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인들의 한국 이민 개척사
제3부. 젖은 땅에 뿌리가 자란다.
21. 龍神은 투이호아 벌판을 지키고, 勇士는 현충원에 잠들다.
동면하던 세상을 녹여 깨우듯 산마다 피어나던 분홍빛 진달래가 지면서, 길마다 공원마다 흰나방 같은 벚꽃이 봄 축제의 절정을 알린다. 언제 봐도 한국의 봄은 축복받은 계절이었다. 병실 밖에도 구석구석 꽃잎이 날아들어 창문가에 내려앉았다. 바야흐로 살맛나는 계절은 중심을 한참 지나가고 있었다. 하지만, 나이어린 베트남 며느리 Mai를 누구보다도 사랑하고 아껴주시던 시아버지의 폐암 말기의 병세는 점점 더 깊은 절망 속으로 치닫고 있었다.
설마, 설마 하던 기침이 멈추지를 않다가 저녁나절 피를 토하며 쓰러지신 것은, 천지에 진눈깨비를 뿌리며 깨진 유리조각보다도 날카로운 바람이 휘몰아치던 대한(大寒)추위 다음 날이었다. 이전부터 틈 날 때마다 아들 동철은 아버지를 걱정하는 마음으로 검진을 받아보시라며 계속 권해보았지만, 심한 기침에도 별 탈 없을 것이라며 완강히 거부하시더니 결국 손을 쓸 수 없을 만큼 악화될 대로 악화된 다음에야 쓰러지신 것이었다. 아버지는 자신의 병을 짐작하고 계신 듯 하였으나, 가급적 남은 재산을 까먹지 않고 세상을 마감하려 병원검진 자체를 거부하셨던 것이었다.
그러나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아들 동철마저 직장을 그만두게 되니 이들 부부에게 불어 닥쳤던 1월의 바람은 너무나 매몰차도록 흉악한 바람이 분명하였다. 줄어만 가는 가게의 매출을 잡기 위해 동철이 매장에 앉아 한숨을 쉬었고, 간병비를 줄이기 위해 젖병을 입에 문 어린 아들을 껴안은 채 Mai가 침대 옆을 지켜오고 있었다. 퇴직금을 넣은 통장마저 바닥을 보이며 병원비와 생활비를 걱정해야할 처지가 되어가고 있었다.
병세는 진통제마저 듣지 않는 듯 하더니 호흡기에서 흘러나오는 숨소리마저 날로 거칠어져갔다. 그런 가운데서도 눈이 감기는 시간이 점점 길어져만 갔다. 시아버지는 매일같이 영업이 끝나고 한차례씩 들리는 아들 동철이 언제 오느냐고 물었지만, 의사에게서는 아무런 조치가 없는 것으로 보아 아직 마감할 때에 이를 정도로 긴박한 상태는 아닌 것으로 보였다.
그날 밤 늦은 시간이 되자 동철이 병실에 들어왔다. 마침 아버지는 의식을 찾아 눈을 뜨고 계셨다. 당직 의사는 상태를 검토하더니 잠깐 호흡기를 떼어주었다.
“많이 아프세요?”
“괜찮아, 잠깐 이리 오너라.”
목소리는 듣기 힘들 정도로 작았으나 발음은 아직 또렷하였다.
“얘야.”
“네, 아버님”
“난 베트남 사람 많이 죽였다. 네 친척인지도 모르지. 젊을 땐 몰랐는데..., 나일 먹어가며, 죽은 사람이 꿈에 나타나... 는 거야.”
“이젠 괜찮을 거예요. 아버님.”
“72년... 10월17일... 투이호아...에서... 내 총알이 머리를... 뚫고 나갔지. 하얗게 골이 터져 나왔어....”
중얼거리는 시아버지의 얼굴을 가만히 들여다보니 의식은 있어 보이지 않았다. 아무런 생각 없이 마치 꿈을 꾸듯, 성령을 받은 자가 말을 늘어놓는 방언(方言)처럼 잠재의식 속에서 반사적으로 말을 토해내고 있는 것 같이 보였다. 눈물고인 두 눈은 깜빡임도 없이 그저 멍하니 앞만 향하고 있을 뿐이었다.
“신음소리가 너무... 가늘어~ㅆ..지. 불쌍해서... 빨리... 고통을 없애려고 또 총을 쐈어. 또... 총을... 무덤도 없이 썩어갔겠지. 난 잊을 수가 없었...어.”
