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 제10조
제3부. 천형(天刑)
15. 이유 없는 천형
하나가스 사장 김영준은 다시 담배 한 대를 꺼내 물었다. 그리고 하 형사에게 이야기를 계속 하였다.
“그러니까 내가 알고 있는 것은 최진호와 함께 구속될 당시까지입니다. 함께 구속되어 5, 6일 만에 먼저 풀려나왔으니까요. 근데 그 사이 류아영 씨가 사망한 거군요.”
“들어보니 그렇게 된 것 같군요. 하여튼 자세한 말씀 감사합니다. 김 형사, 어때? 부검을 해 봐야 알겠지만, 일단은 그 사이 혼자 아이를 낳다가 죽은 것이 정황상 맞는 것 같지?”
“그런 것 같습니다.”
김 형사가 대답하였다. 영준이 이 소리를 듣고는 깜짝 놀라 되물었다.
“네? 혼자 아기를 낳다 죽었다구요? 맞아! 아기를 가졌다고 했었지, 참! 아~, 정말 그럴 수 있겠네요. 혼자서는 곤란했을 테니까요. 안타깝네요.”
“좀 더 조사해 봐야 알겠지만, 그런 것 같습니다.”
“진호가 구속만 되지 않았어도 산모와 아기 모두 살았을 텐데..., 사실 진호는 아무런 죄가 없습니다. 두고 보세요.”
“그러나 담당 형사 입장에서는 어쩔 수가 없었을 겁니다. 도난차량을 매매상 소개 없이 직접 구입했고, 게다가 판매자는 안 잡힌 상태에서 최진호 씨는 절도전과이력이... 내가 그 사건을 맡았어도 구속시킬 수밖에 없었습니다. 나중에 진상이 밝혀지겠지만, 당시에는 별 수 없었을 겁니다.”
이때 잠시 밖으로 나가 전화통화를 하던 김 형사가 다시 들어와 하 형사에게 말했다.
“방금 서(署)에 확인해봤더니 구속된 최진호는 곧 풀려난답니다. 진범이 잡혀서 모든 사실을 실토했답니다. 검찰에도 통보 했구요.”
형사들이 돌아가고 난 다음 날 진호는 석방되었다. 하지만 진호는 아내가 아기를 낳다가 고통스럽게 죽었다는 사실을 알고는 넋이 나가버렸다. 이틀 동안 아무 것도 먹지 않고 누워 있다가 아침 일찍 아영의 시신이 보관된 시체보관소를 찾아갔다. 진호는 담당관의 안내에 따라 신원을 체크한 다음 냉동실을 열고 시신을 확인하였다. 천을 걷어내니 눈을 얇게 뜬 채 남편을 원망하듯 말없이 죽어 있었다. 얼굴은 약품으로 대충 닦아낸 것 같았고, 콧구멍과 귓구멍은 거즈 같은 것으로 막아 놓은 상태였다. 냉동된 얼굴의 피부는 부패되다 만 것처럼 검푸른 색에 가까웠으나, 마치 자신에게 하지 못했던 마지막 말을 하려는 듯 선명하도록 하얀 입술이 살며시 벌어져 있었다.
“아영아! 흑흑...”
진호는 조용히 아영을 부르며 마지막 인사를 나누었다. 그러면서 차디찬 머리칼을 곱게 쓰다듬어 뒤로 넘기어주었다. 심하게 뒤틀린 팔도 바로 잡아주려고 만져보았지만 부러질 듯 뻣뻣하게 굳어있었다.
피로 물들었던 가슴의 옷깃 사이를 헤쳐 보니 시신 부검을 위해 갈라놓았던 칼 자욱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벌어진 살을 내장이 흘러나오지 못하도록 얼기설기 꿰매어 놓은 것처럼 보였다. 탯줄이 그대로 달려 있는 아기는 아영의 배 위에 천으로 덮인 채 아무렇게나 올려져있었다. 게다가 더욱 놀라운 광경은, 아기의 한쪽 다리가 약간 기형아였다는 사실이었다. 진호는 기가 막히다 못해 차라리 눈을 감고 말았다. 잠시 쭈구린 채 앉았다가 다시 힘을 주어 일어섰다. 그리고는 떨리는 입술로 소리쳤다.
“하늘은 우리를 버린 거야! 이유 없이 천벌을 받은 거라구!”
“...”
“간질환자나 장애인이 살 수 없는 이 세상, 산다는 자체가 죄인 것을... 불쌍한 아가야, 너는 일찍 죽은 것이 행복이란다. 흑흑...”
