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인들의 한국 이민 개척사
제2부. 개척시대
12. 개보다도 더러운 외국인 산업기술연수생
Van이 한국에 온지도 벌써 1년이 다 되어 갔다. 하지만 산업기술연수생이라는 명칭과는 달리 ‘(주)일진’의 공장에서는 기술을 배울 수가 없었다. 하는 일이란 것이 고작해야 플라스틱 사출기 기술자인 배상일과 김성주 두 사람의 보조역할과 잡일뿐이었기 때문이었다.
Van의 일과 중 첫 번째 임무는 상일의 7번과 성주의 8번 사출기 옆에 있는 원료 통에 원료를 가져다가 채워주는 것이었다. Van의 두 번째 임무는 두 사출기에서 시시각각 플라스틱 제품을 찍어내어 옆으로 던지면 이를 주워 불필요한 부분을 잘라내고 다듬어야 것이고, Van의 세 번째 임무는 두 기계의 주위를 정리하고 청소해야 하며, 그때그때 두 기술자가 시키는 개인적인 잡일까지 해야만 하는 것이었다.
일, 공휴일마다 쉬기는 하지만 야간작업을 거의 매일 하다시피 하므로 1일 평균 11시간 이상 일하는 셈이었다. 이럴 경우 이곳에서의 한국 기술자들은 직급과 직책, 근로연수에 따라 야근수당을 추가해서 적게는 200만 원, 많게는 400만 원도 훨씬 넘는 액수를 받지만, 외국인 산업기술연수노동자들은 80십만 원부터 많아야 130만 원 정도 밖에 받지 못한다. 뿐만 아니라 산업기술연수노동자들에게는 상여금이나 퇴직금도 거의 지급되지 않았다. 따라서 이것저것 생필품만 사고 용돈을 아껴 쓸 경우 월 60~80만 원 정도를 베트남 집으로 송금할 수 있었다. 몸이라도 아파서 며칠 쉬거나 동료들과 외식하며 술이라도 한두 번 마시게 되면 그나마도 어려웠다. 저축하거나 베트남으로 송금을 했다 해도 그것이 다 남은 돈이라고 할 수는 없었다. 왜냐하면 베트남에서 한국에 산업기술연수생으로 뽑혀오려면 비용이 적지 않게 들어가기 때문이었다.
산업기술연수생으로 뽑혀오려면 우선 경쟁이 치열하므로 여러 방면으로 수백 달러의 돈을 써야 하며, 여기에 한국어교육비와 항공료 등까지 모두 합하면 한국 돈으로 4~500만원 들어가는 것은 적게 들어가는 편에 속하였다. Van의 경우도 500만 원 이상을 들여 한국에 왔는데, 이제 겨우 경비를 뽑아 빚을 갚고 흑자를 내기 시작하려는 시점에 온 것이었다. 따라서 1년 단위로 계약을 연장해서 2~3년을 한국에서 일 해봤자 생각만큼 돈을 벌어가지 못하므로 대개 체류연장이 안되면 정해진 업체를 탈출해서 체류기간을 넘기기 때문에 불법체류자가 되기 일쑤였다.
그러나 Van이 그 남은 계약기간마저도 채우지 못한 상태에서 갈등을 겪고 있는 것은 자기의 상전이라 할 수 있는 7번 사출기 기술자인 배상일 때문이었다. 상일은 이곳에서 경력도 오래 되었고 기술력도 좋아 사장님의 신임이 두터운 자였다.
그러나 상일은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있어서는 악마와 같은 존재였다. 이곳에 온 외국 노동자들이 제일 먼저 배우는 언어는 여러 가지 욕설인데 모두 상일에게서 배운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중에서도 특히 베트남 노동자인 Van에게는 포악하기까지 하였다. 무엇을 시킬 때 잘 못 알아듣고 조금만 머뭇거리게 되면 욕지거리를 하며 연장을 집어 던지기 일쑤였다. 간혹 주먹으로 머리를 쥐어박을 때에는 같은 한 인간으로서 치욕적인 모욕감마저 들었다. 침을 뱉을 때에도 사람이 있건 없건 마구 뱉어 신발과 바지에 묻기도 하는데, 이런 것을 두고 결코 실수라고 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기분 나쁜 표정을 짓거나 불평을 털어 놓을 경우 직장을 잃을 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외국 노동자들은 참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뭐니 뭐니 해도 가장 견디기 힘든 것은 자존심을 긁어대는 그의 말투였다. 그가 부정적인 행동을 지적할 때에는 꼭 ‘베트남 놈들은...’하면서 미개인이라도 대하듯 말을 하는 것이 습관처럼 되어 있었다.
