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투남인들의 한국 이민 개척사
제2부. 개척시대
19. 반전
“넌 뛰어봤자 벼룩이었지. 난 남사에서 두 달을 헤매었고, 이 마을에서 열흘을 뒤진 거다. 결국 3일 전 너를 찾아내었고 호시탐탐 오늘의 기회를 노린 거야. 여기서 일하는 자 너밖에 없다는 것도 알았구. 자, 이제 벌을 받아야 해. 반항하면 이 도끼가 네 등과 머리를 무참하게 쪼개버리고 말거다. 발을 올려, 어서!”
상일의 목소리는 날카로웠다. 결코 위협으로만 그칠 일은 아니었다. Van은 사시나무 떨듯 부들부들 떨면서 추상같은 얼굴의 상일을 바라보는데, 도끼를 잡은 상일의 손이 또다시 머리 위로 올라가고 있었다. 소스라치게 놀란 나머지 손을 떨다가 자신도 모르게 무엇인가가 만져졌다. 그것은 바로 전원스위치였다. Van은 생각하고 말고 할 여유도 없이 손잡이를 힘껏 내려버렸다. 순간, 하우스 안은 온통 깜깜절벽으로 변해버렸다. Van은 이때를 놓칠 새라 화분 하나를 들어 상일의 얼굴을 향해 힘껏 던져버렸다. 상일이 움찔거리는 찰라 Van은 재빨리 작업대 밑으로 기어들어갔다. 일격을 당한 상일은 Van을 향해 손도끼를 한차례 힘껏 휘둘러대었다. 그러나 바로 머리 위에는 사방팔방으로 뻗은 급수파이프가 지나가고 있었다. 도끼는 허공도 가르지 못하고 설치되어 있던 급수파이프에 부딪혀 불꽃을 튀기고는 옆으로 튕겨져 나갔다. 한차례의 강한 쇳소리가 하우스 안에 울려 퍼졌다.
“땡~그렁~ 잉~잉~”
Van은 신속하게 바닥에 있던 연장을 찾아 더듬거리다가 커다란 파이프렌치 하나를 잡았다. 상일은 이제야 Van이 작업대 아래로 들어갔음을 알고는 허리를 굽히며 어름짐작으로 도끼를 다시 내려치려는 순간, Van이 손에 쥔 파이프렌치로 상일의 다리를 향하여 있는 힘을 다해 힘껏 휘둘러버렸다.
“딱!”
파이프렌치는 오른쪽 다리의 정강이에 부딪히며 뼈 부러지는 소리가 크고 짤막하게 들렸다. 동시에 비명소리도 들렸다.
“아이쿠!”
상일은 도끼를 떨어트리며 그 자리에 힘없이 꼬꾸라지고 말았다. 도끼는 바로 Van의 손앞에 떨어졌다. 재빨리 더듬어 도끼를 집어든 Van은 다시 한 번 상일을 향해 휘둘러대었다. 도끼는 땅을 짚고 있던 상일의 왼쪽 손목마저 사정없이 찍어버리고 말았다.
“아이구구...”
바닥에 털썩 쓰러져버린 상일의 비명은 곧 앓는 소리로 이어져갔다. 이제 상일이 전의를 상실한 것을 안 Van은 도끼와 파이프렌치를 들고 작업대 밑에서 조심스레 기어 나왔다. 밖의 자동차 불빛 덕에 전등이 꺼질 당시보다는 훨씬 덜 캄캄하였다. Van은 다시 벽으로 다가가 불을 키고는 여유롭게 상일을 밟고 넘어가 그 자리에 우뚝 섰다. 그리고 이마에 맺힌 식은땀을 손등으로 문지르고는 언제 떨고 있었냐는 듯이 기세등등하게 입을 열었다.
“잘 들어라, 배상일!”
“으흐흐..., 아이구 내 다리”
“넌 결코 나를 이길 수 없어.”
“으흐흐... 그래... 그래, 졌어.”
이제 상일의 목소리는 비통함을 참지 못한 패자의 울음에 다름 아니었다.
“졌어. 흑흑... 인정... 한다구, 엉엉... 어서 날 죽여.”
“난 사람을 죽이지 않아. 나를 괴롭히지만 않는다면 나도 남을 괴롭히지 않거든. 넌 악마야. 파렴치한 귀족 노동자.”
“무슨 소리야, Van! 베트남 놈들은 더 파렴치한 개새끼들이야. 베트남 인간들은 내 인생을 빼앗아 갔다구, 알아? 세상에 결혼을 이용하는 년들이 어딧냔 말이야, 응? 돈 몇 푼 벌려구 몸을 팔아 내 인생을 망가트려? 흑흑...”
“오, 그건 인정하지, 하지만 문명사회에서 돈을 주고 신부를 사려는 놈들도 똑같아. 그리고 난 노예가 아니다. 절대 팔려온 게 아니라구~!”
Van은 상일의 머리를 향해 도끼를 내리치려다가 멈칫 하고는 분을 삭히며 작업대 위를 향하여 힘껏 내리찍고 말았다.
“넌 죽일만한 가치도 없는 놈이야.”
Van은 도끼와 연장을 멀리 집어 던지고는 문을 열고 밖으로 향하였다. 그러자 상일이 소리쳤다.
“어디가, 이리 와!”
“아직도 할 말이 더 남았니? 싸움은 끝났어.”
“끝났으니까 마무리를 해야지. 빨리 그 도끼로 내 머리를 찍어줘. 부탁이야. 마지막 부탁이다. 난 졌어. 인정한다구. 제발 날 죽여줘~, 죽여달라구~, 흑흑...”
“미안하군, 마지막 부탁을 못 들어줘서.”
“안 돼! 오늘을 얼마나 기다렸다구, 그냥 가면 절대 안 돼, 절대 안 돼! 이 원수. 엉~ 엉~, 난 너무나 고통스럽다구~.”
Van은 큰 호흡으로 마음을 한 번 더 가라앉힌 다음, 또렷하게 대답하였다.
“대한민국 배상일, 잘 들어라! 너는 나를 죽이지 못했지만, 나는 너를 죽이지 않았다. 이것이 너와 내가 다른 점이다. 부디 잘 살아라!”
이어 엎드려있는 상일의 앞으로 다가가 등에 가래침을 한 번 탁! 뱉고는 문밖으로 유유히 걸어 나가 숙소로 가서 짐을 챙겨 지나가는 버스를 탔다. 그리고 농장주 사장님께 전화를 걸었다.
“사장님 죄송합니다. 저 말씀도 못 드리고 집을 떠납니다.”
“무슨 소리야? 뭔 일 있었어?”
“네, 방금 또 사고를 쳤어요. 전에 말씀드렸던 배상일이 찾아왔거든요. 그놈 다리가 부러졌을 거예요. 제게 줄 월급으로 치료에 보태 쓰라고 하세요. 지금 하우스 안에 있거든요.”
“알겠네, 그럼 기산동에 있는 내 친구 김남일 사장한테 찾아가게나. 전화번호가 010-xxxx-yyyy이야.”
“감사드립니다. 그동안 너무 고마웠어요. 사모님께도 전해주세요.”
“꼭 성공하길 비네. 잘 가게.”
제3부. 젖은 땅에 뿌리가 자란다.
20. 참을 수 없는 모욕
--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