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 제10조
제3부. 천형(天刑)
12. 저 높은 곳을 향하여
장마가 그치면서 폭염의 열대야가 극성을 부렸다. 아영도 잠 못 들어 날밤을 새우다가 새벽 예배시간을 맞이하였다. 뜻 모를 부원장 할머니의 기도소리는 갈수록 울먹이고 있었다.
“이제, 생사고락을 같이하며 정을 쌓아왔던 우리의 형제들은 헤어져야 할 때가 되었습니다. 해가 떴어도 우리의 눈앞은 암흑이요, 여름이 왔어도 헐벗은 우리들의 앞길에는 고난의 눈보라가 휘몰아치고 있습니다. 절망과 도탄에 빠져있는 이들에게 주 예수께서 길을 안내하여 주시옵소서.”
뭔가 사태의 중함을 느낀 여러 형제들 중 일부는 소리 내어 흐느끼기 시작하였다. 어린아이 같은 영철이도 영문을 모른 채 분위기에 눌려 엉엉 따라 울었다. 이별을 고하는 안타까운 기도는 계속되었다.
“하나님 아버지!
길거리에서는 약자들의 권리를 앞세워 촛불을 들고는, 아파트로 들어와서는 장애인 시설이 혐오시설이라며 아파트값 유지를 위해 길을 막는 저들을 뉘우치게 하여 주시옵소서. 횡령과 착취가 판을 치는 사회복지원의 실태는 잔인한 바늘로 물고기의 입을 꿰고 나서 비린내가 채 가시기도 전에 자연보호를 부르짖는 파렴치한 낚시꾼들의 행태와 조금도 다르지 않습니다. 그들은 감추어진 물질욕과 위장된 눈물은 있으되 뜨거운 가슴과 진실한 사랑은 가질 수는 없는 마귀들이었습니다.
우리 하나님의 이 평택 KR 사회복지원은 간교한 마귀들의 꼬임에 빠진 몇 몇 사람들의 횡령으로 인하여 더 이상 운영할 여력이 없어졌지만, 우리의 착하고 어린 양들은 누구도 결코 원망하지 아니하였습니다.
아버지 하나님!
우리 불상한 양들을 어서 굽어 살피시어서 하루빨리 덥거나 춥거나 안심하게 거처할 곳을 마련해 주시옵고, 굶주림에 언제든지 허기를 채울 수 있는 일용할 양식을 내려 주시옵소서.
거동할 수 없는 이들에게 살아갈 희망과 용기로 힘껏 밀어주시옵고, 죽음과 다름없는 삶의 고통에 신음하며 병마와 싸우고 있는 이들을 따듯하게 어루만져 주시옵소서. 우리는 이 어려운 이산의 아픔을 이겨내고, 언젠가 다시 만나 따듯한 형제의 정을 나눌 그날을 굳게 믿고 있습니다.
복되고 영광된 우리의 그날을 위하여,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아멘~”
기도를 마치고 할머니가 선창하여 찬송가를 부르자 모두 입을 크게 벌려 합창하며 따라 불렀다.
“저 높은 곳~을 향하여 / 날마다 나아갑니다.
내 뜻과 정~성 모두어 / 날마다 기도합니다.
내 주여 내~ 발 붙드사 / 그곳에 서게 하소서
그곳은 빛~과 사랑이 / 언제나 넘치옵~니~다.
괴롬과 죄~가 있는 곳 / 나 비록 여기 살아도
빛나고 높~은 저 곳을 / 날마다 바라봅니다.
내 주여 내~ 발 붙드사 /그곳에 서게 하소서.
그곳은 빛~과 사랑이 / 언제나 넘치옵~니~다.”
모두 엄숙하고 경건한 마음으로 예배를 마치고 세수를 한 다음 아침식사를 시작하였다. 식사를 하던 중 한 사람이 물었다.