“...”
“그게, 자꾸만... 나일 먹을수록, 자꾸만..... 그때... 그때부터 몸이 안 좋아져.... 오래도록 악몽에 시달렸다. 너무나... 악몽... 잠을 잘 수가 없... 었어.”
“...”
“동철 엄마가 일찍 병...들었을 때... 내가 사람을 죽여서 그렇다고... 나도 결국... 난 괜찮아...”
“아버님 탓이 아니어요. 아버님”
“난 알아. 생각했지... 죽기 전 가족 찾아... 사과해야지... 전쟁은 사람을 너무 많이 죽여...”
“...”
“이... 손.... 피, 피 묻힌 손... 좀 봐... 빌고 또 빌고... 하지만 사라지지 않았어... 갈수록 선명하게... 아~”
한 손엔 아들 손을, 다른 한 손엔 며느리의 손을 잡은 아버지의 손은 점점 힘이 약해져갔다. 그러나 의식이 돌아온 듯 편안해진 얼굴은 다시 Mai를 향하고 있었다. 숨이 찬 듯 잠이 멈추었다가 다시 말을 이었다.
“근데 시간이 너무 빨라.... 대신 네가 우리 집에 왔잖니? 너 처음 본 날 너무 좋았다. 이제 네가 대신 사과를 받아줘.”
“네, 아버님. 아무런 걱정하기 마세요.”
“고맙다. 열심히 살아..., 열심히”
“...”
“국남이 잘 키워야... 한다. 부탁...”
다음 날, 베트남 며느리를 둔 대한민국의 베트남 참전용사 예비역 육군하사 지대일은 아들과 며느리, 손자의 옆에서 환갑을 겨우 넘긴 짧은 인생을 마감하고 조용히 눈을 감고 말았다. 향년 61세. ‘용신(龍神)은 투이호아 벌판을 지키고, 용사(勇士)는 국립대전현충원에 잠들다.’
22. 엄마의 이름은 Le Thi Mai
친정 부모님 못지않게 자상하시던 시아버지께서 세상을 떠나신지 벌써 1년이 넘었다. 시아버지의 노하우가 사라져버린 가게는 그동안 미숙한 경영으로 인해 상당한 어려움을 겪었지만 결국 우여곡절 끝에 고비를 넘기고 이제 겨우 정상상태를 회복하게 되었다. 몇 달 전부터 조금씩이나마 저축도 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그보다 더 크게 모아가고 있는 경험적 자산은, 경제행위(장사)라는 것이 단 한순간도 방심하거나 게을리 할 수 없는, 너무나 고통스럽도록 힘들고 치열한 전투행위라는 것을 깨달은 것이었다. 따라서 손님이 베트남 사람이라고 차별하거나 비하하는 말을 들어도 결코 화를 내서는 안 되며 참고 또 참아야만 하는 것이었다. 차별과 비하는 눈물로 녹일 수 있지만, 경영의 실패는 모든 것을 죽음의 경지까지 몰아갈 수 있을 만큼 심각한 문제이기 때문이었다. 눈물(설움)이 짙다 해도 피(죽음)보다 짙으랴!
시아버지의 빈자리는 심리적으로도 너무 컸다. 외아들인 동철에게도 그러했을 것이고, 하나 밖에 없는 손자 국남이에게도 그러했겠지만, 친부모님을 멀리 베트남에 두고 온 며느리 Mai에게는 더욱 그러했을 것이다. 친정어머니는 한 차례 다녀가시기는 했지만 영업 상태가 좋지 않아 다시 초청하지 못하고 있어 더욱 그러했을 것이다.
그러나 겨울이 가고 봄이 오면 언 땅이 녹고 각양각색 새로운 꽃이 다시 피듯이, 한국에는 계절마다 색다른 곡절과 사연이 항상 기다리고 있었다. 그래서 한국에는 상하의 나라 베트남보다 맵거나 쓰고도 짭짤한 생활의 묘미가 더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용기 있는 자에게 ‘실패’란, 디디고 일어설 희망의 땅이지 결코 매장되는 무덤이 될 수는 없는 것이었다. 그 디디고 일어설 ‘실패’의 땅이 바로 Mai가 현재 밟고 있는 이 대한민국의 땅이 아닌가.