이곳은 사워장이 있기는 해도 추운 겨울에는 자주 씻지를 못한다. 왜냐하면 일이 늦게 끝나므로 피곤하기도 하지만 더운 물이 잘 안 나오기 때문에 더운 지방에 살다 온 베트남 사람으로서는 찬물에 샤워하기가 쉽지 않다. 따라서 겨울에는 대개 2주 정도에 한 번씩 대중목욕탕에 가서 목욕을 하곤 하는데, 이를 알고 있는 상일은 Van을 보고 ‘베트남 놈들은 목욕도 안하고 사냐?’라며 빈정대기 일쑤였다. 자기 자신은 시설 좋은 아파트에서 살기 때문에 매일 사워를 하고 살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한 열악한 환경의 외국인 노동자들의 형편에 대하여는 조금도 이해하려 하지 않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러한 상일도 공장 주차장 옆의 개장에 묶여있는 진돗개에게는 수시로 달려가 껴안고 쓰다듬어주며 더러운 개 혓바닥으로 얼굴을 핥아도 전혀 거부하지 않는다. 상일에게는 베트남 사람인 Van이 2주가 아니라 평생 목욕 한 번 못하는 개보다도 더 더러운 존재로 보이는 것이 틀림없었다.
상일은 왜 이토록 베트남 사람에게 지나칠 정도로 적대감을 갖고 있는 것일까? 소문으로 들리는 이야기에 의하면, 2년 전 무단가출해버린 그의 베트남 아내 Vo Thi Le 때문이라고 하였다.
그도 한 때는 시부모를 잘 모신다고 하는 등 도덕적 생활관습이 한국인과 비슷하다는 베트남 처녀에 대하여 무척 호감을 가지고 있었다고 했다. 그래서 소개료1,200만 원과 기타비용을 합쳐 모두 1,700만 원이나 들여 국제결혼을 했는데, 신부는 입국한지 불과 보름 만에 집을 나가 행방불명이 됨으로써 망연자실하게 되었고 그때부터 외국인 노동자, 특히 베트남인들에 대하여는 매우 심한 거부감을 가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의 아내는 한국입국을 목적으로 한 계획적 위장결혼이 틀림없었다. 기다리다 지친 상일은 그 후 혼인무효소송을 제기하여 확정판결을 받기는 했지만, 아직도 그의 수첩에는 베트남 아내의 사진을 넣어 가지고 다니는 것으로 보아 사랑하는 마음과 이용당한 배신감의 갈등 속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듯 하였다.
Van은 이러한 이야기를 주위사람들에게 듣고서도 상일을 동정하는 마음은 전혀 없었다. 자신이 그에게 구박 받고 있어서라기보다는 사랑하지 않으면서도 경제적 문제 때문에 한국으로 시집와야 하는 풍토, 그리고 그것을 이용하여 돈 몇 푼 쥐어주고 외모 반반한 색시들을 몽땅 골라 데려오는 한국인들의 태도 자체에 거부감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여튼 Van은 상일이 너무 싫었다. 괴롭혀서 싫고 사람취급 안 해서 싫고 상일이 하는 행동 모두가 싫었다. 따라서 Van은 계약을 연장할 수 있는 기간이 아직 1, 2년가량 남아 있기는 했지만 벌서부터 이곳을 탈출하려고 이곳저곳 알아보는 중이었다. 수원 아래 병점에 가면 불법체류자들이 모여 일하는 곳이 있다는 소문도 들어 알고 있고, 용인시 남사에 가면 농장에서도 사람을 구한다고도 했다. 그러나 현재는 기숙사를 떠나면 얻어야 할 월세방 보증금도, 살림살이를 마련할 돈도 없었다. 기숙사를 갖추고 침식을 제공하는 곳이 있으면 좋겠지만 그런 곳에서는 불법체류자를 받지 않는다고 하였다. 따라서 지금은 이를 악물고 참으면서 열심히 일해 그 돈을 마련하는 도리밖에 달리 방도가 없었다.
