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날 Anassi에서 초저녁에 돌아와 식사를 하고 방에 들어와 일찍 휴식을 취했다. 시차가 여전히 완전하지 않아 새벽 4시에 다시 정신이 또렷이 들며 깨어난다. 아직은 문을 열지 않았지만 아침 일찍 카페에 나가 맛있는 커피를 마시며 느긋히 아침 풍경을 구경할 생각에 벌써부터 설렌다. 오늘은 기차를 타고 조금 먼 지역을 다녀올 생각이다. 관광객들이 많이 방문하는 이쁘고 아름다운 도시 방문은 이번에도 좀 미루고 관광객들보다는 모로코 서민들의 진득한 삶의 모습을 한번 더 탐방해 보기로 했다.
개인적으로는 기차여행을 한지가 정말 오래되었고 물가가 저렴한 모로코에서 기차여행을 하는 것도 흥미로울 것 같다. 기차를 타고 도착할 수 있는 도시를 찾아본다. 카사블랑카에는 1923년에 지어진 Casa Voyageurs라는 제법 큰 기차역이 있다. 현재는 현대적 시설로 확장공사를 마치고 스타벅스, 맥도널드 및 각종 편의 시설도 입점해 있으며 플랫폼도 넓혀 모로코의 교외 및 장거리 도시로 연결되는 주요 교두보인 곳이다.
카사블랑카에서 동쪽으로 약 140마일(225km) 정도 떨어진 지역에 Sidi Kacem 이라는 도시를 찾았다. 열차역도 있고 카사블랑카에서 2시간 30분가량 떨어진 거리에 위치해 있어 여행해 볼만한 도시였다. 2시간 30분 기차여행이 93DH(약 $9.00, 11600원)이니 정말 부담 없는 가격 아닌가?
가볍게 짐을 챙겨가려 했으나 그곳에서 여행이 길어져 하룻밤을 지내고 올지도 모르니 만일을 대비해 세면도구와 옷가지 몇 개를 챙겨간다.
숙소에서 나와 기차역으로 가기 전 에스프레소와 빵으로 간단한 아침식사를 마친다. 모로코 에스프레소는 확실히 흔히 마시는 스타벅스에 비해 부드럽고 연하다. 바삐 움직이는 아침 유동인구들 속에 잠시 느긋히 앉아 여유를 즐겨본다.
트램 도심 경전철을 타고 Casa Voyageurs기차역에서 내린다. 40여분 일찍 도착해 모로코의 스타벅스와 맥도널드는 어떤 메뉴를 팔고 있나 신기한 듯 기웃거려 본다. 미국에서는 너무 흔한 스타벅스와 맥도널드가 모로코에 오니 호기심의 대상이 되었다. 동네의 거의 대부분의 동네 카페와 다르게 역시나 스타벅스는 다양한 컵 크기와 많은 메뉴들이 있었다.
기차표 검색대를 지나 플랫폼에 미리 내려와 기다리니 12시 30분 예매한 기차가 플랫폼에 미끄러지며 도착한다. 예매한 번호의 객차에 올라 좌석을 찾아 앉는다. 서로 마주 보고 앉는 좌석이고 한 줄에 네 명이 빼곡하게 앉을 수 있다. 서로 마주 보고 앉아 있자니 어색함이 감돌았다. 외국 관광객을 찾아볼 수 없는 이 기차에 한국사람이 한 명 앉아 있다. 다들 나를 뭐하는 사람 인가 하며 쳐다보는 듯하더니 이 수줍은 모로코인들은 이내 시선을 돌려 먼 창밖을 보거나 핸드폰을 쳐다본다.
용기를 내어 옆에 아저씨께 인사를 해본다. 제대로 기차를 탄게 틀림없지만 그냥 이 기차가 Sidi Kacem 가는 거 맞는지 확인차 물어본다. 역시나 무뚝뚝하고 차가워 보이는 모로코인들, 먼저 말을 한마디 건네자 미소 지으며 네다섯 마디로 화답한다. 모든 대화는 누구를 만나든 역시나 똑같은 포맷으로 시작한다. 남한에서 왔고(아나 맨 꼬레아 제누비아) 여행을 다니고 있다(아노 아사 퍼). 사는 동네와 가족 여부를 간단히 더 물어본 후 본격적으로 핸드폰을 꺼내 구글 번역기를 돌린다.
