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아이 둘을 데리고 논술 첨삭을 하다가, 나는 왜 남이 쓴 글에 감 놓아라 대추 놓아라 참견을 하고 있나 자괴감이 들었다. 어릴 때부터 내 꿈은 작가였는데 먹고 사는 일에 치여서 내 글은 묻어두고 쌀을 살 수 있는 일에만 매달렸다. 그러다보니 내 글을 쓸 수 없었다. 겨우 아이 재워놓고 일을 하다가 애가 울면 다시 달려가고, 그러다 밥상을 차리고, 녹초가 되어 잠들곤 했다. 하루가 너무 짧았다. 나를 위해서 쓸 시간이 너무 없었다.
그러다 우울증이 찾아왔다. 만사가 귀찮고, 내 존재가 하찮고, 밥상을 차리는 일도 즐겁지 않았다. 아이들 둘과 반려, 시댁, 이 모든 환경이 낯설고 힘들었다. 음식으로 치면 식품 공장에서 대량으로 만든 식초 같았다. 그런 식초를 한 입 찍어 먹으면 신맛이 강해서 인상을 찌푸리게 되고, 어떤 때는 이까지 시리다. 내가 좋아하는 신맛은 사과나 익은 귤 정도에 해당했는데, 일상은 번번이 신맛의 강도가 셌다.
나는 큰 애 이름에 ‘엄마’를 붙여서, 때로는 반려의 이름 뒤에 ‘댁’을 붙여서 불렸다. 멀쩡히 어릴 때부터 불려온 내 이름을 제대로 부를 사람은 반려와 친정 식구들뿐이었다. 나는 내 이름을 불러주는 사람들이 그리웠다. 그 이름의 가치와 의미를 찾고 싶었다. 내가 누군가의 짝이자 엄마가 아니라, 온전히 독립된 인간으로 살아간다는 뜻을 회복하고 싶었다.
그때 떠올렸던 책이 프랑수와 플라스가 쓴 ‘마지막 거인’이었다. 작은애를 낳고 만사 심드렁하던 내게 반려가 선물한 책이었다. 나는 그 책에 푹 빠졌다. 그리고 그런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 마지막 거인이 남긴 발자취를 잇고 싶었다.
마음 먹기는 늘 쉽지만, 그대로 행동에 옮기는 건 또 다른 문제였다. 내가 읽은 동화책은 어린 시절에 멈춘 상태였고, 그때 읽었던 어린이책과 어른이 되어 접한 어린이책은 엄청난 차이가 있었다. 일단 어린이를 바라보는 시각이 많이 달랐다. 어린이를 교화의 대상으로 보았던 세대가 온전한 인격으로 보아야 한다는 시각을 보며 충격을 받았다. 또, 어린이가 착하기만 하다는 동심천사주의가 깨진 어린이책들이 꽤 많았다. 그러니 내가 어린이책을 쓰려면, 내 편견을 깨야 했다. 또한 내 중심을 잘 잡고, 아이들과 기꺼이 이야기할 마음가짐이 필요했다. 돌이켜보면 그 차이를 극복하는 데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어린이책을 쓰는 데 필요한 강좌를 들었고 고쳐야 할 부분을 지적받았으나, 그 뜻을 제대로 알아듣는 데에도 시간이 필요했다. 한 부분이 잘못되었다는 지적은 비단 그 부분만 잘못되었다는 뜻이 아니다. 다른 곳들도 이상하고 삐걱거리지만, 특히 그 부분이 이상하다는 뜻이다. 하지만 나는 잘못된 부분만 고치면 되는 줄 알고 계속 그 부분만 집착했다. 그러다보니 글 전체가 매끄럽지 않고 너덕너덕 누더기처럼 고쳐졌다. 그 과정이 얼마나 길고 지난한지, 수정하면서 느낀 신맛에 자꾸 인상을 썼다.
그러다 ‘어린이와 문학’이라는 잡지가 창간될 때 편집부원으로 일하게 되었다. 보수는 없고, 창간호라 일할 거리는 넘쳐났다. 그 즈음 취직한 반려에게 글을 쓰고 싶다고, 내 글을 쓰고 싶다고 했다.
“당신이 하고 싶다면, 해요.”
반려는 조용하고 단단하게 대답했다.
아이들 둘을 어린이집에 맡기고, 오전 시간에는 글을 쓰기 시작했다. 단편 하나를 완성시키는 데에도 꽤 많은 시간이 걸렸다. 그랬지만, 그 글들이 제대로 모양을 갖추진 못했다. 처음 글을 쓰고자 했던 의도에서 벗어나기 일쑤였다. 주제를 향해 달려가는 글이 아니라, 곁가지로 빠지는 글을 쓰고는 뿌듯했다. 사실 뿌듯할 만했다. 내 글이 이상하든 아니든, 어쨌든 그건 내 생각이었으니까. 누구의 엄마나 아내가 아닌 내 이름을 단 글이었고, 더이상 우울하지 않겠다는 다짐이었다.
그러다 단편 동화가 ‘어린이와 문학’에 실렸고, 그 뒤로 책을 출간하게 되었다. 나는 출간하면서 작가라는 이름을 얻었다. 그랬지만, 여전히 내 글은 신맛이었다. 글은 잘 써지지 않았고, 출판사에 투고한 글들은 번번이 퇴짜를 맞았다. 무려 3년을 그렇게 보냈다.
“이제 글을 그만 써야 할까 봐.”
나는 아직 식초에 있는 다른 맛을 느끼지 못하고, 신맛만 느낀 상태였다. 다시 우울증이 시작되었다. 모든 것이 귀찮았다. 삶의 의욕이 모두 사라졌고, 이때 내가 차린 밥상은 인스턴트가 꽤 많았다. 칼질이 너무 싫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