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인들의 한국 이민 개척사
제5부. 아! 용신(龍神)이여
39. 슬픈 행복과 새로운 희망
Anh은 병원 앞에 도착할 무렵 깨어났다. 그러나 치솟는 불길로 인해 모든 것이 잿더미로 변해버리던 모습과 불 속으로 뛰어들었다가 송장처럼 시커멓게 변해 업혀 나오던 Van의 끔찍한 참상이 눈앞을 가려 견딜 수가 없었다.
정말 이게 꿈이 아닐까? 그토록 오래도록 가꾸어 온 희망찬 세상이, 어쩌면 그렇게도 짧은 순간에 완전한 절망의 세상으로 뒤바뀌어 버릴 수 있단 말인가? 그래도 Van만 살아난다면 모든 것을 다 포기해도 좋으련만, 아니 그 대신 자신이 죽어도 결코 아깝지 않은 사람이 아니었던가?
들것에 실려 병원 응급실로 들어가는 Van의 모습을 보니 너무나 허무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Van은 죽었단 말인가? 생각하고는, 이제 Van이 어떻게라도 된다면 살아갈 이유가 없을 것 같아 자신도 따라서 죽어버려야 할 것만 같았다. 목표달성까지 함께 하자고 굳게 약속하지 않았던가? 혼자만 살아남았다는 사실이 너무나도 큰 죄가 되는 것만 같았다.
‘그깟 것 다 좋아, 제발 살아만 주오, 목숨만이라도 붙어 있어주오, 제발...’
Anh은 Van이 중환자실로 옮겨가는 것으로 보아 아직은 목숨이 붙어 있다는 것 을 알았다. 그래, 초초할수록 희망을 가져보자. 하는 생각으로 중환자실 앞 소파에 엎드려 밤을 새웠다.
집을 나오던 날, 눈보라치는 병점역에서 만나기 시작하면서부터 오직 앞만 보며 함께 달려온 태양 같은 존재 Van! 어렵거나 힘이 들 때 우리들을 지켜줄 것이라 믿었던 베트남의 용신(龍神)은 지금 어디로 사라졌단 말인가?
아침이 되니 다시 Mai와 Ly가 찾아왔다. Anh은 Mai의 무릎에 얼굴을 파묻고 또 다시 통곡을 하고 말았다. 울다울다 지쳐 마른 눈물마저 끊겨버릴 즈음, 담당 의사가 가족에게 할 말이 있다며 들어오라고 하여 Anh이 따라 들어갔다. 실내의 벽에는 커다란 X-ray 사진이 걸려있었다. 의사는 조심스런 표정으로 물었다.
“가족이신가요?”
“가족 여기 없어요. 베트남에 있습니다.”
의사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다시 물었다.
“어떻게 되는 사이죠?”
“가족만큼, 아니 더 중요한 사이예요.”
“아, 그래요? 알겠습니다. 다른 것이 아니고, 환자의 상태가 매우 위중합니다.”
“네? 위중? 위독하다는 말씀.... 이신지요?”
“그렇습니다. 척추, 어깨 등 골절이 치명적인데다가 화상이 너무 심해 장기가 상당부분 손상되었습니다. 더 이상의 치료는 무의미하다는 이야깁니다.”
“그 정도로요? 어... 얼마나...?”
“얼마 견디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준비하시는 것이... 위로의 말씀을 드립니다.”
“아! 그렇군요. 무...슨 뜻인지 알... 겠습니다.”
Anh은 아무 말 없이 상담실을 나왔다. 어깨에 기운이 빠졌다. 이제는 정말 모든 것이 끝나는가? 막상 그의 죽음이 눈앞에 닥쳤다고 생각하니 울음도 나오지 않았다. 이제까지의 울음도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 같았다. 죽어가는 사람 앞에서의 통곡은 사치나 다름없다고 생각되기도 하였다. 고통 속에 죽어가는 Van에게 우는 모습보다는 차라리 희망을 보여주어야 조금이라도 위로가 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Anh은 생각을 바꿔먹고 더 이상 눈물을 흘리지 않기 위해 얼굴을 말끔히 닦아내었다.
‘그래 이제 모든 꿈은 사라졌어. 소용없는 거야. 차라리 Van 앞에서 더 이상 눈물을 보여주지 말아야 해. 편안한 마음으로 눈을 감게 해 주어야지.’
이런 생각을 하며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자 면회시간이 되었다. Anh은 Mai, Ly와 함께 들어갔다. Van은 온통 붕대로 감겨져 있었으므로 이름표도 붙어있지 않고 가르쳐주지도 않는다면 누구인지 알 수 없을 정도였다. 게다가 퉁퉁 부운 얼굴마저 한쪽 눈을 커다란 눈가리개로 가려놓고 있었다.
그럼에도 산소마스크는 씌우지 않고 콧구멍 앞에 호스 하나를 대고 있었다. Anh은 그 의미를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Van, 많이 아프지?”
“괜찮아, Anh!”
목소리를 알아듣고 대답을 하는 것으로 미루어 이 흉측한 얼굴의 당사자가 Van임은 분명했다. Anh은 나오는 눈물을 입술을 깨물며 참고 또 참았다. 가는 자 앞에서 슬퍼함은, 그 사람의 실패를 의미한다고 생각되었기 때문이었다.
“Van, 많이 사랑해.”
그 말을 듣자 Van은 밀려드는 통증 속에서도 빙그레 미소를 띠었다.