13. 피를 뿌린 노예의 분노
Van은 어제 저녁 집에 전화를 거니 할머니께서 돌아가셨다고 하였다. 벌서 장례까지 마친 상태라고도 하였다. 고향을 떠나올 때 언제 다시 볼 수 있겠냐고 하시면서 그토록 슬피 우시던 이유를 이제야 알 것 같았다. 노인은 자신의 남은 운명을 짐작한다고 하더니 할머니께서도 그러셨나보다. 하고 생각하였다.
원래 할머니는 아들을 둘을 낳으셨지만 큰아버지는 전쟁 때 전사하셔서 아버지만 남아 독자가 되셨다고 하였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아버지마저 아들을 하나 밖에 낳지 못하셔서 할머니는 유난히 Van을 사랑하셨던 것이다. Van의 어린 시절은 할머니께서 키워주셨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었다.
임종을 앞두고도 계속 손자만 찾으셨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가슴이 미어지도록 슬펐다. 한국에 온 이후로 그동안 울고 싶었던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지만 남자이기 때문에 울지를 못했었는데, 어제 할머니 소식과 함께 복받치는 설움에 그만 이불이 다 젖도록 눈물이 쏟아져 그칠 줄을 몰랐던 것이었다. 할머니의 마지막 모습이라도 생생하게 듣고 싶어 당장 고향으로 달려가고 싶었지만, 현실은 결코 그럴 수가 없었다. 휴가를 얻기가 어렵다기 보다는 한 달 수입에 해당하는 왕복 항공료 등 금전적 문제가 중요했기 때문이었다.
어머니께서는 한국으로 시집가서 살고 있다는 Mai의 전화번호도 가르쳐 주셨다. 그러나 이 또한 전화를 걸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다. 가난해서가 아니라, 몸도 마음도 초라해져버린 자신이 창피스러워 통화를 할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울기를 반복하며 새벽녘까지 지새우다가 잠이 들자마자 다시 기상시간을 알리는 알람소리에 잠을 깨었다. Van의 눈에서는 천정이 빙글빙글 돌았다. 잠시 앉아 정신을 가다듬은 다음 물을 한잔 들이켰다. 세수를 할 기운도 없는 듯 하였다. 그러나 아침은 먹어야 일을 할 수가 있었다. Van은 가방을 뒤져 어제 일요일에 사다 놓았던 라우무이를 꺼냈다. 밥 한술, 국 한 그릇이라도 먹으려면 아무래도 식욕을 돋우기 위해 고향 내음 같은 베트남 특유의 향긋한 양념이 필요할 것 같아서였다.
식당 안에는 중국인들 한 팀과 태국인 한명, 방글라데시인 두 명이 앉아 식사를 하고 있었다. Van은 밥 한술 정도와 국 한 그릇을 가지고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가지고 온 라우무이를 국에 넣었다. 라우무이는 쌀국수(퍼, Pho)에 넣어야 제 맛이 나지만 그것을 특별히 자기만 끓여 달라고 하기도 번거로워 그냥 식당에서 주는 한국식 국에다 섞어 먹는 것만으로 만족해야 했다. 한국인들이 김치를 안 먹고 못살듯이 Van은 라우무이를 오랫동안 안 먹으면 식욕을 영영 잃을 것만 같았다. 정말 오랜만에 맡아보는 향긋한 냄새... 할머니께서 떠나셨기 때문일까? 오늘따라 베트남 음식, 고향생각, 가족생각이 너무나 간절하였다.
밥은 거의 먹지도 않은 채 국물만 3분지 1정도 떠먹었을 때였다. 식당 입구 쪽에서 낮 익은 목소리와 함께 문을 열고 들어오는 사람의 모습이 보였다. 바로 출근하자마자 커피를 마시러 온 상일이었다. 그는 몇 걸음 걸어 들어오더니 갑자기 코를 비틀고 얼굴을 찡그리면서 소리를 지르기 시작하였다.
“아니, 이거 아침부터 무슨 냄새야?”