“할머니, 이곳 어떻게 돼요?”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 모두 잘 들어야 한다. 이 복지원은 이달 말에 문을 닫는다. 파산한 거야. 앞으로 보름 안에 모두 각자 다른 곳으로 옮겨야 해. 그때부턴 전기와 수도도 끊기고, 아파트 쪽으로 나가는 모든 길들은 봉쇄될 거야.”
이때 숟가락을 들던 아영이가 갑자기 울컥거리는 속을 참으려고 급히 입을 막고 돌아섰다. 깜짝 놀란 사람들이 모두 쳐다보았다. 아영은 쑥스러운 표정으로 슬그머니 뒤로 물러났다.
“속이 안 좋아요. 어제도 먹은 거 별로 없는데...”
할머니와 정 언니는 아영이가 임신을 하였음을 눈치 채었다. 할머니가 눈짓을 하자 정 언니가 아영의 휠체어를 밀며 방으로 들어갔다. 아영도 어린애가 아닌지라 모를 리 없었다. 아영은 하늘이 무너지는 것처럼 앞이 캄캄하였다. 기뻐야 할 일이 도리어 태산 같은 걱정을 만들고 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한 편으로는 자신이 임신을 하여 자신의 피를 받은 새 생명이 뱃속에서 자라나고 있다고 생각하니 신기하기만 하였다. 누가 뭐라고 생각하던 하나님의 은혜로운 뜻이었다. 하반신마비 중증지체장애자인 자신도 임신을 하여 아이를 낳을 수 있다니!
“여기서 조금 쉬었다가 안정되면 식사를 해. 임신을 축하해.”
정 언니는 웃으며 축하한다고 말했지만, 아영의 고생스러울 미래를 측은하게 생각하는 마음은 감출 수가 없었다.
“진호는 소식 없어?”
“네, 없어요.”
“진호 연락되거든 병원에 한 번 가 봐. 꼭 같이 가야 해, 알았지?”
정 언니의 이야기가 중절수술을 받으라는 뜻이었음을 아영은 짐작하였다. 하지만 아영은 결코 그럴 수는 없었다. 입술을 깨물며 속으로 다짐하였다.
‘꼭 낳아야 해. 나도 충분히 낳을 수 있다구. 아이를 안아 줄 오른팔에 아직 힘이 남아 있잖아. 우리 아기는 누구보다 예쁠 거야. 할머니도 나와 우리 아기를 위해 기도해 주시겠지. 하나님은 이 모든 것을 알고 계시거든. 안 그래, 아가야?’
아영은 자신의 아랫배를 내려다보며 두려움과 감격이 혼합된 묘한 눈물을 뚝 뚝 떨어뜨렸다. 이때 문밖에서 자동차소리가 났다. 가스를 주문하지도 않았는데 웬일인가? 하고 밖을 내다보니, 뜻밖에도 진호 오빠였다.
아영은 흘리던 눈물을 감추려 손 등으로 닦아내었지만 진호와 눈이 마주치자 도로 흠뻑 젖고 말았다. 어린아이처럼 창피도 잊은 채 엉엉 소리 내어 울어버리고 말았다.
“울지 마. 이곳 문 닫는다면서? 걱정되어 왔어.”
“응? 어떻게 알았어, 오빠?”
“지역신문에서 봤지. 그래서 아영이 데리고 갈 방까지 얻어 놓았어.”
“저... 정, 정말? 아니 세상에! 어디예요?”
“사무실에서 가까운 곳으로 얻었지. 용인시 이동면 ‘어비리’라고, 마을 앞에는 저수지도 있지. 어비저수지... 경치도 괜찮아. 이사 갈 준비 하고 기다려.”
너무나도 반가운 소식이었는지 옆에서 듣고 있던 정 언니마저 함께 기쁨의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아영은 지금까지의 원망과 후회와 그 모든 서러움이 한꺼번에 날아가는 듯하였다.
정 언니가 진호에게 말했다.
“진호 씨, 아영에게 기쁜 소식이 있어요.”
“네? 기쁜 소식이라니요?”
“직접 물어보세요. 축하해요. 그리고 한턱 단단히 내셔야 해요.”
13. 이상한 저수지
--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