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인들의 한국 이민 개척사
제2부. 개척시대
14. 도망자의 각오
큰 길에 다다르자 첫 번째로 다가온 버스를 탔다. 어디로 가는 버스인지 알아볼 겨를 도 없이 무작정 탄 것이었다. 갑작스레 도망자 신세가 된 그에게는 차분하게 목적지를 정할 시간적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시간은 벌써 아홉시 반을 지나고 있는데 출근시간이 지나서 그런지 손님들은 거의 타고 있지 않았다.
모자를 쿡 눌러 쓴 채 의자에 기대어 한참 눈을 감았다가 다시 뜨고는 몇 정거장을 더 지나서야 어디로 가는 버스인지를 확인해 보았다. 앞 유리창에 글씨가 반대로 나타나있어 잘 모르겠지만 안내멘트를 들으니 지금 신갈을 지나가고 있는 중인 것 같았다.
Van은 일단 버스에서 내렸다. 그리고 번잡하지 않은 쪽으로 걸어가 수첩을 뒤져보았다. 전화를 걸어서 알아볼만한 곳은 몇 군데 적혀있지만 사람을 해하고 도망 다니는 자기를 누군가가 알아볼 것만 같은 두려움에 찾아 나설 용기가 나지 않았다. 어느 정도 진정은 되었지만 아직도 가슴이 크게 뛰고 있었으며 수첩의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손가락이 떨리고 있었다. 갑자기 우렁찬 굉음이 들리기에 둑 위를 보니 전철이 지나가고 있었다.
‘휴~, 이젠 갈 곳이 없어. 고국에도 갈 수 없고, 차라리 저기에 달려가 몸을 던져 죽어버릴까? 모든 꿈은 다 끝나버렸어!’
차라리 죽고 싶다는 생각이 쉴 새 없이 머릿속을 스치며 지나갔다. 돌아가신 할머니께도 미안하고 빚을 얻어 한국에 보내주신 아버지 어머니께도 살아서 다시 찾아뵐 면목조차 없었다.
‘그놈 죽지는 않았겠지? 하지만 한쪽 눈을 잃었으니 평생 나를 원망하겠지..., 아냐, 그놈은 죽었어야 마땅해. 정말 죽어야 될 나쁜 놈이었어.’
그러나 눈앞이 캄캄했다. 길을 걸으면 누군가가 자신을 잡으러 오는 것만 같았고, 허기진 속은 쓰리기 시작하였으며 머릿속은 복잡하고도 아팠다. 얻어맞은 턱에도 건드릴 때마다 심하게 통증이 왔다. 하지만 약을 사러 약국에 들르는 것도 겁이 났다. 사람들이 싫어졌다. 한국인 모두가 무서워 진 것이다. 이 답답한 심정, 누군가에게라도 털어 놓아야만 잠시라도 숨을 쉬며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는 동안 Van의 눈길은 자신도 모르게 Mai의 전화번호 위에서 머무르고 있었다. 떨리는 손가락으로 번호 버튼을 하나하나 눌러갔다. 확인 버튼을 누르니 잠시 후 신호음이 들렸다.
“여보...세요.”
서툰 한국말에 긴장된 순간, 머리칼이 주삣 솟아오름을 느꼈다. 저 낮 익은 음성... 틀림없는 Mai였다. 그러나 무심코 오른손으로 눈길을 돌리다가 손등에 남아 있는 핏자국을 보고는, 숟가락에 찍혔던 눈알의 모습, 숟가락이 뽑힐 때 솟구쳐 오르던 선혈 등의 영상이 떠올라 또다시 숨이 차오르고 가슴이 두근거리면서 입이 얼어 붓고 말았다. 더 이상 한마디도 못하고 얼른 전화를 끊었다. 누군가가 Mai 옆에서 듣고 있을 것만 같기도 하였다. 뜻 모를 눈물도 나올 것만 같았다.
하늘을 보니 하얀 구름이 군데군데 남쪽을 향하여 흘러가고 있었다.
‘저 구름이 베트남까지 간다면 며칠이나 걸릴까? 고향이 너무 그립구나. 돈이고 뭐고 다 그만두고 고향으로 가고 싶은데...’
