이 초라하며 주례가 없었을 뿐, 베트남 전통혼례식이 아닌 한국에서의 보통 결혼식과 별반 다름이 없었다.
단상 탁자 위에 쌓아 놓은 술잔에 샴페인을 터트려 붓고는 준비된 의자에 앉아 하객을 바라보며 예식장 전속가수의 축가를 듣는데, 신부는 즐거운 표정을 짓기보다는 약간 상기된 표정을 하고 있었다. 어제와 달리 신부의 머릿속에는 산업기술연수생으로 뽑혀 먼저 한국으로 떠나간 동네 오빠 Van(Pham Tien Van)을 생각하고 있는 중이었다.
물론 신부 Mai는 동네오빠 Van하고 애인사이는 아니었다. 그러나 한 때는 분명 마음속으로나마 좋아하며 어울렸던 사이였었다. 조금만 집안이 넉넉하고 Van 또한 한국으로 가지만 않았더라면 아마도 스무 살이나 차이가 나는 현재의 무뚝뚝한 외국인 신랑이 아닌, 다정다감했던 Van 오빠를 택했을지도 모른다. Van 오빠가 1년 전 한국으로 떠나면서 선물로 준 팔찌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지금 이 장소는 인생을 새로 시작하기 위한 결혼식장으로서, Van은 없고 대신 어제 갑자기 만난 한국인 신랑 동철과 손을 잡고 앉아 있는 것이었다.
‘이젠 잊어야 해, Van은 애인도 아니었는데 뭐...’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말도 통하지 않는 낮선 외국인 신랑보다는 이해심 많고 친근하기만 했던 Van 오빠가 더 진정으로 자신을 사랑해 줄 수 있을 것처럼 느껴지는 감정은 어쩔 수가 없었다.
‘Van은 이런 사실을 알기나 할까? 옆에 있는 이 남자는 어제 밤처럼 영원히 나를 사랑해 줄 수 있을까?’
이런 생각 저런 생각을 하는 동안 어느새 식이 끝나고 신부가 객석으로 옮겨 앉아 함께 식사를 시작하였다. 안내원은 신랑 동철을 데리고 이곳저곳을 옮겨 다니며 신부의 할머니, 고모, 작은 아버지, 사촌, 조카 등등 여러 사람들에게 인사를 시켜주었다. 그 때마다 안내원은 용돈을 쥐어줄 것을 요구하여 사람에 따라 아이들에게는 미화로 20불씩, 어른들에게는 200~300불씩을 주도록 주문을 하는 것이었다. 동철은 조금 불쾌하긴 했지만 내색은 하지 않고 오히려 밝게 웃는 표정을 지으려고 애를 썼다.
‘도대체 이런 풍습은 누가 만들었담? 한국에선 쥐뿔도 없어서 전세 사는 사람들도 외국에만 나가면 돈 잘 쓰는 허깨비로 소문난다더니 정말 그런가보군.’
비상금으로 3,000불을 가지고 왔던 동철은 어느새 한 번의 비상상황도 없이 보통 서민의 한 달 수입에 해당하는 2,000불 이상이 없어졌다. 서민 중의 서민인 월급쟁이 동철로서는 무리라는 생각이 전혀 안 들 수가 없었고, 계약금 외에 추가되는 비용이 없다던 결혼중매회사 직원의 말은 사기나 다름없다고 생각하였다. 도대체 어느 누가 이역만리 베트남까지 와서 이런 풍토를 만들어 놓았단 말인가? 한 때 중국에 가서도 돈 몇 푼 있다고 여기저기 뿌리다가 상대방의 자존심을 건드려 국제적 망신을 당한 것이 바로 엊그제 일이 아니었던가?
그래서 그런지 하례객들의 표정을 보거나 용돈을 받는 신부의 친척들 태도를 보거나 간에 돈 주는 것을 당연시할 뿐 감사하다는 표정은 티끌만큼도 찾아볼 수 없었다. 어떤 사람은 오히려 적다는 표정을 짓기도 하였다. 경제적인 문제가 아니라면 20세가량이나 차이나는 한국의 신랑에게 시집갈 이유가 없다는 것을 생각할 때 이 결혼식 자체가 ‘슬픈 결혼식’은 아닌지 모를 일이었다.
그런 가운데서도 동철은 한편으로 불안감이 들었다. 이렇게 잘 사는 척, 돈 많은 척 뽐내다가 색시를 데려와서는 빠듯한 자신의 월급에 실망하여 도망이나 가버리면 어쩌나 하는 생각에서였다. 나이 40이 넘도록 한 달 200만 원 정도 밖에 못 버는 자신이 너무나 초라하고 한심해 보이는 것 같아 여러모로 씁쓸하기만 했다. 음식점을 운영하시는 아버지의 도움 없이 과연 자신 혼자의 힘만으로 아들 딸 낳고 잘 살아갈 수 있을 지가 걱정이었다.
이런 걱정을 눈치 채셨는지 아버지는 엉뚱한 말씀을 꺼내셨다.
“한국에서 맞선보고 연애한다고 생각해 봐라. 그거 몇 곱절가지고도 부족 할 껄? 글구, 내가 보기에도 네 색시 너무 예쁘고 착하게 생겼더군. 베트남 사람들에게 감사하게 생각해야 해. 정말 감사하다구...”
그러고 보니 며느리를 얻은 아버지는 아내를 얻은 동철보다 더 흡족해 하고 있었다. 모든 것이 정신없이 돌아가는 바람에 아버지께서도 마음에 들으셨는지 물어볼 기회가 없었는데 천만다행이었다.
“아버지도 마음에 드세요?”
“그래, 마음에 든다. 얼굴 모양이 한국인처럼 생겼으니까 얼마나 다행이냐. ‘타이(TAI)’족이라지, 아마?”
“마음에 들면 되는 거 아녜요? 꼭 한국 사람하고 얼굴이 같아야 해요?”
“그래야 네 자식도 너를 무난하게 닮을 거 아니냐.”
12. 개보다도 더러운 외국인 산업기술연수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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