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개 낀 날

by 김하은

정말 해도 해도 너무한다 싶게 일이 안 풀릴 때도 있다. 마치 안개가 뿌옇게 낀 길을 걷는 느낌이다. 그런 날은 늘 하던 밥도 질거나 고두밥이 되는가 하면, 반찬도 짜거나 오묘한 맛으로 만든다. 사람의 혀에는 ‘미뢰’ 혹은 ‘맛봉오리’라고 불리는 세포가 있는데 컨디션이 안 좋거나 영양 상태가 나빠지면 맛을 느끼는 감각이 둔해진다. 특히 짠맛에 둔감해져서, 내가 적당하다고 느끼는 지점으로 간을 맞추면 다른 사람들은 짜다고 투덜거리게 된다. 미각은 나이가 들수록 둔해진다. 나이 든 사람들의 반찬에서 간이 짜게 변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 분명히 늘 하던 대로 했는데, 그게 아닐 때는 좌절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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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책을 내고 난 뒤 단편과 중편, 장편을 가리지 않고 닥치는 대로 썼다. 3년을 그렇게 썼는데, 한 편도 건지지 못했다. 지금 그 글들을 다시 보면 미련없이 버려야 할 것들이라 하드 디스크에서 지우는데, 그때는 미련이 너무 많았다. 글자 하나마다 내가 보낸 시간들이었고, 그 시간은 시댁과 반려, 아이들과 투닥거리면서 어렵게 마련한 것이었다. 미련을 끊는 법을 알지 못했고, 스스로 ‘작가’라고 불리면 안 될 것 같은 자괴감에 빠졌다.

‘토지문화관’에서 방 한 칸 작업실에 틀어박혀 그동안 썼던 글들을 고쳤다. 조금만 고치면 될 것 같은데, 다음날 자고 일어나면 수정한 부분이 거슬렸다. 다시 손을 보면 그 다음날에는 글 전체가 삐걱거렸다. 뼈대가 튼튼하지 못한 글을 수정하려면 뼈대를 튼튼하게 갖추어야 하는데, 그게 눈에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덧칠하고 덧대고, 세부 표현에만 신경을 썼다. 그러나 글 전체로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수정이었다. 마지막이라고 선언하고 틀어박힌 곳에서 진짜 글을 접어야 할 때가 왔다는 걸 깨닫고 주저앉았다.


그럼에도 시간은 흘러갔다. 집에 있을 때보다 많이 자고, 수시로 걸었다. 점심 먹고 한 시간, 저녁 먹고 한 시간, 이렇게 두 시간씩 걷는 게 일상이었다. 어떤 날은 더 멀리 산으로 올라갔다 왔고, 시간표에 맞춰 들어오는 버스를 타고 시내로 나가기도 했다. 검은 가지만 드러낸 복숭아 나무들, 구불구불한 논두렁, 3월에 내리는 눈, 그럼에도 조금씩 다가오는 봄이 나날이 변해갔다. 자연은 쉼없이 변하고 나아가는데 나는 그러지 못하고 매일 파일을 삭제했다.

그러던 어느 밤, 답답한 마음에 창문을 열었는데 오리나 거위가 내는 소리가 들렸다. 꾸웨엑 꾸웨엑, 목청껏 지르는 소리에 귀가 따가웠다. 이 밤에 쟤들은 잠도 안 자나? 투덜거리며 창문을 닫았다. 다음날 밤에도 그 소리가 들렸다. 뭔가 이상했다. 왜냐하면, 하루에 두 시간씩 산책을 나가는 길에 내가 만난 동물들은 개들과 어쩌다 닭이었는데, 오리나 거위가 저렇게 밤마다 짖으려면 꽤 많은 수라야 가능한 데시벨이었다. 도대체 어느 집에서 키우는 짐승일까?


점심 식사를 할 때 모인 다른 작가들에게 밤마다 들었던 소리의 정체를 물었다. 어떤 사람은 전혀 못 들었다고 했고, 어떤 사람은 자신도 뭔가 소리를 들었는데 거위 소리 같지는 않다고 했다. 누구 하나 딱 부러지게 대답하는 사람이 없었다. 그때 늦게 밥을 먹으러 온 소설가가 우리가 나누는 대화를 듣고 손뼉을 쳤다.

