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초콜릿이 제일 좋고, 그 다음은 짬뽕! 엄마는?”
자신이 좋아하는 음식을 내뱉은 둘째가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물었다.
“초콜릿도 좋고 짬뽕도 좋아.”
“아, 아니. 그런 거 말고. 딱 하나만!”
“딱 하나?”
이런 질문에 대답하기란 참 어렵다. 기분이 우울할 때는 초콜릿 한 조각, 스트레스가 많을 땐 짬뽕 한 그릇, 속이 아플 때는 흰 죽, 목이 따끔거릴 때는 따뜻한 꿀물, 가끔 속이 허전할 때는 비빔밥, 묵은 김치로 푹 끓인 김치찌개, 아이스크림……. 이 많은 음식들 가운데 하나만 어떻게 고르란 말인가!
“좀 생각해볼게.”
나는 답을 미뤘다.
처음 동화를 쓰려고 할 때, 어떤 작가를 좋아하느냐는 질문을 받았다. 그때도 한참 생각했다. ‘마지막 거인’으로 동화를 쓰려는 마음을 먹었으니 ‘프랑수와 플라스’라고 대답할 수도 있겠지만 그 사람의 작품을 많이 읽지 않은 상태였다. 발칙한 상상력으로는 ‘로알드 달’이 끌렸고, 마음을 움직이는 글은 ‘권정생’이, 역사 동화로는 ‘강숙인’, 묵직한 주제를 능숙하게 다루면서 오래 마음에 남게 하는 ‘이현주(어떤 작품은 이 아무개로 발표)’, 발랄한 글쓰기로는 ‘임정진’……. 선택할 대상이 너무 많았다. 그래서 한참 생각하다가 ‘로알드 달’이라고 대답했다. 그때도 한 사람만 선택하는 건 어려웠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작가들은 많았고, 그들이 쓰는 작품들도 많았다. 하지만 내 글은 책으로 나오지 못하고 계속 굴러다녔다. 수정을 하고 또 하고, 너덜너덜해지도록 고쳤지만 결과가 나빴다. 그런 과정이 거듭되면서 자신감을 잃었다.
내가 과연 작가이긴 한 걸까, 그때 낸 첫 책이 우연이고 진짜는 책 한 권을 내기 힘든 엉망진창이 아닐까.
이런 시간이 길어지면서 자존감은 바닥으로 떨어졌고, 힘든 시간이 자꾸 쌓였다.
“이제 글을 그만 써야 할까 봐.”
같이 글공부를 하던 사람들에게 말할 때, 나는 정말 그럴 작정이었다. 아동문학의 황금기는 이미 지난 시기에 내가 글을 쓰기 시작했으므로, 암담한 상황이 펼쳐지고 있었다. 요즘은 대형 온라인 서점들이 중고서점을 내면서 그 상황이 더 나빠졌다. 책은 최초 판매의 원칙에 따라, 중고서점에서 두 번 혹은 세 번을 팔리든 작가에게 지급되는 인세는 없다. 예전 같으면 세 명의 독자가 책 한 권씩을 샀겠지만, 요즘은 한 명의 독자가 책 한 권을 사서 후딱 읽고 중고서점으로 되팔면 또 다른 독자가 그 책을 사고 다시 되판다. 내 책 한 권이 네 번이나 다섯 번을 중고서점에서 팔려도 내 인세는 한 권 분량만 발생한다. 그러니까 작가로 살아남기가 훨씬 어려워졌다는 뜻이다.
그러다가 원주에 있는 ‘토지문화관’ 소식을 들었다. 작가를 비롯한 예술인들이 그곳에 머물면서 작품 활동을 할 수 있다고 했다. 전국에 이런 예술인 레지던스들이 여럿 있는데, 한 번도 그곳에 갈 엄두를 내지 못했다. 왜냐하면, 스스로 작가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한 번 가 보면 어때?”
내가 글을 그만 쓰겠다고 했을 때, 답답한 내 상황을 지켜보던 동료 작가가 권했다. 그리고 그곳에 가려면 서류 심사를 통과해야 한다고 했다. 한정된 방에 지원하는 예술인들이 많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그 지원 서류에 영혼을 갈아넣었다.
한 해 들어가는 예술인 명단에 내가 있었다. 초등학생 애 둘과 반려만 남겨놓고 혼자 가야 하는 상황이었다. 집은 서울, 토지문화관은 원주였으므로 왔다갔다 할 수 있는 거리로는 멀었다.
“꼭 가야겠어, 미안해.”
가족들에게, 특히 반려에게 꼭 가야겠다고 했다. 내가 진짜 작가로 살 수 있는지, 아니면 작가놀음은 그만두고 다른 일을 해야 하는지 알고 싶었다.
내가 원주로 한 달 가겠다고 하자 가족들이 굶을까봐 다들 걱정했다. 아버지는 내게 무슨 영화를 보려고 가족들을 버리고 가느냐고 혀를 찼다. 나는 입을 꾹 닫았다. 가족들을 버리는 게 아니라, 내가 내 스스로를 버릴까봐 걱정스러워서 간다는 말을 못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결혼하고 처음으로 내 방을 가졌다. 비록 한달짜리였지만, 내 공간에서 시간을 마음껏 누릴 수 있었다. 가장 좋은 건, 제시간에 차려지는 밥상이었다. 나는 남이 해 주는 밥을 먹고, 설거지도 안 하고, 글을 쓰거나 산책을 하고 작가들과 수다를 떨었다.
그때 둘째가 했던 질문이 떠올랐다.
“엄마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은 뭐야?”
“남이 차린 밥상. 걱정없이 먹을 수 있는 밥상.”
주저앉은 나를 일으킨 고마운 밥상이었고, 그 밥심이 나를 작가로 살아가게끔 마법을 부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