장마가 그치면서 살인적인 무더위가 낮과 밤을 가리지 않았다. 때가 휴가철이다 보니 모든 산과 들이 푸르기만 하였다. 남편 동철, 아내 Mai, 아들 국남이를 실은 자동차는 송파를 지나 오른쪽으로 꺾은 다음 다시 왼쪽의 도시고속도로에 진입하였다.
창밖을 내다보던 Mai는, 한국이란 나라는 정말 신기하고도 알 수없는 요술 같은 나라라고 새삼 생각되었다. 도심을 지날 때마다 탁한 공기 속에서 아귀다툼하듯 밀리던 그 많은 자동차들이 휴가철에 발마추어 몽땅 어디로 사라졌단 말인가. 넓디넓은 도로에 자동차는커녕 경찰버스를 불살라 때려 뉘이던 시위대조차 존재하지 않아 유령의 거리처럼 썰렁 하기만 하였고, 철시한 상점마다 진품명품을 자랑하던 진열장과 마네킹들은 흉물스런 철판 셔터에 철저히 가려져버리고 말았다.
누가 시키지도 않는데 어떻게 수천만 국민이 동시에 함께 움직일 수 있는 것일까? 월드컵 축구경기 때를 되돌아 생각해보니 어린아이와 노인들 할 것 없이 함께 길거리로 몰려나와 괴성을 지르며 흔들던 붉은 악마들의 태극물결, 이젠 세계인의 Fan Fest(축구응원행사)로 발전해버린 그 광란의 춤은 결코 우연도, 인위적인 것도 아닌 것 같았다. 옛날 3.1운동 때에도 심심산천 금잔디에서 훨훨 타오르는 불길처럼 한반도 전국 방방곡곡이 태극물결로 뒤덮여 세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지?
이 불가사이한 민족, 보릿고개에 배를 곯고 굶어 죽어가다가 손과 손에 삽과 호미를 들고 일제히 일어나 새마을운동을 일으키며 순식간에 경제대국인 된 이 신들린 한국 사람들, 내일은 또 어떤 구호를 외치며 다시 전 국민들이 동시에 일어나 무슨 일을 함께 저지르고 말 것인가? 무슨 이유로 베트남 국민들은 그렇게 하지 못해 남의 나라 땅 여기까지 와서도 제대로 된 뿌리조차 내리지 못하여 멸시를 당하고 있단 말인가?
순간 Mai는 붉은 악마들의 우렁찬 함성소리가 귓전에 다시 들리는 것 같아 소름이 끼치도록 섬뜩함을 느꼈다.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아기의 얼굴을 슬쩍 내려다보며 생각하니, 자신이 낳은 철모르는 아이 국남이도 분명한 한국인이었다. 그러므로 점점 자라면서 남편 동철과 함께 붉은 악마가 되어 ‘대~ 한민국!’을 목이 터져라 외치겠지.
자동차는 구리, 남양주를 지나 청평을 향해 질주를 계속하였다. 한국에 온 이후 지금까지 세 번째 맞는 휴가철이지만, 그동안 해운대에만 한 번 갔다 왔을 뿐 이번이 두 번째 휴가였다. 창문을 조금 여니 더운 바람이 후끈 들어왔다. 그러나 모처럼 맡아보는 농촌 냄새가 마음에 들었다. 차량의 내비게이션 화면에는 현장 위치의 지도가 길을 안내하고 있으며, 차 안의 스피커에서는 과속감시카메라의 위치를 미리 알려주는 경고멘트가 쉴 새 없이 흘러나왔다. 도대체 한국에는 얼마나 많은 감시카메라가 곳곳에 설치되어 있단 말인가?
Mai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아파트에는 현관과 엘리베이터는 물론이고 각 층마다 설치한 것도 모자라 건물 주위의 화단과 분수대, 쓰레기장 할 것 없이 이곳저곳 구석구석에 숨어서 주민들을 감시하는가 하면, 시내에서도 차를 길가에 단 몇 분만이라도 주차시킬 경우, 사면팔방의 교통신호기 옆에 설치된 카메라에 영락없이 찍혀 몇 만 원의 주차위반 범칙금고지서가 날아오고 만다. 요즘엔 그것도 모자라 아예 자동차 지붕위에 감시카메라를 달고 다니면서 찍기도 하고, 방범용이라는 최첨단 초정밀 카메라를 인적이 드문 변두리나 시골 논두렁 옆 지방도에까지 설치함으로써 전 국민의 일거수일투족을 단 한시, 한순간도 놓치지 않고 감시하고 있는 것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Mai는 지금, 이런 무시무시한 나라에 뛰어 들어와 행복하게 살아보겠다며 몸부림을 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사고를 내고 숨어 도망 다닌다는 Van이 걱정되기도 하였다.
