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제10조.나는 지체장애인, 뜨겁게 사랑하련다!_14

헌법 제10조

by 이종섭

제3부. 천형(天刑)



14. 집요한 운명


“형님, 우리 오후에 잠깐 중고차 시장에 갔다 오죠. 차에 대하여는 형님이 잘 아시잖아요?”

“그래, 뭐 자동차가지고 이십여 년 사업했는데 자네보단 나을라나 몰라. 하여튼 같이 가 보자구.”


두 사람은 오후 한가한 시간을 이용하여 수원에 있는 중고차매매시장에 갔다. 여기저기 구경을 하다가 ‘K’라는 상호의 매매상으로 들어가니 영업사원과 고객 한 분이 상담을 하고 있었다. 진호와 영준은 옆에 서서 상담이 끝날 때를 기다렸다.

5분정도 기다리니 먼저 상담하던 고객이 인사를 나누고 밖으로 나갔다. 영업사원이 진호를 보고 명함을 주면서 인사를 하였다.


“어서 오십시오. 무슨 차가 필요하십니까?”

“네, 1800cc 정도의 승용차를 보려구요.”

“요즘은 1800cc가 잘 안 나옵니다. 따라서 오래된 차밖에 없습니다. 괜찮은 차 쓰시려면 2000cc는 되어야 할겁니다. 아마...”

“2000cc는 어느 정도 하나요?”

“2000cc로... 5년 된 것 1,200만 원짜리 있습니다. 10만km, 무빵(무사고)입니다. 좋아요.”

“생각보다 비싸네요. 한 500만 원정도 예상하고 왔는데.”

“500이면 좀 오래된 거죠. 있습니다. 30만km, 14년 되었군요.”

“아. 그래요? 가만있자. 그럼 한 바퀴 구경 좀 하고 다시 오겠습니다.”

“그러시죠 뭐. 다녀오세요.”


다시 밖으로 나와 조금 걷다보니 낮 익은 사람이 말을 걸면서 다가왔다. 조금 전 ‘K’ 매매상에서 먼저 상담을 나누던 그 사람이었다.


“안녕하세요. 차 사러 오셨습니까?”

“네, 선생님도?”

“아니요, 저는 차를 팔려고 왔습니다. 그런데 5년밖에 안된 차를 500밖에 안준다는 군요. 자기네들은 1200 이상 받으면서 말이죠. 그래서 의뢰했다가 취소하고 오는 길입니다. 지금.”

“아, 네...”

“어때요, 우리 직거래 하시면 안 되겠습니까?”


진호는 구미가 당겼다.


“선생님은 얼마나 받으시려는지요? 혹시 대포차는 아니겠죠?”

“아이구, 선생님도. 신분 확실하고 직거래해도 결국은 매매상에서 계약서 써야 합니다. 걱정 마세요. 금액은 일시불 조건으로 650받겠습니다.”

“그래요, 그럼 차를 좀 봅시다.”

“저기 팔려고 세워놨습니다. 이제 취소했으니 가지고 가야죠. 직접 몰아보시죠, 뭐.”


진호와 영준은 교대로 번갈아가며 시내를 한 참 돌아다녀보았다. 그리고 엔진상태, 흠집과 계기판, 사고 유무 등을 꼼꼼히 살펴보았으나 차 상태는 무척 좋았다. 진호는 다시 그를 쫒아가 매매상에 들려 계약금과 잔금을 일시불로 치르고 차를 인수하였다. 다음날 아내를 태우고 오산으로 나와 마트에 들려 장을 보고는 출산준비용품 몇 가지를 구입하고 돌아왔다. 아내는 무척 좋다고 하였다. 그러면서 자주 아랫배를 쓰다듬으며 만지작거렸다.

다음날 출근하여 오전 배달을 마친 다음 사무실로 돌아오니 낯선 남자 두 명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 남자들은 용인경찰서에서 나왔다고 하면서 다짜고짜 데리고 나가 자신들의 차에 태웠다. 거기에는 사장 김영준 씨도 함께 앉아있었다.


