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가끔 진다.

by 김하은


첫째를 임신했을 때 골반이 틀어졌다. 걷다가 멈춰 설 정도로 통증이 심했고, 출산하면 이 고통이 줄어들 것으로 믿었다. 그러나 모유 수유를 했던 내겐 틀어진 골반을 교정할 시간이 없었다. 두세 시간 자고 일어나서 울어대는 아이에게 젖을 물리고, 겨우 잠드는가 싶으면 또 우는 아이 때문에 밤새 푹 자는 게 소원일 정도였다. 게다가 아이는 예민했다. 겨우 잠재웠나 싶었는데 누군가 문을 열고 들어오면 눈을 반짝 떴다. 맙소사! 한 번 잠들면 세상 모르고 잠들던 내겐 정말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니 골반이 틀어지든 말든, 잠이 우선이었다. 제발 자라, 그래야 나도 잘 수 있잖아!


손목 아대를 찼고, 유축기로 남은 젖을 짜냈고, 남는 시간에는 쪽잠을 잤다. 당시 반려는 일이 많아서 새벽에 출근하고 밤늦게 퇴근하는 직장인이었다. 그러니까 당시 나는 독박 육아를 하고 있었다. 친정이 멀었던 나를 챙긴 사람들은 시어머니와 시누이들이었다. 시누이들이 돌아가면서 미역국을 끓여왔고, 맵거나 짜지 않은 반찬을 따로 건넸다. 그런데 그게 고맙다는 생각을 할 여력이 없었다. 지치고 힘들어서, 이 망할 육아는 언제 끝나나 하고 투덜거렸다. 비틀어진 골반과 아이를 안느라 늘어난 손목 인대, 줄어든 수면 시간, 불규칙한 식사 시간 등이 모두 불만이었다.


그런데 아이가 방싯거리면 힘든 게 사르르 녹았다. 뒤집을 때는 이제 얘도 사람 구실을 하겠구나 싶었다. 한쪽 팔을 올리고 로봇이 하늘을 나는 것처럼 배밀이를 할 때면,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잔뜩 힘을 준 발가락에서 삐욕삐욕 소리가 났다.

“어디로 날아가려고?”

아이는 대답하지 않은 채 열심히 앞으로 나아갔다. 그러다가 엉뚱한 질문을 던질 때가 되었을 때, 나는 그 답을 찾느라 애썼다.


그러다 둘째가 태어났다. 반려는 실직하고 나는 음식을 배우던 때였다. 두 아이를 보면서 한숨을 쉰 날이 많았다. 하지만 그럴 때도 아이들은 내게 기쁨을 주었다. 매일 조금씩 달라지는 모습을, 매일 풍부해지는 감정을, 매일 새로운 기술을 익혀서 나를 놀라게 했다.


그렇지만 아이들의 좋은 모습을 보면서도 늘 한편으로는 불안했다. 주변에는 어릴 때부터 아이들에게 한글 교육을 시키는 사람들로 넘쳐났고, 겨우 한글을 떼는가 싶더니 곧바로 알파벳으로 넘어가는 게 기본이었다.

“그러다 큰일나. 뭐라도 좀 시켜.”

남들은 나 대신 우리 아이의 미래를 걱정했다. 당장 먹고 살기 힘들다는 말을 꺼낼 수 없어서 웃어 넘겼지만, 어릴 때부터 고생시키고 싶지 않았다.


산자락에서 살던 우리는 가까운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 읽었고, 산으로 산책을 다녔다. 오래된 나무를 쪼는 딱따구리를 만났고, 계절마다 달라지는 자연을 만끽하며 살았다. 하지만 늘 마음 한켠으로 불안이 나를 감쌌다. 취직을 하려고 찾아간 떡집에서는 아이가 어린데 할 수 있겠느냐며 걱정스럽게 물었다. 설날처럼 대목을 앞두고는 며칠 밤을 새워야 한다는 말에 선뜻 하겠다고 할 수 없었다. 정말 아이가 어렸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아이들은 늘 내게 힘을 주었다.

좌절하고 힘들었을 때, 상처받아서 울고 있을 때, 앞으로 어떻게 살까 고민할 때, 그럴 때마다 아이들은 질문을 던졌다. 어쩌면 내가 어린이책에 글을 쓰는 이유도 그 무수한 질문에 대한 답일지 모른다.


첫째를 임신하면서 틀어진 골반은 10년이 지나서야 조금씩 치료를 받았고, 지금은 거의 불편없이 생활하고 있다.


아이들과 싸우기도 했고, 원수처럼 지냈던 때도 있다.

그런데 그때도 아이들과 이야기하려고 애썼다. 같은 음식을 먹고, 한 숟갈씩 나눠 먹으면서 고비를 넘겼다.

“엄마, 수정과에 곶감쌈 넣어서 먹고 싶어.”

이런 말을 들으면, 나는 이렇게 대답한다.

“응. 지금 수정하는 게 끝나면 만들게. 일주일 뒤?”

“오케이.”


일주일 뒤, 나는 수정과를 만들고, 애들과 곶감쌈을 같이 만든다. 곶감을 손으로 살짝 만져서 안쪽 살이 한쪽으로 쏠리지 않게 한 다음, 꼭지를 떼고 가위로 옆과 아래를 자른다. 그러고는 씨를 발라낸다. 네모 모양으로 곶감을 펴고, 그 위에 호두를 놓는다. 호두는 반으로 딱 갈라진 온전한 형태를 골라서 두 개를 붙여 쓴다. 그냥 붙여도 되지만, 둘 사이에 꿀을 발라서 붙여도 좋다. 펼친 곶감을 기차처럼 겹치고, 호두를 놓고 김밥을 말 듯이 돌돌 만다. 김밥처럼 발을 사용해서 말면 더 단단하게 말린다. 그 상태에서 랩으로 더 강하게 말고, 냉동실에 넣어 모양을 굳힌다. 그런 다음 칼로 썰면 모양이 흐트러지지 않는다.


수정과.jpg

수정과에 들어간 곶감쌈을 먹으면 대접받는 느낌이 든다. 스스로를 꽤 괜찮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게 만든다. 프리랜서로 살기 위해서는 시간을 잘 쪼개어 써야 하지만 자존감이 높아지게 하는 마법을 부리려면 이 정도 시간쯤이야!

곶감쌈은 간식으로 그냥 먹어도 좋다. 아이들과 같이 만들면 더 좋다. 처음에는 모양이 잘 안 나오겠지만, 몇 번 하다보면 요령이 생긴다.


그래서 나는 아이들에게 가끔 진다. 되도록 건강하게, 소소한 행복을 즐기게, 남들을 외면하지 않게, 스스로를 괜찮게 생각하면서 살 수 있기를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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