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제10조.나는 지체장애인, 뜨겁게 사랑하련다!_13

헌법 제10조

by 이종섭

제3부. 천형(天刑)



13. 이상한 저수지


신방은 많은 개조가 필요하였다. 우선 남편 진호가 없을 경우, 아내 아영이 혼자서도 생활을 할 수 있어야 하므로 그런 형편에 맞게 공사를 하고 살림살이들을 배치하였다. 화장실 문과 주방 싱크대 등 모든 것은 휠체어에서 앉아있는 높이를 감안하여 다시 조정하였다.

이사 하는 날 진호는 아영을 데려오기 위해 복지원으로 달려갔다. 차를 한 잔 마신 후 짐을 실었다. 이삿짐이라야 컴퓨터를 제외하고는 간단한 소지품 정도였으므로 경승용차 한 대 뿐인데도 충분하였다. 마지막으로 실내를 둘러 본 아영이와 진호가 문밖으로 나서려하자 복지원 형제들이 모두 나와 석별의 정이란 노래를 합창하며 불러주었다.


“오랫동안 사귀었던 정든 내 친구여~ / 작별이란 웬 말인가 가야만 하는가~

어디 간들 잊으리요 두터운 우리 정~ / 다시 만날 그날 위해 노래를 부르세~”


노래가 이어지는 가운데 뒤에서 진호가 밀어주는 휠체어 위에서 아영이는 할머니와 정 언니, 그리고 정다웠던 형제들과 일일이 눈물을 흘리며 이별의 악수를 하였다. 그들은 떠나가는 아영이와 진호의 행복을 빌며 눈물과 박수로 환송해 주었다. 그중에서도 영철이가 가장 슬피 울었다. 아영이는 승용차에 올라타고서도 흔들던 손을 놓을 줄 몰랐다.


“사랑하는 형제들아. 아무리 삶이 고통스러워도 태어난 것을 탓하지 말자꾸나. 어디 간들 그대들을 잊으리. 비바람이 몰아쳐도 희망차게 살아다오. 꼭 살아다오.”


복지원을 나온 아영과 진호는 용인시 이동면 어비리의 셋집에 도착하기 전 저수지 옆을 달렸다.


“여기가 우리 동네? 저기 구경 좀 하고 가요. 그때 그 한강 같아요.”


아영은 ‘제2의 생일날’을 상상하였다. 자신의 모든 것을 진호에게 바치며 다시 태어나던 그날을....


“나 죽으면 화장해서 여기에 뿌려주면 되겠다. 경치가 너무 아름다워.”


아영은 저수지를 바라보며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그런 소리 자꾸 하면 안 돼. 이제는 나 혼자 살 수 없어. 아영이와 나는 이제 부부라구. 일심동체야.”


두 사람은 셋집에 도착하여 짐을 풀었다. 첫날밤, 진호의 품에 안긴 아영은 진호를 원망했던 일을 후회하며 용서를 빌었다. 그리고 행복에 겨운 눈물로 진호의 가슴을 적시며 ‘여보’라는 이름으로 불러보았다.


“여보, 당신의 예쁜 아기를 낳게 되면 잘 키울 게요. 그땐 지수와 선아도 데려올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진호도 아영에게 ‘당신’이라고 불러주었다.


“그래, 정말 고마워. 당신은 하늘이 내려준 착한 여자야. 이혼한 아내는 이사 간 다음 즉시 재혼을 했더군. 아이들이 걱정이야. 그 문제 때문에 지금까지 연락을 자주 못 했었거든.”


복지원 생활을 청산한 후 새 살림을 시작하고 나서부터는 또다시 생활이 바뀌어야만 했다. 마을에는 친구도 없었고 따라서 찾아오는 사람도 없었다. 남편이 직장을 나간 다음부터는 휠체어를 밀어줄 사람조차 없었다. 물론 필요한 경우 장애인 활동보조인도우미를 신청하면 가능은 하였다. 하지만 어쩌다가 그때그때 짧은 순간마다 필요한데도 그 짧은 시간을 위해 하루 종일 대기시킬 수는 없는 일이었다. 1급이 아닌 2급 장애인으로선 비용도 무시할 수 없었다. 따라서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 불편하더라도 대부분의 일을 혼자 처리하여야만 하였다.

그러나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고독이었다. 좁은 방 안에서 생활한다는 것은 감옥생활보다도 고통스러웠다. 그렇게 몇 달을 지내다보니 배는 점점 불러만 갔고, 그에 비례하여 몸은 더욱 약해지는 것 같았다. 처음엔 임신 때문이려니 했으나 차츰 팔이 굳어지는 것이 수상하였다. 가을이 지나 겨울이 되자 추위 때문인지 더욱 심해지는 것만 같았다. 이제는 양치질하기도 너무나 힘이 버거웠다.

하루 날짜를 잡아 남편이 출근한 사이 활동보조도우미를 신청하여 함께 병원을 찾아갔다. 임신상태부터 시작하여 몇 가지 진찰을 마친 후 의사가 물었다.


“언제부터 왼 팔이 불편했나요?”