“용인경찰서 이 형삽니다. 최진호 씨 맞죠? 신분증 좀 봅시다.”

“네. 여기 있습니다.”

“최진호 씨는 조사할 것이 있어 서로 좀 가 주셔야겠습니다. 협조 부탁합니다.”

“조사요? 무슨 조사요?”

“차량 취득에 관한 건데 뭐, 잘 되면 곧 나올 수도 있고... 서로 믿고 수갑도 채우지 않겠습니다.”


용인경찰서 형사과에 도착한 일행은 저녁 늦은 시간이 되어서야 조사를 시작하였다. 그러나 진호는 아내에게 경찰서에 잡혀왔다는 이야기는 전하지 못하였다. 자신은 떳떳하므로 곧 나갈 것으로 믿었을 뿐 아니라 임신한 아내가 놀랄 것을 우려하였기 때문이었다.


“도난 차량이라는 것을 모르고 샀다는 이야깁니까?”

“네, 정말 몰랐습니다.”

“잡아뗀다고 되는 거 아닙니다. 서로 피곤한데 좋게 이야기 할 때 자백하세요.”

“뭘 자백하라는 겁니까, 도대체.”

“2000cc, 5년 되고 10만km, 무사고차량이면 1,200만 원 정도가 시세라는 것은 매매상에서 알았지요?”

“네, 1,200정도 한다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터무니없는 가격 650만원에 판다면 수상하다는 것은 상식적인 것 아니요?”

“물론 싸다고 생각은 했죠. 그렇다고 도난차량이라고 할 순 없잖아요.”

“장난합니까, 지금? 매매상에서 눈짓하고 밖에서 만나 직접 거래한 것은 상식적으로 어떻게 생각할 수 있어요? 말이 안 되잖아요.

“...”

“또 몰랐다 해도 그렇지, 처음 본 사람을 어떻게 믿고 직거래를 하느냐는 겁니다. 아무리 싸다 해도 말이요. 안 그래요? 그렇다면 결과적으로 도난 차량이란 걸 알고서는 짜고 거래했다는 꺼 뻔한 사실 아니요? 형사 생활 하루 이틀 하는 줄 알아요?”


진호가 아무리 부인을 해도 형사는 믿어주지 않았다. 바로 절도 전과가 한 번 있었기 때문이었다. 다음 날 소지품을 압류당한 채 영준과 함께 도난차량취득혐의의 공범으로 구속되고 말았다. 다만 영준은 방조혐의의 공범으로서 진호에 비해 죄가 중하지 않다는 이유로 구속된 후부터 5일, 체포된 후로부터는 6일 만에 구속적부심에서 석방되었다.


한편 아영은 밤 11시가 넘었음에도 남편이 들어오지 않자 불안을 느끼기 시작하였다. 시계바늘이 자정을 넘기자 하는 수 없이 전화를 걸어보았지만 받지를 않아 불안은 가중되었다. 결국 잠을 한 잠도 못자고 꼬빡 세웠다. 다음 날 아침부터 저녁까지 남편과 사장 김영준에게 교대로 전화를 걸어보았지만 역시 받지 않았다. 아예 전원이 꺼져있다. 라는 음성메시지만 들려올 뿐이었다. 하루 종일 아무 것도 할 수 없었고 밥도 먹는 둥 마는 둥 하였다. 그래서 그런지 또 다시 밤이 되자 아랫배가 살살 아프기 시작하였다. 소화제 한 알을 먹었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밤이 깊어갈수록 배는 점점 더 아파만 갔다. 기운이 없고 머릿속마저 멍해지기 시작하였다. 그런 상태로 밤 12시가 넘을 무렵 본격적으로 강한 통증이 시작되자 태아의 문제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바로 출산진통이었기 때문이었다. 갈수록 사태는 심각하였다. 기운은 점점 떨어져가고 전화기를 잡은 손은 떨리기만 하였다. 순간 119에 전화를 걸어야겠다는 생각이 뒤늦게 떠올랐다. 하지만 이제는 119에 전화를 하려 해도 번호를 정확하게 누를 수가 없었다. 버튼은 자신의 생각과 달리 자꾸만 빗나갔다. 시야도 흐려졌으며 손가락마저 제대로 말을 듣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아랫배의 통증은 점점 심해지고 양 다리사이에서는 알 수없는 액체가 흘러내렸다. 양수가 터진 것이었다.


