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다시 만난 부동산 고수 선배의 '강남론'

"강남은 열심히 사는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이다."

by 빅토르

회사에서 알고 지낸 지 10년이 넘었지만, 그 선배와 딱히 접점은 없었다.

15년이라는 나이 차이 탓에 공감대가 부족했고, 그는 이미 임금피크제에 들어서며 은퇴를 준비하는 내리막길에 서 있는 분이었다.

하지만 사내에서 부동산 고수로 정평이 나 있던 분이었기에, 고민 끝에 청한 식사 자리에서 나의 불안함을 털어놓았다.

선배는 따뜻하면서도 현실적인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내 고민이 마음에 걸렸는지, 선배는 며칠 뒤 나와 아내를 강남 임장에 초대했다.

토요일 아침, 검단에서 한 시간을 달려 도착한 개포동의 한 노후 단지 앞은 도로변까지 점유한 주차 행렬로 가득했다.

솔직한 심정으로 ‘이런 곳에서 어떻게 사나’ 싶었다.

이윽고 청바지에 검은 모자를 눌러쓴 선배가 차에 올랐다.

간략한 지역 브리핑과 함께 우리 부부의 강남 임장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25,000보의 여정: 양재천을 가로지르며 본 것들


개포주공 5, 6, 7단지를 시작으로 대치삼성과 래미안대치팰리스, 일원가람상록수를 거쳐 개포 아너힐스와 래미안블레스티지, 그리고 은마아파트까지.

우리는 양재천을 중심으로 남북을 가로지르며 4시간 동안 무려 25,000보를 걸었다.

마지막 코스는 은마아파트 상가 내 수제비 식당이었다.

투박한 식탁 앞에서 선배는 본인이 몸소 겪어온 '강남론'을 펼쳐놓았다.


강남은 그저 부자들이 사는 동네가 아니라,
더 나은 삶을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이다.


이 한 마디는 아내의 마음을 움직였고, 우리가 검단에서 강남으로 이주를 결정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흙수저 출신 고수가 전하는 강남의 실체


지방 흙수저 출신으로 강남 재건축 단지에서 15년 이상 '몸테크'를 버텨온 선배의 조언은 언론에서 묘사하는 강남의 이미지와는 사뭇 달랐다.


· 갈라치기에 속지 마라: 언론은 강남과 비강남을 나누어 분열을 조장하지만, 실제로 겪어본 강남에는 순하고 합리적인 이웃이 더 많다.

'강남 텃세'는 외부에서 만든 프레임일 뿐이다.

· 자수성가의 무대: 금수저만 있는 것이 아니다. 스스로 부를 일구었거나, 자수성가를 위해 치열하게 노력하는 이들의 비중이 상당히 높다.

· 비싸다는 오해와 거주 전략: 강남 재건축 단지의 전세가는 웬만한 수도권 신축 거주비보다 저렴하다. 외곽의 신축 거주만을 고집하면 자산 증식의 기회를 놓친다. 세를 끼고 투자하고, 본인은 재건축 단지에서 몸테크를 감수하는 것이 부의 사다리를 타는 정석이었다. (※ 현재는 막힌 투자법이다.)

· 환경이 만드는 태도: 대치동 학군지는 단순히 성적만을 위한 곳이 아니다. 기본적으로 형성된 면학 분위기는 아이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 나 또한 30대부터 강남에 거주하며 주변의 열기에 자극받아 더 열심히 살게 되었다.


보이지 않던 벽을 허물다


선배의 '강남 간증'은 나에게 큰 울림을 주었다.

나 역시 무의식중에 강남은 특별한 사람들만 사는 동네, 혹은 범접할 수 없는 성벽 같은 곳이라 치부하며 마음의 벽을 쌓고 있었는지 모른다.

허름한 옷차림의 선배가 그곳에서 일가를 이룬 모습은 그 자체로 신선한 충격이자 깨달음이었다.

그날 이후, 나는 선배와 몇 차례 더 서울 임장을 함께했다.

그리고 그 여정 끝에 마주했던 아파트 중 한 곳은 훗날 내 이름의 '등기'로 남게 되었다.

부부의 인생에 명확한 이정표를 제시해 준 선배에게 다시 한번 깊은 감사를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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