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갈 수 없는 꿈_11

베트남인들의 한국 이민 개척사

by 이종섭

제3부. 젖은 땅에 뿌리가 자란다.


20. 참을 수 없는 모욕


홈오토메이션의 화면에 남편의 얼굴이 비치며 벨이 울렸다. Mai는 걸던 전화를 급히 끊고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현관문을 열었다. 남편 동철은 술 냄새가 나고 표정도 별로 밝아 보이지 않았다. 동철이 퉁명스럽게 물었다.


“누구하고 그렇게 통화를 오래 하는 거야, 도대체?”

“엄마하고 잠깐 했어요.”

“또 거짓말 할래? 내가 회사에서 출발할 때부터 집에 올 때까지 한 시간 동안 통화중이었는데, 뭐? 잠깐 엄마하고 통화했다고? 베트남 사람들은 거짓말 안하고는 살 수 없는 거냐?”


사실 Mai는 6개월 전 한국에 시집와서 잠실에 살고 있는 친구 Anh하고 10분간 통화한 다음 베트남 엄마하고 약 30분간, 그리고 마지막에 Van하고 약 30분가량 통화를 하였다. 하지만, 항상 이들 부부간의 다툼은 전화문제에서 발단이 되었기 때문에 Mai로서는 솔직하게 말할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친척도 부모도 없는 먼 나라 한국 땅에서 외롭고 우울할 때 친구에게도 전화하지 않고 아기 얼굴만 바라보며 참고 살 수는 없었다. 그렇게 산다면 감옥이나 다를 바 없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한국 사람인 남편의 입장에서는 Mai가 베트남 사람들과 전화를 하거나 채팅을 하는 것을 무척 꺼릴 수밖에 없었다. 더군다나 남편이 옆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베트남어로 장시간 동안 남자친구와 통화를 한다는 것은 결국 남편을 무시하는 것이 되므로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었다. 툭하면 딱 잡아떼고 거짓말을 하는 Mai를 보고는, 베트남 사람들의 문화가 원래 그렇게 저급한 것이거나 아니면 한국인을 얕잡아보고 함부로 행동하는 것으로밖에 동철은 생각할 수가 없었다.

물론 이런 일이 처음 발견되었을 때에는 조용히 앉혀놓고 차분한 말투로 이해를 구했었다. 시간이 지나면서도 그런 일이 줄지 않고 계속되자 나중에는 따끔하게 야단을 치며 경고도 해 보았다. 그러나 항상 그 당시에만 잠시 노력하는 듯 보였을 뿐 또다시 시간이 지나면 마찬가지였다. 아니 오히려 점점 더 심해져서 이제는 아예 속이는 것이 일상화되다 못해 급기야는 부부간의 신뢰문제로까지 발전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래요, 사실은 전화 좀 했어요. 근데 무슨 ‘베트남 사람들은, 베트남 사람들은...’ 하는 거예요?”

“내가 전화 좀 하는 것 가지고 뭐라는 거 아니잖아. 했다하면 몇 십분, 그리고 남편 있는 여자가 왜 남자친구와 자주 전화를 해?”


갑자기 서로간의 음성이 커지기 시작했다.


“남자면 어때요, 그냥 친구예요. 친구에게 전화도 못해요?”

“너 자꾸 말대꾸 할 꺼야? 남자친구가 그리 좋으면 아예 그 친구 쫒아가지 뭣 하러 나와 결혼한 거야?”

“당신 무슨 말을 그리해요? 그럼 전화도 안하고 하루 종일 앉아만 있어요? 당신은 술 먹고 친구만나면서 나는 살림하고 아기만 봐요? 다른 친구들은 어머니 초청해서 한국에 몇 번씩 왔다가고, 부부가 함께 베트남도 다녀왔데요. 당신은 나에게 뭘 해줬어요? 내 친구 Anh은 남편이 매달 50만원씩 베트남에 송금도 해 준데요.”

“이게 점점 못 하는 말이 없어... 야, 너 돈에 팔려왔냐? 형편에 맞게 사는 거지, 한국사람 다 부잔 줄 알아? 경고하는데, 자존심 긁는 얘기 한 번만 더 지껄이면 그냥 안 둘 줄 알아, 알았어?”