‘안 돼. 아기가 다치면 안 돼.’


아영은 말도 잘 듣지 않는 손으로 양 다리를 벌려주려고 무진 애를 썼다. 팬티를 벗으려고 노력해 보았지만 휠체어에 의지한 팔에 힘이 없어 엉덩이를 움직일 수 없었다. 하는 수 없이 아영은 오른손으로 더듬더듬 부엌칼을 집어 들었다. 다음 팬티 안쪽으로 칼을 넣고는 힘껏 위로 베어버렸다. 그러나 손목에 힘이 없어 일부만 찢어지다 말았다. 다시 이를 악물고 있는 힘을 다해 칼질을 하였다. 그러자 다행히 아기를 막고 있던 팬티는 잘라져버렸다. 하지만 동시에 왼쪽 허벅지까지 깊숙이 베어버려 정맥까지 함께 끊어지고 말았다. 피가 솟구쳐 올랐다. 동시에 휠체어에 의지하고 있던 왼팔이 힘없이 미끄러지면서 몸이 한쪽으로 삐꺼덕 기울었다. 순간 휠체어와 함께 중심을 잃으면서 왼쪽으로 꽈당 넘어졌다. 이때 칼도 함께 떨어지면서 오른쪽 가슴에 꽂혀버렸다. 순간적으로 잠깐 동안 정신을 잃었다가 깨어났다.


“안 돼, 지금 죽으면 안 돼. 아기도 죽잖아.”


허벅지의 검붉은 선혈은 방바닥을 흥건히 적시며 넓게 퍼져나가고 있었다. 가슴에 꽂힌 칼을 뽑아내니 하얀 블라우스가 금방 붉은 색으로 변하고 말았다.

아기는 차츰 빠져나오는 것 같았다. 다리를 좀 더 벌려야 했다. 그리고 힘을 주어야 했다. 하지만 하반신마비의 몸은 말을 듣지 않았다. 다리도 벌릴 수 없었다. 아영은 있는 힘을 다해 어떻게라도 해보려고 입술까지 깨물며 온몸 감각이 있는 모든 곳에 힘을 주었다. 몸부림을 치면서 애를 쓰다가 소리를 질렀다.


“누구 좀... 누구... 도와줘요. 아~”


그러나 시간은 깊은 새벽, 주위에는 쥐도 새도 잠이 들어 있었고 몸의 기운은 점점 소진되어가고 있었다. 마지막 있는 힘을 다해 고개를 들어 희미한 눈으로 아래를 보니 치마에 덥힌 채 핏덩어리 아기의 몸이 많이 빠져나오고 있는 것 같았다. 이제 아기를 받아야 했다. 몸을 오른쪽으로 최대한 기울여보았다. 그리고 손을 아래로 뻗었다.


“아! 우리 아기야. 내 아기, 불쌍한 내 아기를...”


하지만 아무리 힘을 쓰며 손을 뻗어도 아기에게 미치지는 못하였다. 출혈은 조금도 그칠 줄을 몰랐으며 희미해져가는 방바닥만 빙글빙글 돌아다녔다.


“여보... 여... 나...”


이제 오른팔의 감각마저 점점 무뎌지기 시작하였다. 앞은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정신은 혼미하고 신음소리가 점점 작아지면서 몸은 늘어지기 시작하였다. 하늘을 향한 손가락이 두세 번 까딱거렸다. 결국 하반신 마비의 장애인 류아영은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그만 정신을 잃고 말았다.



15. 이유 없는 천형


--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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