Van은 숨을 죽이며 고개를 숙인 채 곁눈으로 힐끗 쳐다보니 아니나 다를까? 자신을 보고 소리를 지르는 것이었다. 바로 라우무이의 냄새 때문이었다. 그리고는 무슨 큰일이라도 난 것처럼 욕지거리를 퍼붓기 시작하였다.
“뭐야, 새끼야! 그거 안 치워? 그런 거 먹고 싶으면 네 방에 가서 혼자 처먹어야 할 거 아냐. 왜 여기서 냄새피우고 지랄이야.”
Van은 대꾸도 하지 않았다. 베트남 음식도 어디까지나 사람이 먹는 음식인데 식당에서 먹는 음식 따로 있고 방에서 먹는 음식 따로 있다는 것은 억지라고 생각되었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못마땅한 나머지 그냥 한마디 하는 것으로 Van은 생각하고 말았다. 하지만 상일은 그냥 하는 말이 아니었다.
“야 임마, Van! 내말이 말 같지 않아?”
그러나 이번에도 Van은 말을 듣지 않았다. 한국에는 ‘밥을 먹을 땐 개도 건드리지 않는다.’ 라는 격언이 있는데, 지금 당장 어쩌란 말인가? 아니, 그의 말에 따라서 고분고분 움직일 기운도 없었다. 식당에 있던 여러 사람들이 식사를 하다말고 모두 이쪽을 쳐다보고 있었다. 상일은 자존심이 상했던지 더 이상 참지 못하고는 구두를 신은 채 의자를 밟고 식탁 위로 올라섰다.
“다시 한 번 말하겠다. 치워, 당장! 안 치울래?”
역시 말이 없었다.
“하나!”
식당 안은 쥐죽은 듯 조용하였다. 고요히 침묵만 흘러갈 뿐 Van은 요지부동 묵묵무답에 변함이 없었다.
“둘!”
이번에도 Van은 움직이지 않았다. 조금도 흔들림 없이 그저 국물을 숟가락으로 떠서 입안에 넣을 뿐이었다. 상일은 인내의 한계를 넘어선 듯 주먹을 불끈 쥐고는 힘차게 마지막 숫자까지 세고 말았다.
“세~엣!”
그러나 태산 같은 경고에도 요지부동은 마찬가지였다. 사람들은 어떻게 될지 몰라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숨을 죽이며 바라만보고 있었다. 폭풍의 전야 같은 분위기 속에서 다시 한 번 Van의 입으로 또 한 술의 국물이 들어가려는 순간, 미친개처럼 상일의 두 눈에서는 번개 같은 불꽃이 번쩍 튀었다. 드디어 해머 같은 묵직한 발길로 라우무이 냄새 풍기는 국그릇을 부서져라 힘껏 걷어차고 말았다.
“파팍!”
상일의 발길은 사정없이 국그릇을 날리며 Van의 턱을 무참하게 강타하였다. 동시에 국그릇은 Van의 턱 아래로 튕겨져 날아가 얼굴과 가슴에 뜨거운 국물과 삶아진 야채건더기를 몽땅 쏟아 부었다. 갑작스런 충격에 Van은 의자와 함께 뒤로 발라당 나가 자빠졌다. 라우무이의 냄새는 더욱 진하게 식당 안을 퍼져 나갔다. 그러나 이런 상황에서도 그의 손아귀에는 국물을 떠먹던 숟가락만큼은 놓치지 않고 그대로 쥐어져 있었다. 어떠한 위급한 상태에서도 입에 음식을 날라야 할 숟가락만은 결코 놓을 수가 없었는지 모른다. 주위 사람들은 돌발적인 이 광경에 깜짝 놀라 입을 벌린 채 벌벌 떨며 바라보고 있었다.
Van은 큰 대(大)자로 뻗어버렸다가 잠시 후 깨어났다. 정신을 차리려는 듯 누운 상태로 천정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두 눈을 한 번 깜빡하였다. 다음 비틀거리며 천천히 일어섰다. 그러자 상일은 앞에 서 있는 Van을 향하여 또 다시 준엄하게 경고를 퍼부었다.
“공산당 같은 자식! 어디라고 더러운 냄새를 풍기고 있어. 뒈지고 싶지 않으면 존 말 할 때 베트남으로 꺼져!”
