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매제한이라는 족쇄, 그리고 강남을 향한 발걸음
검단에서 딸이 다니던 초등학교는 하루가 멀다 하고 전학생이 밀려들었다. 학생 수가 넘쳐 학기 중에 분반을 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검단이 대단한 학군지여서가 아니었다. 서울의 주거비 부담을 이기지 못한 30대 학부모들이 새 아파트가 넘쳐나는 검단신도시로 유입된 결과였다.
검단 아라동의 평균 연령이 약 34세로 인천 전체 평균보다 10세 이상 젊다는 사실이 이를 방증한다.
어수선한 신도시 신설 학교에서 제대로 된 면학 분위기를 기대하기란 어려웠다.
무엇보다 내 안에는 딸에 대한 ‘부채의식’이 있었다.
나의 해외 주재원 파견으로 인해 딸은 초등 6년 동안 3개국, 5곳의 학교를 전전해야 했다.
정체성이 확립되어야 할 중학교 시기만큼은 뿌리 내리지 못한 신도시의 신설 학교에 맡기고 싶지 않았다.
나의 학창 시절 기억도 한몫했다.
서울 외곽에서 고등학교를 다녔던 나는 쉬는 시간조차 마음 편히 책상에 앉아 있을 수 없었다.
공부를 하려 하면 방해하는 친구들 사이에서 사투를 벌여야 했다.
55명 중 40명은 자고, 10명은 딴짓을 하며, 단 5명만이 수업에 집중하던 ‘오합지졸’의 분위기.
그곳에서 공부를 하는 것은 오히려 유별나고 이상한 일이었다.
내 딸에게는 그런 경험을 물려주고 싶지 않았다.
나는 다시 해외 주재원을 나갈 기약이 있었기에, 국제학교로 가기 전 2~3년만이라도 검증된 서울 학군지에서 탄탄한 기본기를 다져주고 싶었다.
검단 아파트 전세 계약이 만료되는 2024년 2월,
나는 중학교 입학 전 학군지 이사를 확정 지었다.
하지만 발목을 잡는 족쇄가 있었다. 2022년 5월 청약으로 당첨된 검단신도시 분양권이었다.
공공택지 분양가 상한제가 적용된 그 곳은 3년의 전매제한이 걸려 있었다.
분양가를 치르고도 자금이 남을 터라 결과적으로 잘못된 선택이었지만, 이미 되돌릴 순 없었다.
하락장이던 2022년 하반기에 계약금 10%를 포기할까도 고민했지만 시기를 놓쳤다.
그때 뼈저린 투자 철학 하나를 얻었다.
‘전매제한이 걸린 단지는 절대 사지 않는다’는 것.
세상과 나의 처지는 예측 불허인데,
전매제한은 스스로를 옥죄는 자발적 수의였다.
처음 눈에 들어온 곳은 목동이었다.
예산 밖인 앞단지(1~7단지) 대신 뒷단지 중
가장 후미지고 비행기 소음이 심한 11단지를 살폈다.
2023년 하반기 당시 27평 매물 호가는 12억 원 선.
여러 차례 임장을 가며 10억 대로 가격이 떨어지면 영끌이라도 하겠노라 다짐했지만,
호가는 무심하게도 금세 14억 원을 넘어섰다.
매매가 안 된다면 전세라도 가야 했다.
그런데 목동의 노후 단지 전세가를 살피다 보니
문득 이런 생각이 스쳤다.
‘이 돈이면 강남 재건축 단지 전세와 큰 차이가 없지 않나?’
당시 강남 20평대 전세 시세는 압구정 현대·한양이 8억 대, 개포 경우현 7억 대, 은마 6억 대, 개포주공 5·6·7단지가 5억 대였다.
"그 돈이면 차라리 강남"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이제 아내를 설득해야했다.
인천 토박이인 아내에게 서쪽은 본능적인 안식처였다.
설득을 위해선 직접 보여주는 수밖에 없었다.
어느 주말, 아내를 데리고 아내 생애 첫 임장을 떠났다. 진선여중과 숙명여중 라인을 따라 역삼, 도곡, 양재천, 개포동을 세 시간 동안 걸었다.
특히 양재천의 풍광은 아내의 마음을 흔들었다.
수리가 안 된 7억짜리 개포 경남 아파트 내부를 보며 아내는 머뭇거렸지만, 적어도 나의 '강남향' 방향성에는 기꺼이 공감해 주었다.
그 무렵, 출근길에 강남 부동산 보유자로 유명한
회사 선배로부터 연락이 왔다.
주말에 아내를 데리고 오면 직접 강남 임장을 시켜주겠다는 제안이었다.
부동산 문제로 현타를 느끼며 암담해하던 시절,
부모님에게서도 얻지 못한 위로를 평소 친하지도 않던 선배가 건네오자 목 끝까지 뜨거운 것이 차올랐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