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또 다른 자본주의 입문, 주식과 코인

길을 잃고서야 비로소 보인 것들, 나만의 투자 원칙을 세우다

by 빅토르

불혹의 나이를 넘길 때까지 나의 자산 관리 원칙은 오직 ‘성실’이었다. 노동소득을 투자해 본 적 없이 그저 예적금에만 차곡차곡 쌓았다.

30대를 고스란히 바친 주재원 시절, 한국보다 세 배나 높은 소득을 올렸기에 착실히 모으기만 하면 귀임하면 마포 아파트 정도는 살 수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착각이었다. 코로나 팬데믹이 가져온 유동성 장세 속에서 내가 모은 화폐 가치는 눈 녹듯 사라졌고,

실물자산인 부동산은 손을 쓸 수 없을 만큼 폭등했다.

2021년 말, 귀임 직후 내가 느낀 ‘현타’의 실체는 바로 이것이었다.


결국 마흔이 넘은 나이에 부동산 공부와 더불어 주식, 비트코인을 처음 시작했다.

8년이라는 해외 생활 공백 탓에 스마트폰 앱을 설치하는 것조차 하나의 도전이었다.

귀찮은 것은 딱 질색인 성격이지만, 노동소득에만 의존했던 과거의 나를 철저히 바꾸기 위해 무조건 해야만 한다는 절박함으로 뛰어들었다.

주식은 토스로, 코인은 업비트로 첫발을 뗐다.


주식은 가장 익숙한 국내 대장주인 삼성전자, 현대차, 카카오부터 매수했다.

주가 등락에 따라 내 마음도 롤러코스터를 탔다. 그렇게 4년(21년~25년)의 시간이 흘렀다.

무수한 시행착오 끝에 총수익을 정산해 보니 고작 ‘7만 원 플러스’였다. 국내 IT 주식에서 수백만 원을 잃고 미국 주식으로 간신히 만회한 결과였다.

허탈했다. 4년이라는 기회비용을 따지면 예적금보다 못한 성적표였다.

하지만 얻은 것도 있다. 투자 감각을 익혔고, 무엇보다 나의 투자 성향을 명확히 알게 되었다.

그래서 결단했다. 앞으로는 미국 지수(Index)에만 투자하기로.

최근 국장이 5,000포인트를 돌파하는 불장이라 해도 내 성향과는 맞지 않는다.

크게 먹지 못하더라도 ‘슈퍼파워’ 미국의 펀더멘털을 믿고 잘 분산된 ETF에 묻어둔 채,

나는 본업에 충실하는 것이 정신 건강과 자산 증식 모두에 이롭다는 결론을 내렸다.


비트코인과의 첫 만남 역시 21년 12월이었다.

사자마자 가격이 꺾였다. 시도 때도 없이 업비트 창을 들여다보며 초조함에 손톱을 물어뜯었다.

'22년 하락장엔 결국 -75%라는 숫자를 마주했다. 그쯤 되니 오히려 자포자기 심정이 되어 1년 넘게 시세를 보지 않았다.

그 공백기에 부동산 공부에 매진했다. 그런데 잊고 있던 비트코인이 '23년부터 꿈틀대더니 '24년에는 매수가의 두 배가 되어 있었다.

계엄의 여파로 시장이 얼어붙었던 '25년 초, 마침내 강남 부동산을 매수하며 비트코인을 전량 매도해 잔금에 보탰다. 고마운 자산이었다.


부동산 등기 이후, 비트코인을 다시 DCA(적립식 투자)로 조금씩 모으기 시작했다.

그러다 작년 추석 무렵, 거북이 떼가 나오는 범상치 않은 꿈을 꾸고 충동적으로 신용대출을 일으켜 의미 있는 수량을 담았다.

매수 직후 20% 수익을 찍었으나, 안타깝게도 거기가 상투였다. 지금은 다시 하락 중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팔지 않는다. 다시 오를 것이라는 경험적 확신이 있고, 내 집 마련의 결정적 순간에 힘이 되어준 자산이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올해 나는 다시 주재원 파견을 떠난다.

이번 파견의 목표는 명확하다. 미국 주식과 비트코인이라는 금융 자산의 구조를 탄탄히 세팅하고, 노동소득을 꾸준히 적립해 나가는 것.

시행착오의 시간은 끝났다. 이번엔 반드시 성공할 것이다.

작가의 이전글7. 지금 생각하면 아찔한 '불나방 투자'의 기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