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일정한 시간 동안 책상에 앉아 있다. 글을 쓰거나 수정하고, 책을 읽고, 가끔 그림을 그린다. 그렇지만 똑같은 시간을 앉아 있어도 어떤 날은 다른 날보다 더 많이 쓰고, 또 어떤 날은 한 줄도 못 쓰는 경우가 있다. 심지어 전날 쓴 글을 왕창 지우기도 한다.
글쓰기는 거울과 비슷해서, 내가 내 스스로를 잘 들여다보고 다독일 때 쓸 수 있다. 나는 별로야, 나는 쓸모 없어, 이런 생각을 품기 시작하는 순간 글은 엉망으로 무너진다. 그런 상태일 때 쓴 글은 읽는이에게 대번 들킨다. 자존감이 낮을 때는 글이 안 써지고, 문장이 꼬인다. 했던 말을 또 하고, 같은 표현을 반복한다. 그러면서도 그게 눈에 안 들어온다. 심지어 그게 잘못되었다는 평가를 해도 귀에 들리지 않는다. 잔뜩 웅크린 채 ‘나는 별로야’, ‘나는 글쓰기를 잘 못하나봐.’ ‘누가 내 글을 좋아하겠어?’ ‘진짜 열심히 했는데, 왜 내 글을 몰라주지?’ 이런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나를 무너뜨리려 한다.
꽤 오랫동안 글을 못 쓰던 때가 있었다.
그때 나는 마음이 힘들어서 다른 생각을 할 겨를이 없었다. 밤마다 울면서 걸었고, 잠을 설쳤다. 도대체 왜 내게 이런 일이 생겼을까, 내 가족을, 힘든 일을 겪게 한 사람들을, 신을 원망했다. 그건 누구의 잘못도 아니었지만, 모두를 힘들게 한 일이었다. 한 사람이 세상을 떠나면서 생긴 소용돌이였다. 그 여파가 얼마나 거세고 꼬리가 길었는지, 이십 년이 지난 다음에도 파도치며 나를 흔들었다. 내가 헤쳐나갈 수 있는 성질이 아니었다. 아니라고 생각했다.
“왜 하필 나인가요?”
이런 질문을 숱하게 던졌다.
“왜 하필 우리인가요?”
같은 빈도수로 물었다.
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아무도 답하지 않는 질문을 허공에 대고 숱하게 했다. 수많은 요리들을 도 닦듯 만들어냈다. 잠이 오지 않았고, 마음은 무거웠고, 시간을 보낼 일거리가 필요했다. 내 마음이 엉망이니 글은 당연히 써지지 않았다. 그야말로 카오스 그 자체였다.
그런데 그렇게 방황하던 내게 여러 사람들이 도움을 주었다.
“무슨 말을 하고 싶었어요?”
내 글을 보며 이런 질문을 던지던 동료의 목소리가 아직도 생생하다.
“그러니까, 이 글에서 무슨 말을 하고 싶었냐고요.”
그때 나는 우물쭈물했다. 자존감이 바닥으로 내려갔던 나는, 무엇이든 해보고 싶었다. 하지만 그 바닥난 자존감이 글에 고스란히 투영된다는 사실을 그때는 몰랐다. 한참 시간이 지나 자존감이 회복된 뒤에 나는 그때 썼던 글들을 모두 버렸다. 그런데 그 글들이 다른 글에서 툭 튀어나오는 경험을 했다. 한 번도 아니고, 여러 번 그랬다. 그래서 요즘은 글을 버리는 걸 두려워하지 않는다. 이 글이 내 인연이면 언젠가는 또 올 것이다. 그러니 두려워하지 말자.
그때 나를 달랬던 음식을 가끔 해 먹는다.
바로 짬뽕 국물이다.
먼저, 멸치와 다시마로 다싯물을 낸다. 그리고 칼칼한 맛을 내려면 고추기름을 내야 하는데, 요즘은 고추기름도 판다. 해물모듬과 자투리 채소들도 준비한다.
달군 냄비에 고추기름을 넣고 파와 마늘을 넣어서 볶다가 해물을 볶는다. 그런 다음 다싯물을 붓고 끓인다. 여기에 자투리 채소를 넣고 소금으로 간한다.
얼큰한 국물에 취향대로 이것저것 넣어서 만들어 먹는데, 가정용 불은 중식당처럼 불맛이 입혀질 정도로 강하진 않지만 먹을 만하다. 이렇게 얼큰한 국물에 밥을 한 그릇 뚝딱 먹고 나면 내가 하찮은 사람같지 않다. 나는 제대로 밥상을 차릴 수 있는 사람이고, 얼큰한 국물을 먹고 싶으면 만들 수 있는 사람이다. 그러니 지금은 글이 안 써져도 언젠가는 꼭 쓸 것이다. 그 때가 오기 위해서 열심히 글을 쓰자. 쓰고 또 쓰고, 지우고 또 지우더라도.
지금도 나는 가끔, “무슨 말을 하고 싶었어요?”라고 묻던 동료 작가의 말을 떠올린다. 글이 막힐 때마다 내가 왜 이 글을 쓰고 싶었는지를 되묻는다. 집요하게 묻다보면, 저 깊은 곳에서 실마리가 올라온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 매일, 일정 시간을 투자해서 열심히 써야 한다. 하루에 몇 시간씩, ‘작가’로 살기 위해 시간을 쏟아야 한다.
나는 아직도 내가 자질이 부족하다고 여긴다. 그래서 남들보다 더 노력해야 하고, 꾸준해야 한다고 믿는다. 그러다보면 언젠가는 스스로 ‘작가’라는 이름이 낯설지 않는 날이 오겠지. 오늘도 책을 열심히 읽었다. 글이 안 써져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