‘감시카메라의 눈앞에서는 뛰어야 벼룩이라지, 아마?’
차가 마치터널에 이르자 신나는 질주는 끝이 났다. 이젠 도심과는 반대로 주차장을 방불케 하며 지독한 매연을 내뿜는 각양각색의 차량들이 길에 늘어져 있었다. 기어가다시피 하는 답답한 길을 세 시간가량 헤매고 나니, 차는 강물 위를 달리고 있었다. 아래를 내려다보니 강물의 위치는 수 십 미터도 넘어 떠다니는 보트가 손바닥만 하게 보였다. 이러한 고가도로 하나의 길이가 수 킬로미터에 달하니 차량들은 가히 하늘을 나는 구름처럼 떠다니고 있는 것이었다.
다시 청평발전소를 지나 구불구불 호반 옆길을 달렸다. 푸르른 호반위에는 수상스키와 모터보트들이 눈부신 물보라를 일으키며 달려가고 있었고, 하늘엔 오색으로 단장한 행글라이더가 멋진 폼으로 이리저리 나래를 펴며 백로처럼 지상을 호령하는 듯 하였다. 펼쳐지는 Mai의 눈앞 광경은 말 그대로 꿈속 같은 유토피아, 한 폭의 그림에 다름 아니었다. 때마침 카라디오에서는 ‘정수라’라는 가수의 ‘아! 대한민국’이라는 노래가 흘러 나왔다.
“하늘엔 조각구름 떠있고 / 강물엔 유람선이 떠있고
..................
뚜렷한 사계절이 있기에 / 볼수록 정이 드는 산과 들”
가사 내용을 들으니 지금 여기서 펼쳐지고 있는 이 광경과 한 치의 차이도 없이 똑같았다. 창밖을 내다보며 음악을 듣던 Mai는 홀린 듯 신기하기만 하였다. 마치 이곳을 보며 중계하고 있는 듯 한 이 노랫소리, 정말 대한민국은 항상 이렇게 낭만이 흐르는 지상의 낙원이란 말인가?
“우리의 마음속에 이상이 / 끝없이 펼쳐지는 곳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얻을 수 있고 / 뜻하는 것은 무엇이건 될 수가 있어
....
아아 영원토록 / 사랑하리라”
경쾌한 리듬도 좋았다. 그러나 가장 마음에 드는 것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얻을 수 있고 / 뜻하는 것은 무엇이건 될 수가 있어’ 라는 가사의 내용이었다. 정말 한국에서는 뭐든지 노력만 하면 다 얻을 수 있고, 견디기만 하면 뜻하는 것이 다 이루어질 수 있단 말인가? 베트남 이주민들도 예외 없이 그렇게 될 수 있다는 것인가?
물가에 근접하여 위치한 펜션에 도착하여 짐을 내려놓으니 배가 고팠다. 여기저기 노천 탁자에서 풍기는 고기 굽는 냄새가 시장기를 더욱 크게 느끼게 하였다. 옆의 빈자리에 앉아 식사를 끝내고 오랜만에 무뚝뚝한 남편과 함께 다정하게 커피를 마시며 호수의 야경을 감상하였다.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육지 속의 호수, 물속에는 산 그림자와 함께 네온의 조명으로 찬란한 용왕의 궁전을 이루었고, 하늘에 반짝이는 별빛은 야자수 아래에서 바라보던 베트남 밤하늘의 그것만큼이나 아름다웠다.
“여보, 우리 처음 만난 날, 첫날밤에 부르던 노래가 무슨 노래였어?”
“...”
남편은 쑥스러운 듯 빙그레 미소만 지어보였다.
“무슨 노래 불렀어?”
“궁금해?”
“응, 궁금해. 한 번 더 듣고 싶어요.”
동철은 노래대신 주머니에서 종이를 꺼내 가사를 적어 주었다. 사실 Mai는 그 노래를 알고 있었다. 만난 지 하루 만에 같은 침대에서, 말도 통하지 않는 이국의 남자와 번개 같은 첫사랑을 나누며 들은 노래가 그 노래였기 때문에 한국에 온 이후에도 결코 잊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어느 날 사람들에게 물어물어 그 노래를 찾게 되었고 CD를 구해 틈날 때마다 몰래 들으며 따라 불렀던 것이다. 그럼에도 Mai는 동철의 마음을 읽어보기 위해 일부러 모르는 척 물어본 것뿐이었다.