이때 아기가 잠에서 깨어나 울기 시작하자 Mai는 말소리를 낮추었다.


“알았어요. 하지만 나도 힘들어요. 툭하면 베트남 가라고 하는데 자존심 무척 상했어요. 당신도 앞으로 그런 말 하지 말아요.”


오늘도 일촉즉발의 위기에서 겨우 진정되었다. 원래 이들은 서로 부부의 정이 없는 것이 아니라 문화적인 차이를 좁히지 못하는 것이 문제였다. 이런 문제가 부딪힐 때마다 갈등으로 이어지게 되고 그럴수록 남편은 더욱 자주 술을 마시며 귀가시간이 늦어지게 되었으며, 아내 역시 Anh이나 Van과 전화하는 시간이 많아지게 되는 것이었다. 단지 그 중간역할을 하는 자가 바로 그들의 한 살짜리 아들 ‘지국남’이였다. 따라서 국남이는 이들 부부에게서 있어서 가장 영향력 있는 화해의 중재자였고 가장 큰 희망이었으며 가장 소중한 재산이었다.

‘국남’이라는 이름은 할아버지께서 지어주신 이름이었다. 국남의 ‘국’자는 ‘대한민국’의 끝 자이고 ‘남’자는 ‘베트남’의 끝 자이며, 이는 한국과 베트남을 결합한다는 상징적 의미를 담았다고 했다. 다만 할아버지는 해장국집을 운영하시면서 가게에서 생활을 하시기 때문에 아파트에 분가하여 살고 있는 아들 식구들과 자주 만날 수 없는 것이 아쉬운 듯 하였다.

그러한 이유로 Mai는 언젠가는 시아버지의 해장국집에 나가 일을 해야만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남편이 벌어다주는 월급으로는 한국의 물가가 너무 비싸 생활하기도 벅찼으므로, 항상 마음에 걸리는 베트남 친정집에 송금하는 것은 꿈도 꾸어보지 못하였다. 하지만 해장국집에 나가 일하게 될 경우 한 달에 단돈 30만원씩이라도 보낼 수 있어 좋을 것으로 생각하였다. 30만원이면 베트남에서는 한 가족의 한 달 생활비에 해당하는 금액이었다. 뿐만 아니라 요즘 장사도 잘 안된다고 하시는데 1인당 140만원씩이나 하는 4명의 종업원도 3명으로 줄일 수 있어 아버님께도 도움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되었다.


“여보, 나 다음 달부터 아버님 가게에 나가게 해줘요.”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야? 아버지 불편하게 하지 마. 아기는 어떻게 하고...”

“가게에는 남자인 아버님보다 여자인 내가 더 필요해요. 내가 바쁠 때 아버님께서 아기 보시면 되구요. 우선 설거지부터 배울 거예요. 한국말이 좀 늘면 서빙도 할 수 있거든요. 그리고 요즘 자주 아버님께서 아프시잖아요, 갑자기 병원에 입원이라도 하시면 가게는 어떻게 해요.”


가만히 생각해보니 불경기인 요즘 그것도 나쁜 것 같지는 않았으나 아버지께서 불편하실까봐 동철은 선뜻 허용을 할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아버지께서는 아들보다도 며느리를 더 아끼고 귀여워하기 때문에 행여 부담스러워하시지나 않을까 걱정되기 때문이었다.


“난 몰라.”

“알았어요, 내가 아버님께 말씀드릴게요.”


이렇게 해서 우여곡절 끝에 시아버님께도 승낙을 받아 일을 하게 되었지만, 주방에서 일하던 조선족 아주머니의 일을 대신하는 것이 그리 쉽지는 않았다. 손님이 매 시간 일정하게 오고가는 것이 아니라 한가하다가도 점심시간이나 초저녁 한차례씩 갑자기 밀려드는 바람에 익숙하지 않은 Mai에게는 무척 고된 중노동이었다.