주먹으로 냉동고를 치며 눈물을 쏟았지만 더 이상 말은 하지 않았다. 아무 상관도 없는 이 사람들에게 무슨 말을 하랴? 하고 생각하였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진호의 눈동자는 이미 초점을 잃어가고 있었다.
진호는 아영과 이름도 없는 태아에 대하여 장례도 치르지 않은 채 곧바로 성남시 화장장으로 시신을 옮기었다. 옛날 아영이가 있었던 평택의 부원장 할머니의 전화번호는 알고 있었지만 알리지 않았다. 더 이상 자신의 추한 꼴을 이 세상 어느 누구에게도 보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순번에 따라 시신을 화로실로 옮기고 난 다음, 2층의 5번 조문객 대기실로 들어가 앉았다. 아영과의 지난날이 또 다시 머릿속에서 머물며 떠나갈 줄을 몰랐다. 가스배달을 가면 언제나 다정하게 커피를 타 주던 천사 같이 따사로운 모습, 구치소로 면회를 와서는 눈물을 흘리며 말을 잇지 못했던 이심전심의 고운 마음씨, 한강의 데이트에서는 장애 없는 사악한 요귀들보다도 천배나 만 배나 아름답고 여성스러웠던 여인, 선아와 지수까지도 함께 받아들이겠다던 고맙기 짝이 없던 사랑스런 자신의 아내였다.
“하지만 모두 헛된 꿈이었어.”
점심때가 되었지만 식사를 하지 않았다. 밥을 먹고 싶은 생각도 없었지만, 꼬박 이틀을 굶고 나니 기운이 없어 식당을 가지조차 귀찮아졌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한 시간을 더 기다리니 전광판에 ‘류아영’의 이름이 반짝거리면서 장내 스피커로 아영의 유골이 나왔다고 알려주었다. 이제 화장은 다 끝난 것이었다.
자리에서 일어나 유골 찾는 곳으로 터덜터덜 힘없이 걸어갔다. 화로의 출구가 열리니 몇 조각도 안 되는 유골 덩어리가 숯이 되어 들것 위에 올려져있었다. 진호는 그 안에서 마지막 처리를 해주는 한 남성에게 미리 준비했던 유골함을 들여 밀었다.
“곱게 빻아서 여기 넣어주세요.”
“분골로 해드려요?”
“네, 곱게 잘 빻아 주세요.”
얼마 시간이 지나지 않아 아영과 태아의 분골을 담은 유골함이 다시 나왔다. 진호는 그 유골함을 받아들고는 집에는 들르지 않은 채, 아내가 생전에 말했던 뜻에 따라 동네의 어비저수지로 갔다.
산속에 둘러싸인 호수 위에는 간간이 불어대는 찬바람에 눈발이 흩날리고 있었다. 둑을 내려가 얼음 위를 걸어가면서 유골 가루를 조금씩 손으로 집어 그 위에 뿌리기 시작하였다. 얼굴에는 눈송이가 쉴 새 없이 내려앉으며 차갑게 달라붙었다. 그러나 달라붙자마자 흘러내리는 눈물에 녹아 함께 얼굴 아래로 뚝뚝 떨어져버렸다. 몇 십 미터를 걸어가니 얼음이 갈라지는 소리가 심하게 들려왔다. 그럼에도 걸음은 멈추지 않았다. 진호는 눈 내리는 하늘을 바라보며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사랑하는 아영아, 너무 외로워말아. 아가야, 사람들 속에는 애초부터 우리들 자리가 없었던 거란다.
하지만 아영이는 이제 내가 옆에서 꼭 지켜줄게. 아영이가 가는 곳이라면 내가 가지 못할 이유가 없지. 거기에는 밤낮이 없으니 이슬도 없을 거고, 우리는 이제 더 이상 헤어지지 않을 거야. 값 떨어지는 아파트도 없고 도난당한 중고자동차도 없을 테니까.
잘 가라, 아영아. 내가 여기 함께 따라가고 있잖니?”
날리던 눈발은 어느새 함박눈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한 발짝 한 발짝 걸음을 걸을 때마다 뽀드득 소리를 내며 뚜렷하게 발자국을 내었지만, 퍼붓는 함박눈에 의해 지워지는 데는 그리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진호는 방향을 잃은 것처럼 두 눈을 꼭 감은 채 오로지 깊은 호수의 중심을 향해 앞으로만 나아가고 있었다.
16. 죽음의 저수지
--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