마이는 다시 물었다.
“당신, 그 노래 한 번 더 불러줄 수 없어요?”
“...”
그러나 남편은 많이 변해 있었다. 조금은 차가운 감정도 느껴졌다. 이제 자신은 남편에게 있어 사랑을 주고받아야 할 대상의 여인이라기보다는, 의무와 권리를 가진 한국가정의 한 구성원일 뿐이었다. 그러나 이 시간만큼은 자신이 남편 동철의 진정한 연인이고 싶었다.
“내가 한 번 불러볼까요?”
“엉?”
의외라는 듯 동철은 아내 Mai의 얼굴을 내려다보았다. Mai, 그러고 보니 참으로 오랜만에 똑바로 들여다보는 얼굴이었다. 처음 선을 보던 날 약간 이국 분위기를 풍기며 덧니 밖으로 부끄러운 듯 미소를 던지던 그녀, 첫날밤 두근거리던 가슴에 손을 얹었을 때는 쿵쿵거리는 소리가 들릴 것만 같았던 저 베트남 처녀. 정말 애틋하도록 사랑하며 함께 오래도록 행복하게 살고 싶었었다.
다시 옆으로 시선을 돌리니 이러한 결합의 비밀도 모르는 아들이 어느새 새록새록 천사 같은 얼굴로 잠들어있었다. 동철은 다시 한 번 미소를 지었다.
“그, 그래 불러봐”
Mai는 푸르른 호수를 앞에 두고 동철의 어깨에 기댄 채 조용히 노래를 불렀다.
“해 저문 호반에서 / 마음속으로
그림을 그립니다 / 남편을 그립니다”
끊어질듯 끊어질 듯 가냘프고 은은한 노랫소리는 출렁이는 호수의 물결과 함께 멀리멀리 퍼져나갔다. 동철은 조용히 눈을 감고 노래를 듣다가 Mai를 품 안으로 잡아당겨 살며시 안아주었다. 노래에 대한 응답이었다. 이제는 서로가 주고받는 말을 알아듣고 이해할 수 있게 되었지만, 지금은 더 이상 말이 필요 없었다. 실로 오랜만에 포근한 감정을 느끼는 가운데 노래는 계속 이어졌다.
“큰 키에 넓은 가슴 / 머릿속 새치 하나
무뚝뚝한 표정까지 / 그렸지만은
아~ 아~
오늘도 한 가지 / 못 그린 것은
영원히 알 수 없는 / 남편의 마음~”
Mai는 이 밤이 영원하기를 바랐다. 그러나 행복의 시간은 너무나 짧았다. 얼마 되지 않아 아기가 깨어나 방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는 지금의 현실 때문이었다. 침대에 누운 남편은 금방 잠이 들어 코를 골았다. 아기를 다시 재우려 침대 아래 이불을 깔고 뉘였다. 그리고 아기의 배를 두드리며 자신이 어렸을 때 어머니께서 불러주셨던 베트남 자장가 핫 루(hat ru)를 불러주었다.
ngu ngon akay oi
ngu ngon akay hoi
me thuong akay
me thuong bo doi
mai sau con lon vung chay lun san”
노래가 끝나고 아기마저 잠이 들자 멍하니 남창을 바라보다가 혼잣말로 속삭이듯 중얼거렸다.
“국남아! 너는 한국사람, 커서 대한민국 애국가를 부르겠지?
하지만 가끔은 QuocCaVietNam(베트남 국가)도 불러주렴. 엄마의 이름은 Le Thi Mai, 고향은 Viet Nam이란다. 엄마의 고향은... 야자수 나뭇잎 손짓하는 먼 남쪽나라 Viet Nam이란다.”
벌레소리마저 끊어지고 청평의 밤은 깊어만 갔다. 모두가 잠든 밤, 창밖으로 쏜살같은 한 줄기의 유성이 떨어져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Mai의 붉은 뺨에도 의미를 알 수 없는 두 줄기의 유성들이 화장을 녹이며 쉴 새 없이 반짝거리고 있었다.
23. 죽음보다도 두려운 운명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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