처음 며칠간은 그릇도 몇 개 깨뜨렸다. 뜨거운 국물에 발등도 데었으며, 오른쪽 팔이 부었고 손가락에 물집도 생겼지만 아픈 내색은 할 수 없었다. 바쁠 때 아기가 울기라도 하면 가슴이 찢어지는 듯 아팠지만, 이런 경우에도 경험과 요령이 부족한 탓에 애만 태우면서 일에 열중할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얼굴은 땀인지 눈물인지 모르지만 항상 젖어있었다.

그렇게 열심히 일을 하니 불과 한 달 만에 가벼운 대화는 무리 없이 할 만큼 한국말도 상당히 늘었다. 어느덧 매사에 요령도 생겨 바쁜 시간이 닥치기 전 미리 아기에게 우유를 먹여 재우니 아버님께서 카운터를 보시면서도 충분히 돌봐주실 수 있게 되었으며, 주방과 홀을 오가며 부족한 일손을 효과적으로 메워 전체적인 일손의 효율도 높아졌다. 그러나 가장 큰 소득은 뭐니 뭐니 해도 가게가 돌아가는 전체적인 사정을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게 된 것이었다. 이젠 아버님께서 피곤하다며 잠시 방에 누워계시는 경우에도 웬만한 일은 Mai가 다 처리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첫 월급날 시아버님께서는 140만원을 월급으로 주셨지만 Mai는 받지 않았다. 그 대신 30만원만 베트남으로 송금시켜줄 것과 친정어머니를 초청하여 줄 것을 요구하여 승낙을 받았다. Mai 생각으로는 어머니를 초청하여 이 해장국집에서 일을 시키면 여러모로 좋을 것 같다는 생각에서였다. 한국의 법률상 친지나 가족초정으로 입국한 경우 취업은 할 수 없지만, 가족의 영업장에서 일하는 것 정도는 허용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에서였다.

Mai는 기분이 너무 좋았다. 사랑하는 아들도 무리 없이 잘 크고 있고, 시아버님 가게에서 일을 하니 피곤하기는 해도 지루하지 않아서 좋고, 베트남에 송금도 하고 어머니까지 오신다니 이젠 시아버지 사랑을 받으며 행복하게 살고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서 그런지 점차 손님의 숫자도 늘어나는 조짐이 뚜렷하였다.

12월이 되자 연말이 가까워서 그런지 밤 9시경 처음으로 6명의 단체손님이 들어왔다. 손님이 그리 많지 않은 시간이었으므로 Mai가 물수건을 갖다 드리면서 직접 주문을 받았다.


“어서 오세요. 이쪽으로 앉으세요. 뭘 드릴까요. 손님?”

“뭘로 할까? 여기 잘 하는 메뉴 뭐 있수?”

“네, 선지하고 뼈 해장국 있어요, 수육도 맛있어요.”

“그래, 그럼 선지 셋, 뼈 셋 하고 수육 둘.”

“감사합니다.”


Mai가 가게 일을 하면서부터 동철은 이곳에서 저녁을 먹었다. 이날도 왼쪽 구석에서 혼자 식사를 하고 있는 중이었다. Mai는 남편에게는 미안했지만 손님이 있을 땐 항상 손님에게만 신경을 쓸 수밖에 없었다. 동철 또한 가게 일에 대하여는 알아도 모르는 척 해주었다.

Mai는 우선 쟁반에 밑반찬을 올려 테이블로 날라 하나씩 내려놓기 시작하였다. 먼저 김치와 깍두기를 내려놓았다. 그런 다음 참기름 접시를 내려놓을 찰라였다. 앞의 손님이 화장실을 가려는 듯 갑자기 뒤를 보지도 않고 돌아서며 일어서려다가 그만 Mai의 손에 있던 쟁반이 손님의 손등에 부딪혔다. 참기름 접시가 흔들려 손님의 손에 기름이 쏟아졌고 일부는 바지와 양말에도 튀겼다. 또 다른 접시의 삶은 메추리알이 여기저기 나뒹굴었다. 손님과 Mai는 깜짝 놀라 서로 얼굴을 마주치며 바라보았다.


“죄송합니다, 손님. 죄송합니다.”