침으로 손 등에 남아있던 핏자국을 지우고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 또다시 손가락은 핸드폰의 리다이알 버튼을 눌렀다. 잠시 후 목소리가 들리는데 이번에는 아까와 달리 정답고 자연스런 베트남 말이었다.
“Alo(여보세요)?”
마음을 가다듬고 용기를 내어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Chao em(안녕), Mai?”
“Va... Van? Van!”
Mai는 첫 마디에 목소리를 알아듣고는 놀라움과 반가움이 뒤섞이어 갑자기 말이 빨라졌다. 그러나 Van은 막상 무슨 말을 꺼내야 할지 몰라 당황스러웠다.
“어디야, Van. 보고 싶어. 말해봐... 왜 대답을 안 하는 거야, 응? 왜?”
“미안해, Mai”
“뭐가 미안해, Van... 목소리가 왜 그리 힘이 없는 거야? 응? 제발 끊지 말고 말해봐. 어디야?”
Mai의 음성은 반갑다 못해 울먹이는 목소리였다. 오랜만에 낭랑한 Mai의 목소리를 들으니 말 안 해도 행복하게 잘 살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래서인지 비참해진 자신의 처지가 더욱 처량하게만 느껴졌다.
“잘 있었어? 여... 여기? 신갈... 신갈 알아?”
“신갈 알아, 차 타면 한 시간? 여긴 오산이야. 이리 올 수 없어?”
“그래, 지금은 갈 수 없어. 하여튼 반갑다. 언제 다시 만나 이야기 하자.”
“그럼 전화번호라도 알려 줘.”
“안돼! 이 전화는 안 돼, 나 전화번호 바꿀 꺼야. 그때 알려줄게. 다음에 보자.”
“왜 그래, 조금만 더 이야기하면 안 돼?”
“응, 다음에 봐. 잘 있어.”
Van 자신도 더 많은 이야기를 하고 싶었지만 웬 지 불안해서 차분하게 이야기를 주고받을 수가 없었다. 통화가 이루어져 목소리를 들은 것만으로도 위안을 삼으며 전화를 끊은 다음 도로 쪽을 보니 ‘남사’라고 쓴 버스가 지나갔다.
‘남사?’
낮 익은 문구를 보고는 가만히 생각해보니 농장이 있다는 곳이었다.
‘그래, 남사로 가자. 월급이 좀 적으면 어때, 지금은 농사일이라고 피할 처지가 못 되잖아? 사람취급만 받으면 난 만족하겠어.’
100여 미터 더 걸어가니 버스정류장이 나타나 남사로 가는 버스를 탔다. 시시각각 창밖으로 보이는 오고가는 사람들이 모두가 다 행복해 보였다. 아무리 둘러봐도 불행한 처지의 모습은 자신 혼자뿐이었다.
‘나도 베트남에 있을 땐 비록 가난했지만 행복했었잖아? 돈이 없어도 멸시하는 사람 없고 남들과 싸울 일도 없었어. 근데 내가 왜 여기 와서 이 모양이야? 가난? 돈? 1년 동안 죽어라하고 일했는데도 왜 돈은 못 모았어?’
주머니에는 월급타서 쓰고 남은 돈 70여만 원이 있었다. 베트남 집에서는 돈이 올 때를 목이 빠져라 기다리고 있겠지만 지금 처지에 이 돈을 송금할 수는 없었다. 사람이 막다른 골목에 몰리게 되면 무슨 짓이든 할 수 있는 용기가 생긴다는데...
‘그래 좋다. 지금부터 다시 시작해보는 거야. 더러운 소리 안 들으며 살기 위해 정말 돈 많이 벌어야 해. 10년이 가도 20년이 가더라도 꼭 저기 저 사람들처럼 행복하게 살고 말꺼야. 돈, 돈...’
Van은 모처럼 비장한 마음으로 두 주먹에 힘을 주었다. 달리는 버스도 엔진소리 힘차게 앞으로 달려 나아갔다.