말이 계속되는 동안 Van의 입술과 양 주먹은 한차례 경련을 일으키듯 부르르 떨었다. 고개 숙인 안면의 두 눈은 마치 상일의 경고를 빠짐없이 새겨들으려는 것처럼 굳건히 감겨져 있었고, 짤막한 시간이나마 식당 안에는 또 다시 살벌한 침묵이 흘렀다.
긴장이 고조되자 다시 눈을 뜨고는 잠시 머뭇머뭇 거렸다. 바로 이때, 몸이 앞으로 기울며 슬그머니 넘어지는가 싶더니만, 갑자기 양 팔을 펴며 달려들어 책상 위에서 거만한 자세로 서있는 상일의 두 다리를 감싸 안았다. 동시에 앞으로 힘껏 끌어 잡아당기며 머리로는 가슴팍을 잽싸게 들이 받았다. 갑작스런 Van의 행동에 중심을 잃은 상일은 다리를 허공에 휘저으면서 누운 자세로 붕 떴다가 식탁 위로 떨어졌다. 뒤통수가 쿵! 하고 식탁을 두드렸다. Van은 이때를 노칠 새라 분노에 찬 손으로 쥐고 있던 숟가락을 그의 왼쪽 눈을 향하여 힘껏 내리찍어버렸다.
“푸욱!”
숟가락은 의도한 목표지점에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정확하게 꽂혀버렸다. 위 눈썹과 아래 눈썹 사이를 파고들어가 동공이건 수정체건 단단한 유리체며 망막과 시신경까지, 다시는 회복될 수 없도록 무참하게 괴멸시키며 깊이깊이 꽂혀버렸다.
너무나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일격을 받은 상일조차도 비명을 지를 새 없이 항거는커녕 두 손으로 한쪽 눈을 감싸고 있을 뿐이었다. Van은 다시 손에 힘을 주어 숟가락을 비틀어 뽑았다. 엉망이 된 눈구멍에서는 눈알이 통째로 이끌려 나오다가 감싼 두 손에 막히면서 검붉은 핏방울이 솟구쳐 사방으로 흩어졌다. 그러나 모처럼 독기를 품은 Van의 오른손은 멈출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으스러진 눈알을 감싼 두 손과 함께 오른쪽으로 머리를 돌리자, 용서와 타협을 거부하듯 이번에는 왼쪽 귀를 향하여 힘차게 내리쳤다.
“으아~ㄱ!”
그제서야 상일은 고통스레 신음 섞인 비명을 지르고 말았다. 뒤늦게 구경하던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와 두 사람을 떼어 놓았다. 상일의 귀는 반쯤 찢어져 피로 머리를 감은 듯 검은 머리칼이 모두 붉은 색으로 물들여져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Van의 격한 감정은 결코 진정되지 않았다. 터져나갈 듯 울분을 참지 못하고 충격으로 휘어진 숟가락을 허공에 던지며 괴성을 질러대었다.
“이야~~~~아.”
Van의 괴성은 더 이상 살기를 포기한 분통 하는 울부짖음에 다름 아니었다. Van의 얼굴과 가슴에는 지나온 1년간의 얼룩진 자신의 역사처럼 눈물과 핏방울과 국물이 범벅이 되어 지저분하게 묻어 있었다. 사람들 몇 명이 상일을 부축하며 병원으로 향하는 듯 어디론가 걸어 나가자, 시멘트바닥에 주저앉아 울고 있는 Van 앞에는 나머지 구경꾼들이 걱정스런 표정으로 수군대며 서 있었다.
잠시 후 Van은 무슨 생각을 했는지 충혈 된 두 눈을 부릅뜨고 미친 사람처럼 벌떡 일어섰다. 그리고는 식당을 뛰쳐나가 기숙사로 달려갔다. 옷을 갈아입고 손과 얼굴에 묻은 피를 휴지로 대충 닦은 다음, 기껏해야 가방 두 개에 불과한 짐을 주섬주섬 꾸려 밖으로 뛰어 나갔다. 방글라데시인 연수생이 Van의 움직임을 보고 있었지만, 그는 같은 처지의 외국인 노동자로서 동료가 피신하고 있다는 것을 직감했음인지 못 본체 다른 방향으로 고개를 휙 돌려버리고 말았다.
14. 도망자의 각오
--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