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첫날이다. 이 날 해돋이를 보려는 사람들로 붐비는 곳이 여러 군데다. 올해는 모래톱으로 사람들이 접근하지 못하게 금지했건만, 코로나 바이러스를 이기고 싶은 마음인지 아니면 제발 올해는 더 좋은 일이 일어나길 바라는 마음인지 경계선 밖으로 차들이 바리케이트를 치듯 둘러섰다.
나도 큰애가 어릴 때 해돋이를 보러 갔다. 야간 기차를 타고 이른 새벽에 바닷가에 도착했다. 사방이 까맣고, 파도 소리가 차갑게 귀를 때렸다. 해가 뜰 때까지 기다리는데, 애는 춥다고 보챘다. 추위를 많이 타는 나는 얼른 해가 떴으면 좋겠다고 투덜거렸다. 겨울 바다에서 부는 바람이 어찌나 매섭고 코가 시리던지 콧물을 훌쩍이면서 아이를 달랬다. 반려와 내가 아이를 번갈아 안았는데, 해돋이고 해넘이고 간에 얼른 집으로 가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그래서인지 해가 떴을 때 “우와!” 하고 감탄한 다음, 곧바로 뒤돌아섰다. 해는 매일 뜨고 지는데, 매일 새로운 마음으로 맞을 수도 있는데, 추위와 싸우면서 그걸 눈으로 봐야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 뒤로 한 번도 해돋이를 보러 가지 않았다. 대신 새해를 밥상으로 맞았다.
설에는 가족들과 함께 모이지만, 새해 첫 날에도 밍숭맹숭하게 보내기는 아쉬웠다. 이럴 때 식혜나 수정과를 만들기도 하는데, 주로 내가 먹고 싶을 때 만든다. 매끼 따듯한 밥을 할 수 없어서 밥을 푸고 남는 밥을 냉동실에 얼리는데, 이 밥이 많으면 식혜를 만든다. 설 즈음해서 좋은 생강을 손에 넣으면 수정과를 만들고, 배가 많으면 배숙을, 찹쌀가루가 있으면 원소병을 만든다. 다른 날에는 청량음료나 밀크티, 라떼를 마시더라도 이날만큼은 제대로 차려서 먹는다. 그러면 한 해를 건강하고 경건하게 맞으리라는 기대가 생긴다.
뭐니뭐니해도 떡국에 가장 신경을 많이 쓴다. 신혼 초에는 가래떡을 직접 뽑아서 꾸덕꾸덕하게 말린 다음 칼로 떡국떡 모양으로 잘랐다. 가래떡 다섯 개를 넘어가면 손목이 뻐근하고, 욕이 저절로 튀어나온다. 사서 먹으면 되지, 뭘 이렇게까지. (그때는 시댁에서 뽑은 가래떡을 받아 먹었기 때문에 사실은 욕할 처지가 못되었다.)
육수는 여러 가지를 쓴다. 멸치육수나 사골 육수, 양지국물 등으로 육수를 낸다. 그리고 떡을 넣고 끓인 다음 고명을 얹는다. 이 고명을 잘 올리면, 정말 그럴싸한 밥상이 된다. 보통 떡국에 올리는 고명으로 김, 달걀지단, 다진 쇠고기, 표고 등을 올린다. 이 가운데 나는 달걀지단과 다진 쇠고기를 주로 쓴다. 올해는 사골육수를 썼기 때문에 달걀지단과 다진 파를 올렸다.
우리가 흔히 보는 고명들은 달걀지단, 김, 실고추, 깨소금, 통깨 등이 있다. 이 고명들은 음식의 때깔을 좋게 하는 아름다움을 담당하지만, 또 다른 의미로는 ‘이 음식은 당신을 위해 차렸어요. 아무도 손대지 않았습니다’라는 뜻도 담는다. 정갈한 밥상에 먹음직스럽게 올린 고명을 보면 밥상에 마음이 간다. 지친 사람에게는 힘을 불어넣고, 쓸쓸한 사람에게는 위로를 주고, 입맛이 없는 사람에게도 숟가락을 들게 한다. 고명을 작고 보잘것없는 부분이지만 밥상에 표정을 더하는 중요한 역할을 맡는다.
떡국에 많이 올리는 고명 가운데 달걀지단을 만드는 방법은 다음과 같다.
우선, 달걀을 깨면서 흰자와 노른자를 나눈다. 달걀껍질에 노른자만 남기고 흰자만 그릇에 먼저 담는데, 싱싱한 달걀일수록 흰자가 노른자와 잘 헤어지지 않는다. 달걀 흰자와 노른자가 담긴 쪽이 아닌 다른 쪽 껍질로(혹은 숟가락으로) 흰자를 끊어가면서 그릇에 담는다. 달걀껍질에 노른자만 남으면, 다른 그릇에 노른자를 던지듯 담는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노른자가 깨진다.
다음으로 흰자와 노른자를 풀어야 한다. 그릇에 각각 숟가락을 놓고 푸는데, 이때 그릇 안쪽 벽에 숟가락을 직각으로 세워서 단백질 결합을 끊듯이 푼다. 숟가락을 빙빙 돌리면서 풀면 흰자가 뭉쳐져서 지단이 예쁘게 부치기 힘들다. 다 푼 다음에 소금을 살짝 넣기도 하는데, 안 넣어도 된다.
프라이팬을 달군 다음 기름을 두르고 닦아내거나 기름을 따른다. 기름이 많으면 지단이 울룩불룩해지거나 튀겨져서 자를 때 잘 부서진다. 그러니 기름 양을 줄이는 게 좋다.
불을 중불로 낮추고, 팬에 노른자를 먼저 두른다. 달걀 한 개를 기준으로 볼 때 노른자양이 흰자보다 훨씬 작으므로, 팬에 두를 때 노른자는 되도록 멀리 퍼지도록 한다. 노른자는 흰자보다 높은 불에서 익으므로 먼저 굽는다. 다 익으면 뒤집어서 마저 익힌다.
그리고 불을 더 낮추고 흰자를 팬에 두른다. 흰자는 금방 익으므로 올리자마자 불을 끄거나 팬을 들어올려서 온도를 낮추면 더 좋다. 가장자리부터 익어서 살짝 들리면, 뒤집어서 익힌다.
둘을 식혀서 적당한 크기로 썰면 달걀지단이 완성된다.
새해가 시작하는 때, 떡국 한 그릇에 올라온 정갈한 달걀지단은 기분을 좋게 한다.
“나는 떡국에서 지단이 제일 맛있어!”
애들이 했던 말이다. 어쩌면 그건 맛 때문이 아니라, 손님처럼 대접받는 기분이 들기 때문이리라. 직장에서, 학교에서, 친구들이나 동료들 사이에 힘들고 지쳤던 마음이 조금은 누그러진다. 떡국떡을 내가 자르지 않더라도 지단을 올리면 근사한 떡국으로 변신한다.
바빠서 대충 먹을 때가 있더라도 그럴싸한 상차림이 필요할 때가 있다. 내게 떡국 위 지단이 그렇듯이, 누군가에겐 라면 위에 올린 다진 파, 김치볶음밥에 올린 통깨가 그런 존재다. 올 한 해, 그럴싸한 상차림이 가끔 필요할 날이 많았으면 좋겠다. 좋은 날, 좋은 소식, 기쁜 마음으로 차린 상에 숟가락 하나 얹고, 밥한술 뜨고 가라고 부를 수 있는 날이 얼른 오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