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엌에서 빛나는 정종

by 김하은

정종을 사랑하는 글동무가 있다. 요즘처럼 날이 차가울 때면 따끈한 정종을 데워서 먹고 싶다고 하고, 저녁 약속을 하면 수줍게 정종 한 잔 하고 싶다고 한다. 그러면 나도 어울려서 정종을 마시곤 하는데 솔직히 나는 정종을 그닥 좋아하진 않는다. 하지만 날이 차가울 때면 정종이 마시고 싶다. 간단한 안주에 뜨끈한 정종이면 추위도 무섭지 않다.


내 부엌에도 정종이 있다. 남들은 마시려고 사는 술을 나는 부엌에서 쓴다. 정종을 잘 사용하는 방법은 일식을 배울 때 익혔다.


일식을 배우면서 회칼로 생선포를 뜨고, 온갖 튀김을 하고, 생선을 조리고, 생선 초밥을 만들었다. 수업 전에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 초밥용 밥을 짓는 것이었다. 다른 종류의 초밥과 김초밥을 만들기 위해서 기초를 갖추어야 했다. 그 수업을 들으러 갈 때 내 가방에는 회칼(사시미칼)과 데바칼이 들어 있었다. 데바칼은 아시안 식도와 비슷하지만 조금 더 묵직하며 생선을 토막낼 때 주로 썼다. 그리고 회칼은 가늘고 긴 모양인데 칼날로 생선살을 한 번에 지나가야 깨끗하게 회를 뜰 수 있다.

내가 배운 과정은 일식 조리사 자격증 수업이었는데, 수업을 다 듣고 난 뒤 나는 자격증을 안 따기로 결정했다. 대신 그곳에서 배운 몇 가지 요리를 계속 써먹었다. 특히 인상 깊었던 재료가 바로 ‘정종’이었다.

초밥용 밥을 지을 때, 평소 밥보다 살짝 물을 작게 잡는다. 그러고는 계량컵으로 밥물을 떠내고 그만큼을 정종으로 넣는다. 그렇게 정종을 넣고 지은 밥은 고슬고슬하게 초밥에 딱 맞게 완성된다. 보통 묵은 쌀에서 나는 군내를 없애기 위해서 정종을 넣기도 하는데, 처음부터 밥에 정종을 더하는 방법을 썼다.


그 다음으로는 생선을 조릴 때였다. 무나 양파 등을 썰어서 냄비 밑바닥에 깔고, 손질한 생선을 그 위에 올린다. 그런 다음 불을 켜고 정종을 휘 둘려서 휘발을 시킨다. 정종이 날아가면서 생선이 갖고 있는 비린내가 감소하는데, 이 과정을 거친 다음에 물을 붓고 양념장을 끼얹는다.


마지막으로는 바로 생강술을 만드는 용도로 쓴다. 이 생강술은 고기 잡내를 없애거나 생선 비린내를 없앨 때 좋다. 끓여서 휘발할 수 있는 조리법에 보태는 게 좋다. 알콜에 생강을 담그는 것이라서 알콜은 여전히 남아 있다.

나는 생강과 계피를 좋아해서 가끔 수정과를 해 먹는데, 이때 건진 생강을 버리기 아까워서 이걸로 생강술을 만든다. 한 번 우러난 생강이니 보통 생강술의 두 배는 넣어야 한다. 그래도 이렇게 활용하면 뿌듯하다. 버릴 수 있는 재료를 다시 쓰는 기쁨이 나를 행복하게 한다. 내 부엌에는 이런 요리들이 많이 등장한다.

연일 날씨가 매섭다. 이런 날씨에 뜨끈한 정종을 마시고 싶어서 샀는데, 혹시 남는다면 생강술을 만들어 보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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