15. 가슴속에 새겨진 붉은 깃발
Mai가 산다는 오산을 지나 고개를 넘어 구불구불 얼마를 더 가니 비닐하우스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버스에서 내려 주위를 보니 길에는 다니는 사람도 별로 없었다. 이제 조금은 마음이 놓이는 것 같았다. 농장 입구에 있는 창고 같은 건물을 지나가는데도 인기척은 없고 대신 조그마한 강아지 한마리가 졸졸 쫒아 다니며 짖었다. 두 번째 하우스의 문을 열고 들여다보니 아주머니 한 분과 아저씨 한 분이 화분에 담겨 있는 화초를 다듬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저, 여기 일 없어요?”
“누..구...찾아요?”
이 사람들도 한국말이 서툰 것으로 보아 한국사람 같지는 않았다. 동남아 외국인 노동자라는 것을 직감한 Van은 다시 한 번 용기를 내어 물었다.
“여기 일 하고 싶어요.”
“아, 어디 사람?”
아주머니도 Van이 외국인이라는 것을 알아채고는 경계의 눈을 풀고 조금은 반가워하며 다정하게 물었다.
“베트남”
“베트남? 난 태국사람. 하하하, 반가워요. 여기 우리 남편...”
“안녕하세요. 근데 여기 사람 안 써요?”
“몰라, 사장님 없어. 언제 왔어요, 한국”
“1년... 일 하는 사람 몇 명이예요?”
“우리 밖에 없어. 전화번호 줘요, 사장님 오면 말 할게.”
태국 부부는 비록 입은 옷이 남루했지만 매우 행복해 보였다. 말도 꽤 친근하게 해 주었다. 그러나 전화번호는 줄 수가 없었다. 지금 자신은 도망 다니는 신세였기 때문이었다. 여기저기 전화번호를 알려주고 다니다가 경찰에 잡혀가는 날에는 모든 것이 끝난다고 생각하며 농장을 나와 다시 다른 하우스가 있는 농장을 향해 걸어갔다. 밭을 지나 차 한 대 겨우 다닐 수 있는 좁은 길로 한참을 걸어가니 기온이 별로 높지 않은데도 꽤나 힘이 들고 더웠다. 그동안 건강이 많이 약해졌다는 증거였다.
다시 두 번째 농장에 도착하여 짖어대는 개를 뒤로하고는 줄지어 서있는 하우스의 출입문을 하나씩 열어보며 나아갔다. 그러나 여는 곳마다 사람은 없고 더운 열기 속에 이름 모를 화초들만 빽빽하게 진열되어 있었다. 하는 수 없이 발길을 돌리며 또 다른 하우스 농장을 찾아 나서니 이젠 배가 고팠다. 큰길가로 나와 조그마한 마트에서 빵 몇 조각과 과자 몇 봉지 그리고 음료수를 사 가지고 다시 밭둑으로 돌아왔다.
둑에 앉아 빵을 먹는 동안 베트남을 출발하여 비행기를 타고 한국에 온 이후 지금까지 생활했던 짧지 않은 과정이 주마등처럼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희망에 들뜬 마음으로 공항을 빠져나와 서울을 지나면서 높디높은 빌딩 숲과 갖가지 고급차량의 홍수 속에서 놀라움을 금치 못했던 일, 한강에는 수상스키와 유람선이 지나갔고 물위에 떠 있는 수상시설들은 용궁처럼 화려하기만 했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이런 곳에 왔다는 것이 커다란 행운으로 느껴졌었다. 아무리 한국이 잘사는 나라라고 해도 이 정도로 엄청난 부자의 나라인줄은 몰랐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지옥 같은 공장에 도착해서는 역겨운 플라스틱 냄새에 숨이 막혔고, 첫 월급을 탔을 땐 기대한 것보다 액수가 너무 적어 속았다는 느낌마저 들었으며, 한국의 물가가 너무 비싸다는 것에 대하여 다시 한 번 놀랐다.
그러나 이런 것들은 다 참고 견딜만한 것들이었다. 월급이 적고 물가가 비싸면 덜 먹고 덜 쓰면서 살면 되는데, 정말로 괴로웠던 것은 사람의 국적에 따라 차별을 일삼고 사람취급을 하지 않는 것이었다. 공장에서의 생활은 육체적 정신적으로 고된 노예나 다름없는 생활이었다. 툭하면 베트남으로 돌아가라고 말하는 것도 돈을 벌기 전에는 돌아갈 수 없는 자신으로서는 너무나 견디기 힘든 자존심 상하는 말이었다.