당황한 Mai는 어쩔 줄을 모르면서 허리를 굽히고 굴러다니는 메추리알을 주우며 사과를 하였다. 다른 한손으로는 손님의 손을 닦아주려고 물수건을 내밀었다. 그러나 손님은 인상을 찌푸리면서 버럭 화를 내기 시작하였다. 내미는 Mai의 물수건도 탁! 뿌리쳤다. 그 손님은 술을 마시다가 왔는지 약간 술 냄새가 풍겼다.


“뭐야, 이런... 재수 없게시리!”

“죄송합니다, 손님. 정말 죄송합니다, 정말...”


Mai의 거듭된 사과에도 불구하고 손님은 화를 참으려하지 않는 듯 계속 투덜거렸다. 옆에 있는 동료가 그의 팔을 잡으며 만류하는데도 시비를 걸려는 사람처럼 신경질을 부렸다.


“도대체 눈은 어디다 깔고 다니는 거야, 당신 베트남 맞지?”

“네. 정말 죄송합니다, 손님”


순간, 흥분한 손님은 오른 손을 휘졌다가 Mai의 빰에 철썩 맞고 말았다. 그럼에도 미안한 기색은 하지 않고 계속 지껄였다.


“저리 꺼져! 베트남 놈들만 만나면 재수가 없다니깐... ”


Mai는 얼굴이 창백해지면서 허리를 곧추세우고 손님의 눈을 똑바로 노려보았다. 분노하고 있을 뿐 결코 겁먹은 표정이 아니었으며 식당 분위기는 공포스러울 정도로 싸늘해졌다. 동료들은 남자를 진정시키려 팔을 잡아끄는 한편, Mai에게는 참으라는 뜻으로 슬그머니 밀었다. 하지만 Mai의 몸은 차가운 얼음조각상처럼 꼼짝도 하지 않았고, 흘러나오는 말투는 소름이 끼칠 만큼 침착하였다.


“베... 트남...놈들? 죄송합니다. 맞은 것으로 사과를 대신하겠어요. 하지만 베트남 이야기는 하지 말았으면 합니다.”

“뭐야, 이거... 대꾸하는 거야?”

“다시 한 번 말씀드리지만 실수한 것은 죄송해요. 하지만 베트남하고는 아무 관련 없어요. 그건 손님이 사과해야 해요. 빨리 사과하세요.”


입에서 나오는 소리는 가라앉은 듯 나지막하였고 발음도 느릿느릿 하였다. 그러나 들리는 소리는 한 마디 한 마디가 예기(銳氣)로 가득 차있어 찔릴 것처럼 날카로웠다. 어느새 손에 쥐고 있던 메추리알들이 우지직 소리를 내며 한꺼번에 으스러졌다.


“어라? 소... 손님을 가르치네. 야, 베트남 사람 다 그러냐? 뻔뻔스럽게 뭐 이런 게 다 있어 정말...”

“그래요, 난 뻔뻔스럽게 한국에 왔습니다. 내일모래 국적도 신청할거구요. 한국 사람과 결혼해 아들도 낳았고 한글도 아리랑도 배웠는데 왜 나 때문에 베트남이 비난 받아야 해요? 그것만은 절~ 대 참을~ 수 없어요.”


붉은 조명아래 끊임없이 반짝거리던 Mai의 두 눈망울은 금새 쏟아져 내릴 것처럼 위태위태하였다. 손님들은 주문을 취소하고 자리에서 모두 일어섰다. 기세등등하던 그 손님은 어느새 문 밖으로 사라져버렸고 나머지 손님들마저 그를 따라 신발을 신는 둥 마는 둥 출입문을 나서버렸다.

카운터에서는 시아버지의 거친 헛기침소리가 들렸다. Mai는 반찬그릇을 그대로 놔둔 채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며 방으로 뛰어 들어갔다. 방문을 닫았음에도 설움에 복받쳐 흐느끼는 소리가 홀 전체로 울려 퍼졌다.



21. 龍神은 투이호아 벌판을 지키고, 勇士는 현충원에 잠들다.


--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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