“한 10개월 쯤 되었습니다.”

“남편은 알고 계신가요?”

“몰라요. 이야기하지 않았거든요.”

“저기... 증상이 ‘경추척추관협착증’이라고 하는데...”

“그게 무슨 병인가요?”

“네, 서서히 팔과 다리에 힘이 빠지고 나중에는 몸을 전혀 움직이지 못하게 되는 질환입니다.”

“치료방법은 없나요?”

“어렵지요. 하지만 치료는 해 봐야 하는데... 근데...”

“그런데요? 뭐가 문제죠?”

“그런데, 임신한 경우 약물투여도 어렵고 수술 또한...”

“병이 금방 악화되나요?”

“지금 상태로 봐선 그렇지는 않아요. 하지만 서서히 악화될 겁니다. 결국에 가서는 팔도 움직일 수가 없게 되겠지요.”

“아기를 낳은 후 치료하면 되지 않을 까요?”

“물론 그렇지만, 현재 몸 상태가 아기를 낳기에 적절치 않은 것이 문제입니다. 몸이 너무 약하거든요. 아기의 발육도 약간...”


아영은 눈앞이 캄캄하였다.


“이런 경우, 보통 중절을 권하게 됩니다.”

“네? 중절이라니요? 그건 절대 안돼요!”


아영은 자신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다.


“죄송합니다. 하지만 아기를 위해 내가 죽을 수는 있어도, 나를 위해 아기를 죽일 수는 없어요. 그건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예요. 흑흑...”

“하여튼 계속 살펴봅시다. 하지만 자주 오셔서 검진을 받으셔야 합니다.”


아영의 뜻이 너무나 단호하여 의사도 어쩔 줄을 몰랐다. 집으로 돌아온 아영은 깊은 고민에 빠졌다. 그리고 하늘이 의심스러웠다.


‘사랑하는 하나님! 어찌하여 이렇게 어려운 시련을 주시나이까? 하나님은 지금도 저를 굽어 살피시는지요? 우리 아기를 보살펴 주시옵소서. 아기를 낳을 힘과 용기를 주시옵소서.’


그러나 남편에게는 그러한 이야기를 차마 할 수가 없었다. 틀림없이 중절수술을 받으라고 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날 밤 아영은 잠자리에 누운 남편의 가슴에 손을 얹고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여보. 만약 내가 죽어도 당신은 우리 아기 잘 키울 수 있을까요?”

“무슨 쓸데없는 소리야. 그런 소리 하면 하나님이 노하신다구. 당신과 아기는 하나님이 주신 거라구. 알아?”

“그래요. 우린 하나님의 뜻으로 맺어진 거예요. 그렇지 않으면 당신처럼 멋진 남자가 어떻게 나 같은 중증장애인과..., 우리가 아기 낳고 행복하게 살면 그건 죽음과 같은 나날을 고통스럽게 하루하루 살아가는 장애인들에게 큰 힘이 될 거예요. 우린 꼭 행복하게 살아야 해요.”

“그래 이제 아기 날 때까지 한 달 밖에 남았어. 돈 열심히 벌어서 당신 행복하게 해 줄게. 꼭~. 참 내일 일요일이니까 같이 오산에 갔다 올까? 좀 큰 마트에 가서 아기 옷하고 몇 가지 물건 좀 사야하니까.”

“오! 그래요, 사실은 너무 늦었거든요. 목록은 대충 적어놓은 게 있어요.”


다음 날 모처럼 오산에 있는 유명의 대형마트에 갔다. 아영이 미리 적어놓았던 물품들을 대충 챙기고 보니 짐이 꽤 많았다. 배냇저고리 몇 벌, 속싸개 3장, 겉싸개, 욕조, 젖병 2개, 손수건, 아기이불세트, 좁쌀베개, 짱구베개, 기저귀 등 무려 20여 가지가 넘었다.


“이제 대충 되었어요. 나중에 봐가면서 사요.”

“참, 유모차가 빠졌군. 유모차는 꼭 필요해.”

“우리 차에는 안 들어갈 거예요. 다음에 와서 사도록 해요. 오늘은 그만 가요.”

“그래, 다음 주에 다시 한 번 나오지 뭐.”

“빨랑 가요. 오늘 너무 기분 좋아요. 마치 우리 아기가 울고 있는 것만 같아요.”

“그래... 근데...”

“왜요? 뭐 안 좋은 일이라도 있어요?”

“아니, 아무래도 차를 중형차로 사야겠어.”

“지금은 안돼요. 돈 좀 더 번 다음에 사요.”

“아기 낳게 되면, 이 차에는 아기 물품을 못 실어. 유모차는 어림도 없구.”

“그럼 중고로 사요? 이 차 팔구요.”

“중고? 당신하고 아기를 어떻게 중고차에 태워. 할부로 사면 돼. 그리고 좀 더 열심히 벌지 뭐.”

“중고면 어때요? 중고 괜찮아요. 요샌 중고차도 10년 미만된 것은 괜찮대요.”

“중... 고라? 알았어. 생각해보지.”



14. 집요한 운명


--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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