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답할 땐 매실을

by 김하은

일을 하다보면 속이 답답할 때가 있다. 나름대로 심혈을 기울여서 쓴 표현이 글 전체와 안 어울린다거나, 머릿속에 뱅뱅 맴도는 생각이 글로 표현되지 않거나, 애써 쓴 원고가 투고한 출판사에서 거절당하거나, 답답할 일은 많다.

신인일 때는 거절에 익숙하지 않았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내가 제대로 못한 부분들이 있었다. 내가 그걸 인정하지 않았을 뿐이다. 속이 답답할 때 다른 글동무들은 어떻게 하는지 물어본 적이 있다.

“한숨 자면 돼.”

“난 친구를 만나서 수다를 떨어.”

“나는 시장에 가.”

“나는 술 마셔.”

“난 담배를 한 대 펴.”

“등산! 역시 산이 최고야.”


답답한 상황을 탈피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였다. 그런데 이 방법들을 섞여서 모두 쓴다 해도 답답함이 안 풀릴 때가 있다. 자고 일어나도 답답한 상황은 해결되지 않은 채 그대로 있고, 시장을 가거나 수다를 떨어도 마찬가지다. 술이나 담배가 글을 대신 쓰지 않는 한 해결은 요원하다. 등산이라고 다르겠나. 속이 일시적으로 풀릴 뿐이다.


체해서 속이 답답하다면, 소화제를 먹거나 병원에 가야 한다. 단순히 체했다고 생각했는데 알고보면 위급한 상황의 예비 증상일 수도 있으므로 체기를 우습게 여기면 안 된다.

하지만 글쓰기가 진전되지 않을 때는 그 체기가 오래 간다. 체기뿐만 아니라 자존감까지 뚝 떨어진다.


초고는 쓰레기라는 말이 있다. 그 정도로 거칠고, 생각도 들쭉날쭉인 경우가 많다. 심지어 등장인물 이름이 바뀌는 경우도 있다. 그렇지만 일단 시작했으면 끝내야 한다. 그래야 다음이 있다. 쓰레기일지라도 그 원고가 끝을 봤다면, 거기에서 시작해서 수정한다.

“그래, 난 이 원고를 끝낸 사람이라고!”

자존감이 흔들릴 때면, 초고의 마지막 장을 본다. 그리고 진짜 내가 쓰고자 했던 이야기가 마지막 장에 드러났다면 그 기준에 맞춰서 다시 고친다. 그게 아니라면, 마지막 페이지 마지막 줄에 내가 쓰려고 했던 이야기를 정리해서 쓴다. 그걸 노려보면서 다시 수정한다.


이런 작업을 꽤 많이 했다. 하지만 여전히 초고가 온전히 통과하는 일은 없다. 나는 천재 작가도 아니고, 잘 나가

는 작가라고 보기는 애매하다. 그러나 꾸준히 쓰는 작가이긴 하다. 아무리 바쁜 상황이 생기더라도 1년에 한 권은 꼭 내려고 애쓴다.


그렇지만 여전히 속이 답답한 상황을 대면한다. 도저히 풀리지 않을 것 같아서 술 한 잔을 마실 때도 있지만, 이럴 때는 자다 깨거나 잠이 안 들거나 하는 수면 장애를 겪을 수 있다. 글의 양이 많을 경우에는 하루에 수정할 수 없어서 어느 장면까지만 진행하고 다음날로 미루는데, 그런 날에는 긴장하고 각성한 상태가 오래 지속되어서 진짜 잠들기에 애를 먹는다.

“당신이? 안 그런 것 같은데?”

내가 잠을 설쳤다고 하면 반려가 놀란다. 나보다 더 늦게까지 책을 읽다가 잠드는 반려는 내가 잠드는 시간에는 거의 거실에 있다. 내가 한 시간 가까이 잠을 설쳤다고 하면, 믿지 못한다. 예민해서 잠을 잘 못 드는 반려와 달리, 나는 베개에 머리를 대면 곧바로 잠드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수정은 나를 답답하게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즐거움을 선사한다. 처음 내가 글을 쓰고자 했던 목표를 다시 떠올리게 하고, 들쭉날쭉했던 인물들을 다시 세우고, 이야기의 중심선을 바로잡는 작업이기 때문이다.

그러다 답답한 상태가 심각하다면, 자연스럽게 아이스크림을 찾는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아이스크림은 플레인 요구르트를 사용해서 만든 것이다.


플레인 요구르트 450ml, 매실청 100ml, 꿀 2T를 섞어서 냉동실에 넣는다. 반나절 이상 얼리면 사각사각한 덩어리가 된다. 이 상태를 믹서기나 블랜더, 혹은 포크로 다시 으깬다. 살얼음이 깨지면서 살짝 부드러운 상태로 변하면 다시 얼린다. 다음날 먹으면 시원한 샤벳이 된다. 이 샤벳은 내가 원하는 대로 토핑을 바꿀 수 있다. 가장 좋은 점은 이 샤벳을 먹으면 가슴과 목이 시원해진다. 체하거나 속이 불편할 때 매실청을 한 숟갈 떠먹으면 좀 가라앉는데, 샤벳으로 만들면 일석이조다.

여름철에 먹으면 더위가 가시고, 수정이 잘 안 될 때는 한 입 먹은 다음 다시 기운 차리고 수정할 기운을 불어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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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들이 뭐라 하든, 프리랜서는 자기 자존감을 지켜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를 사랑해야 한다. 사랑하는 나 자신을 위해 속이 뻥 뚫릴 것 하나쯤은 마련해두자. 내게 매실청 샤벳이 그렇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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