“그래, Anh! 진심으로 사랑했어, 그동안 우린 참 행복한 시간이었지.”
몇 년 간을 함께 살았어도 이제서야 처음 주고받는 말, 그것은 Anh과 Van이 말하며 듣고 싶었던 가장 중요한 첫 고백이자 마지막 고백이었다. 여지 것 사랑한다는 이 간단한 말을 주고받은 적이 한 번도 없었지만 그들은 누구보다도 서로 사랑했었고 함께 고생하던 시절이 가장 행복했었다는 것도 틀림없는 사실이었다.
Van은 이미 자신의 생명이 다 해가고 있음을 느끼고 있었다. 그러나 그의 표정이나 언행 어디에서도 슬퍼하거나 후회하는 기색은 발견할 수 없었다. 최선을 다한 자에게 후회란 처음부터 존재할 수 없는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부탁 좀 들어 줘.”
“응. 편안하게 말 해, Van”
“나, 부모님께 알리지 마.”
“왜?”
“나중에... Anh이 성공하면, 그때 대신 한국 구경시켜드려. 내가 용정교(龍亭橋)에 잠들어있다고.... 우린 결코 돌아갈 수 없... 어. 이 땅에 너무나 많은... 것을 심었지. 나는 죽어도 우리는 끝날 수 없어.”
“오! 맞아! 아직 안 끝났지, 참! 우린 반드시 성공할거니까. 그래, 그 약속 꼭 지킬게. ”
Anh은 뭔가 새로이 해야할 일이 생기는 것만 같아 슬픔 속에서도 또 다른 의무감을 느꼈다. 붕대를 감은 Van의 손을 두 손으로 살며시 감싸 쥐며 가슴에 끌어안았다.
“난 이제 ‘배상일’을 용서했어. 그에게도 용서를 빌고 싶어. 오랫동안 마음에 걸렸지. 그리고 나 화장해서, 용정교(龍亭橋)에 뿌려줘야 해.”
“.... 응... 그... 그래.”
“Anh, 고마웠어, 행복에 겨운 3, 4년간, 너무 짧았지. 해.. 행복했어.”
“Va, Van...이 나 보다 더... 행복... 했...어?”
28세의 젊은 청년 Pham Tien Van은 대답대신 또 다시 미소로 답하고는, 편안한 표정으로 마지막 눈을 감고 말았다.
40. 진정한 평화를 위하여
날씨가 봄날처럼 화창하였다. 고인의 유언에 따라 화장한 유골을 뿌리기 위해 반정천 용정교(龍亭橋) 위에 모였다. 4년간을 그와 함께 일했던 김남일 사장과 그의 고향친구 Mai, 그리고 그를 사랑한 Anh이 한줌씩 재를 집어 난간 아래에 뿌려주었다.
그런 다음 세 사람은 주위에 쌓여있는 눈을 모아 비석을 대신하여 세워놓았다. 거기에는 다음과 같이 적었다.
‘희망의 상징, Pham Tien Van은 이곳에서 영원하다.’
잠시 경건한 마음으로 고인에 대하여 기도와 묵념을 하고난 다음, 김남일 사장이 말했다.
“팜 띠엔 반(Pham Tien Van)은 참으로 훌륭한 우리의 친구였어. 항상 우리 곁에 있을 거야.”
그의 고향 친구 Mai가 말을 받았다.
“맞아요, 팜 띠엔 반(Pham Tien Van)은 한국인을 미워하지 않아요. ‘배상일’에게 사과하고 용서한다고 말했어요. 한국인을 영원히 사랑할거예요. 그리고 너, Anh은 이제 어떻게 할 거야?”
Anh은 하늘을 바라보며 침착하게, 그러나 결연한 모습으로 대답을 하였다.
“처음 여기에 왔을 때처럼 직장생활을 좀 더 해야겠어. 신용을 위해 빚도 갚아야 하니까. 그런 다음 다시 월급을 모아 사업을 시작할 거야. 나와 Van은 오로지 이 지긋지긋한 가난에서 벗어나는 진정한 평화의 시대를 열기 위해 지금까지 싸워왔거든.
우린 화재로 잠시 적자가 났을 뿐, 그것이 결코 사업의 의지를 꺾을 이유가 될 수 없어. 잿더미는 새로운 토양을 만들어 나무를 키우고 더욱 높이 자라게 하거든. 사업이 성공하고 우리의 목표에 도달하는 그날, Van의 부모님을 모셔오기로 우린 굳게 약속했지. 그러면 Van의 아이를 안고 기뻐하실 거야. 지금 내 뱃속에서 힘차게 꿈틀거리고 있는 이 아이를 말이야!
이 용정교(龍亭橋)는 언제까지나 우리를 만나게 해 주고, 우리에게 꿈과 희망과 용기를 주지. 우리 모두의 진정한 평화를 위해서 말이야!”
비석은 따듯한 태양의 빛에 녹아 흐르다가 아지랑이가 되어 서서히 하늘로 사라져 갔다. 용(龍)이 구불구불 날아가듯 하늘로 올라가고 있었다.
에필로그 :
기산동 마을에는 이 다리의 유래를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 하지만 오늘도 이 다리의 양쪽에는 ‘용정교(龍亭橋)’라는 이름이 자리를 지키며 날마다 희망의 빛을 발하고 있다.
--- 읽어주신데 대하여 무한한 감사를 드립니다.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