빵을 다 먹고 나니 어머니가 그리웠고 아버지의 목소리라도 듣고 싶어 견딜 수가 없었다. 하지만 전화는 걸지 않았다. 지금 이 심정으로 전화를 걸어봤자 좋은 말만 할 자신도 없었을 뿐 아니라 말 한마디 잘못하여 괜한 걱정만 끼쳐드릴 것 같은 두려움이 앞섰기 때문이었다.
무거워진 다리를 펴고 다시 일어섰다. 어느새 해가 기울어 저녁노을이 핏빛처럼 붉게 물들고 있었다. 새로운 하우스 농장에 도착하니 트럭을 세워놓고 몇 사람이 분주하게 화분을 싣고 있었다. 아마도 생산한 작물을 출하하는 모양이었다. 얼마 후 차량이 떠나가고 농장주인인 두 부부만 남아있어 말을 걸었다.
“안녕하세요.”
“네, 안녕하세요. 무슨 일로...?”
“여기 사람 안 써요?”
“어느 나라예요?”
“베트남”
“아, 베트남. 비자 있어요?”
“네, 있어요.”
사장님은 불법체류자가 아닌지 묻는 것 같았다. 그놈의 불법체류 문제, 그러고 보니 한국인 모두가 불법체류 외국인 근로자에 대한 감시자와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권과 외국인등록증을 보여주자 안심을 했는지 표정이 다시 밝아졌다.
“그런데, 여기는 침식이 안 돼요. 잘 곳 있어요?”
“잘 곳? 방 아직 없어요.”
“그럼 안 되겠는데. 여기는 잠잘 곳이 없거든.... 저기 버스를 타고 좀 더 가다보면 ‘신촌동’이 나오는데, 거기에 하우스 농장 많아. 그곳에 가면 재워주는 곳이 있으니깐 글루 가 봐요.”
Van은 걱정이 태산 같았다. 날은 어두워지고 자기를 받아주는 곳은 찾지 못했다. 일자리는 고사하고 당장 잠 잘 곳이 없어 오늘 밤이 문제였다. 하는 수 없이 돌아서서 다시 둑을 걸으며 수첩을 꺼내어 펼쳐보니 ‘의림원’이라는 농장이 적혀 있었다. 핸드폰으로 전화를 걸어 물어보았지만 결과는 역시 실망이었다. 말이 잘 통하지도 않았을 뿐 아니라 일러주는 곳이 도대체 어딘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얼마나 답답했는지 그쪽에서 먼저 전화를 끊고 말았다.
다리에 힘이 빠졌다. 다시 큰길로 나가 농장주의 말대로 버스를 타고 몇 정거장을 더 가니 정말 ‘신촌동’이라고 쓰여진 팻말과 함께 또 다른 하우스 농장지대가 나왔다. 그곳에서 내려 오른쪽 ‘성진원예’라는 간판이 있는 곳으로 걸어가 보았다. 그러나 하우스 주위를 돌며 아무리 찾아봐도 사람은 없었다. 노랫소리가 들리는 하우스가 있어 들어가 보니 하우스 안에 설치해 놓은 라디오 소리였다. 다시 밖으로 나와 둘러보니 이미 밤은 깊어가고 있었다. 기온도 꽤 내려가 제법 쌀쌀함을 느꼈다. 눈앞이 캄캄하고 앞일은 막막한데, 양 어깨에 걸친 가방의 무게도 힘에 겨운지 자꾸만 아래로 아래로 늘어지고 있었다.
길가로 나와 버스정류장 의자에 앉으니 춥다 못해 팔에 소름이 끼치기 시작하였다. 가방에서 점퍼를 하나 꺼내어 입었다. 그리고는 에라 모르겠다! 하며 자포자기 상태로 그 자리에서 벌러덩 드러누워 버렸다. 하늘에는 희미한 별빛이 그런대로 반짝이고 있었지만, 베트남에서처럼 밝거나 아름답지는 않았다.