“개구리 소리?”

“엥? 개구리라고?”

“진짜?”

다들 못 믿겠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개구리 소리치고는 컸는데.”

그러자 소설가가 답했다.

“번식기인데다, 여기는 워낙 수가 많으니까.”

“많다고요?”

점심을 먹고 산책을 나가는 길에 그 소설가가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곳을 보았다. 물을 댄 논과 저수지에서 동심원을 그리며 물로 뛰어드는 개구리들이 보였다. 그 전까지 내 눈에 보이지 않았던 작은 생명이었다.

그리고 차에 깔려 죽은 개구리들도 보았다. 그들은 과연 짝짓기에 성공했을까? 아니면 다시 자기 집으로 돌아가다가 변을 당했을까? 그렇게 목숨을 걸고 내려와 밤마다 울던 개구리와 두꺼비들은 지금 어떻게 되었을까?

수정하던 글을 멈추고, 밤마다 그 소리를 들었다. 꾸웨엑 꾸웩 소리가 물결치듯 흘렀다. 시끄러운 소리가 아니라 간절한 소리로 들렸다. 나는 그들이 무사히 살아서 돌아가길 바랐고, 매년 저 소리가 이어지길 바랐다. 그리고 거짓말처럼 이야기가 다가왔다.


성체가 되면 꼬리가 떨어져야 할 두꺼비가 계속 꼬리가 떨어지지 않은 채 겨울잠에서 깨어나고, 동료들이 죽은 뒤에도 오래 살아남는 이야기를 썼다. 그 두꺼비는 이야기를 만들었고, 동료들과 숲 짐승들에게 그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다른 짐승들이 두꺼비가 만든 이야기를 들으러 왔고, 간혹 귀밝은 사람들에게 흘러간다는 내용이었다.


『꼬리 달린 두꺼비, 껌벅이』(해와 나무)는 그렇게 탄생한 이야기다. 그 이야기를 쓰면서 앞서 썼던 모든 이야기들을 지웠다. 이야기의 뼈대를 건지는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지금도 가끔 글이 잘 안 써지거나 수정이 안 되면, 그때를 떠올린다. 좌절하던 나를 이끌고 산책을 가자던 동료 작가들 덕분에 고통을 쉽게 넘겼다. 글이 잘 안 써진다고 한숨을 쉬면, 이미 여러 권의 책을 낸 작가가 깔깔 웃으면서 자기도 그렇다고 했다. 그런 걸 견뎌내거나 겪어내야 작가가 된다는 말도 들었다. 누구에게나 힘든 시간이 있고, 그 시간을 어떻게 견디는지에 따라 삶의 태도가 달라진다.


안개 낀 길을 걷고 있다 해도 언젠가는 걷히리라 믿는다. 그렇지 않다면, 프리랜서의 길이 더 고단할 것이다. 해도 해도 안 될 때, 작업이 형편없다고 핀잔을 들을 때, 정중한 거절을 받을 때, 그 일들이 모두 일어날 때, 질문을 던지라고 권한다.


“나는 이 일을 얼마나 사랑할까?”


이 일이 아닌 다른 일을 해도 된다면, 미련없이 떠나도 괜찮다면 그래도 상관 없다. 하지만 그게 아니라면, 질문을 던지자. 내가 어제 들었던 소리가 거위, 고라니, 곰 소리인지 아닌지 확인해 봐야 한다. 그리고 그 소리를 끝까지 파고 들어야 한다. 그러다 지칠 땐 따뜻한 차 한 잔을 마시고 천천히 심호흡을 한다.


“그래, 나는 또 할 거야.”


안개를 걷고 뚜벅뚜벅 걷기 시작한 내게 두고두고 고마운 책, 『꼬리 달린 두꺼비, 껌벅이』이 내게 손짓한다.

“이봐, 아직 쓸 게 남았잖아! 꾸웨엑 꾸웩!”

나는 내 눈을 뜨게 하고, 귀를 열어주고, 기다려준 가족들과 동료들을 돌아본다.


그렇게 프리랜서로 더 깊이 들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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