열차는 제법 빠른 속도로 카사블랑카를 떠나 동쪽으로 달린다. 약 30분 정도 달렸을까? 대도시에 도착했는지 주변 사람들과 슬슬 편해지기 시작할 무렵, 대부분 하차를 하고 또 다른 많은 사람들이 다시 타기 시작한다. 이번엔 키가 제법 크고 건장해 보이는 청년들이 커다란 짐가방과 여행 케이스를 잔뜩 들고 탄다. 같은 국방색 배낭을 몇 개씩 들고 타는 거 보니 젊은 군인들이 아닌가 싶다. 다시 호기심일 발동해 직업이 뭔지를 물어보니 경찰이라 한다. 동료들과 단체로 휴가를 나와 집으로 향하고 있다고 한다. 20대 초반이라는 이 경찰들은 젊은이들답게 서로 장난도 치며 짓궂기도 하고 사온 샌드위치를 먹으며 핸드폰도 습관적으로 쳐다본다. 나에게도 한 조각 먹어보라며 인심 좋게 샌드위치와 감자튀김을 권하는데 배가 고프지 않은 데다 식욕이 왕성한 젊은 친구들의 음식을 얻어먹는 건 아닌 거 같아 극구 사양을 했다. 참 다정스러운 젊은이들이다. 한 친구가 영어를 더듬거리나마 조금 해 그나마 소통을 할 수 있었고 나의 구세주 구글 번역기도 사용하며 가는 내내 대화를 나누었다. 여자 친구 얘기도, 한국에 대해서도, 미국에 대해서도, 모로코의 문화에 대해서도 많은 대화가 오고 갔다. 경찰에서의 보직이나 하는 일도 궁금했지만 보안이라며 말을 해주지 않는다. 개구쟁이들 같이 서로 농담도 하고 장난도 치지만 딱 부러진 모로코의 청년 경찰들이었다.
한 시간을 넘게 달리는 기차 밖 풍경은 카사블랑카와는 매우 다른 모습이었다. 넓은 대지에 띄엄띄엄 집들이 몰려있고 때론 넓은 과수원도 나오고 때론 끝없이 펼쳐진 나무숲도 나오고 중남 아프리카에 비해 모로코는 그나마 비옥한 땅이다. 두 시간이 지나 어느덧 목적지에 기차가 도착한다. 청년 경찰들과 악수를 나누고 작별인사를 하고 짐을 챙겨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Sidi Kacem기차역에서 내린다. 카사블랑카보다 왠지 더 덥고 습한 느낌이 든다. 기차역에서 나와 멀리 낮은 건물이 보이는 마을 쪽으로 천천히 걸어간다. 역시나 Anassi처럼 관광객이 들러갈 만큼 특징적인 것들이 보이지 않는 소박한 모로코의 시골 마을이다.
길 양 옆으로 서있는 가로수 나무가 특이해 보니 초록색의 레몬 열매가 잔뜩 맺혀있는 것이 아닌가? 레몬 가로수가 이 더운 날 마을까지 걸어가는 마음을 상쾌하게 해 준다.
날이 더워서일까? 길거리에 많은 사람들이 눈에 띄지는 않았다. 10월 중순이지만 기온은 30도까지 육박하는 듯 땀이 흐른다. 지나는 길에 카페가 보여 잠시 앉아 궁금했던 아보카도 주스를 주문해서 마셨다. 걸쭉하고 설탕을 잔뜩 넣어 고소하고 달달한 맛이 이 더운 날씨에 어울리지 않는 잘못된 선택이었다. 잠시 휴식을 취하며 땀을 식힌 후 다시 동네로 향한다.
이 지역 역시 전날의 Anassi처럼 가정과 상업지역이 혼합된 지역이다. 몇 블록을 위로 가면 주거지가 몰려있고 그 밑으로는 상업구역이 시작된다. 꾀 인구밀도가 높은 지역인지 모든 건물들은 높지 않지만 식당, 카페, 자동차 정비소 , 식료품점, 노점상 등이 꽤 넓은 지역에 분포되어 있다.
음... 뭔가 전날 방문했던 Asassi보다 사람들이 다소 차갑다는 느낌이 든다. 동남아, 이슬람 국가는 K문화의 영향으로 한국사람을 보면 상당히 반가워하고 호의적인 이라는 정보를 많이 접하였는데 큰 기대를 한 것도 아니지만 언어가 짧으니 누군가 먼저 다가와서 친절을 베풀어 줄 거란 막연한 기대를 했었나 보다. 동양인을 그리 신기하게 바라보지도, 눈을 마주치지도, 미소를 지어주지도 않는다. 내가 먼저 반응하고 다가가지 않는 한 먼저 반응하지 않아 다소 당황스럽기도 했다. 이슬람 언어도 전혀 모르고 모로코인들 사이에 떨구어진 이 한국사람 마음에 긴장감이 흘렀다. 오늘도 정해진 일정과 행선지 없이 눈으로 보고 느끼며 도시 탐방을 한다. 여행자인 나만 제외하곤 모두 바쁘게 살아가고 있다. 가끔씩 눈이 마주쳐 내가 먼저 인사를 하면 그때 반응하는 수줍은 민족.... 중간중간 내게 다가와 돈을 달라는 행동을 하는 사람들도 만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