‘베트남 하늘엔 오늘 밤도 초롱초롱 밝은 별이 빛나겠지... 나의 조국 베트남, 정말 눈물 나도록 좋은 곳이야. 돈만 어느 정도 있다면 말이야. 그놈의 돈... 하긴 돈만 있으면 이곳 한국도 좋지. 돈만 있으면 개만도 못한 취급 안 당해도 되고, 없는 것 없고 뭐든지 다 할 수 있는 천국 같은 곳, 바로 여긴데 말이야.’
처음 한국에 왔을 때는 한국이 천국처럼 좋아보였기 때문에 열심히 일하여 많은 돈을 벌게 되면 어떻게든 부모님들을 초청하여 한국의 이곳저곳을 구경시켜 드리려고 마음을 먹었었다. 다만 현실적으로 그에 앞서 먼저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 가난에서 허덕이는 부모님을 해방시켜 드리는 일이었을 뿐이다. 그런데 지금 돈을 벌기는커녕 일만 저질러놓고 오늘 당장 갈 곳도 잘 곳도 없이 거지처럼 저 높은 하늘만 바라보고 길가에 누워있는 것이 아닌가? 원수 같은 배상일의 얼굴이 또 다시 눈앞에서 아른거렸다.
‘배상일! 베트남엔 붉은 하늘이 없어. 낮이면 힘차게 푸르고 밤이면 차분하게 검지. 공산당이고 민주당이고 난 그런 거 몰라. 하지만 베트남 국기가 왜 아직도 빨간지 아니? 바로 네 피 때문이야. 내 조국의 영혼이 깃들어 있는 승리의 붉은 피, 너는 부르주아지보다도 더 나쁜 귀족 노동자, 프티 부르주아지(petit-bourgeois)! 네 피는 오늘, 내 가슴속에 새겨진 조국의 깃발을 다시 한 번 붉게 물들인 거야. 기억해 두마, 영원히... 영원히!’
Van은 자신도 모르게 입술을 깨물었다. 자라면서 친구들과 싸움 한 번 제대로 해보지 못한 자신이 어디서 그런 용기가 솟아 배상일을 숟가락으로 잔인하게 찍었는지. 하지만 그때 울분을 참지 못한 나머지 무조건적으로 주먹으로 때리거나 이빨로 물어뜯는 정도로 공격을 했다면, 덩치도 자신보다 크고 힘이 몇 곱절 센 배상일의 반격에 아마 뼈도 못 추렸을 것이다. 목숨을 건 크나큰 모험을 치렀다는 생각이 들었다.
‘맞아, 운명은 모험으로 바뀌는 거야. 하지만 준비가 없었으니 이 모양 요 꼴이 되는 거겠지.’
옆으로 드러누워 이런 생각을 하며 길가의 화단을 보니 자신의 처지를 위로하기라도 하듯 가로등 불빛아래 양귀비꽃들이 고운 색깔과 아름다운 자태를 드러내며 방끗이 웃고 있었다. 하지만 밤은 점점 더 깊어만 가고 갈수록 기온은 더욱 떨어져만 갔다. 이젠 자동차가 지나갈 때마다 휘몰아치는 찬바람이 옷깃과 바짓가랑이 속으로 스며들어 뼈마디까지 얼어붙는 듯하였다. 이제 더 이상 견딜 수가 없었다. 이곳에서 밤을 새다가는 몇 시간 못가 얼어 죽고 말 것만 같았다.
Van은 생각다 못해 몸을 일으켜 앉았다. 다시 가방을 들고 벌떡 일어섰다. 그리고는 아무 생각 없이 농원 하우스로 안으로 다시 걸어 들어갔다. 주위를 두리번거리더니 한 쪽에 비스듬히 세워져 있는 스티로폼 한 장을 가져와서 바닥에 깔고는 그곳에 가방을 놓아 베개처럼 베고 벌렁 누워버렸다. 지칠 대로 지쳐 피곤하던 몸은 후끈후끈한 하우스 안의 공기 덕분에 누운 지 몇 분 안 되어 잠속으로 깊이 빠져들고 말았다.
16. 인간으로 태어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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