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다르게 말한다 -부딪히지 않고 부딪히는 법에 대하여>
팀 회의가 시작되었다. 늘 그랬듯, 아무도 먼저 말하려 하지 않았다. 그저 눈앞의 노트북 화면을 바라보며, 정적이 채워주길 바라는 듯한 시간. 프로젝트의 수정 방향을 논의하는 자리였지만, 분위기는 처음부터 무거웠다. 팀장이 말문을 열었다.
“지난 피드백을 반영해서, 전반적인 톤을 바꿔야 할 것 같습니다. 지금 흐름으로는 너무 감성적으로 보일 수 있어서요.”
말이 끝나기도 전에 누군가가 짧게 웃었다.
그건 영희였다. 지난번 회의에서 목소리를 높였던, 그 영희.
“그러니까, 처음부터 그렇게 말했잖아요. 너무 감성에 기대면 안 된다고.”
누군가는 시선을 피했고, 누군가는 조용히 눈을 흘겼다.
팀장은 순간 멈칫했지만, 곧 아무렇지 않게 다음 말을 이었다.
“네, 그래서 이번에는 구체적인 방향 제시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고요. 각자 생각하는 이미지 방향을 간단히라도”
“생각은 많죠. 근데 어차피 정해져 있잖아요. 팀장님이 원하는 방향으로 가는 거잖아요.”
회의실의 공기가 무겁게 내려앉았다. 말이 길어질수록 멀어지는 마음들이 있었다. 지금 이 순간이 그랬다. 한솔은 고개를 숙인 채 노트북을 바라보았다. 손가락은 가만히 트랙패드 위를 맴돌았고, 마음은 갈피를 잃은 것처럼 흔들렸다.
이해를 구하기보다, 이해받지 못할 걸 두려워하는 순간들이 있다. 그때 사람들은, 말대신 침묵을 고른다. 혹은, 침묵 대신 공격을 고른다.
또 시작되었다. 또 이런 식이다. 또 조화는 멀어지고 있다. 한솔은 조용히 숨을 들이쉬었다. 이 상황, 익숙했다. 하지만 지난번과는 달랐다. 이젠, 피하고 싶지 않았다.
“…말씀드려도 될까요?”
모두가 고개를 들었다. 목소리는 작았지만, 또렷했다.
“지금… 말씀하신 내용을 들으면서, 제가 느낀 건, 방향 자체에 대한 의견 차이보다도, 서로가 충분히 말하지 못했다고 느끼는 감정이 더 큰 것 같아요.”
조용한 침묵이 다시 회의실을 덮었다. 한솔은 말을 이었다.
“영희 씨가 계속 얘기해왔던 건, 우리 브랜드의 진정성이라는 부분이고, 팀장님은 지금 클라이언트의 요구와 프로젝트 일정 안에서 타협점을 찾자는 거고요. 서로가 같은 목표를 보고 있는 건 맞는데, 방법에서 충돌이 나는 거라고 생각해요.”
팀장이 잠시 시선을 내렸다. 영희도 아무 말이 없었다.
“그래서 제안드리고 싶은 건, 이번 안건을 그냥 의견 수렴의 방향으로만 진행하는 게 아니라, 아예 우리가 어떤 기준을 가지고 결정할지, 그 기준부터 같이 만드는 건 어떨까 싶어요.”
누구도 말을 자르지 않았다. 처음으로, 서로의 말이 겹치지 않은 회의였다. 회의가 끝난 뒤, 팀장이 다가왔다.
“한솔 씨, 오늘… 고마워요.”
그 말엔 약간의 쑥스러움과, 미안함, 그리고 진심이 섞여 있었다. 영희는 따로 말은 없었지만, 나가면서 살짝 눈을 맞췄다. 예전 같으면 고개를 돌렸을 얼굴이, 오늘은 잠깐 멈췄다. 한솔은 자리에 앉아 마우스를 움직이며 문서를 열었다. 보고서 첫 문장을 쓰기 전에, 제목을 먼저 적었다.
『조율 회의안 Ver.0』
그 아래엔 작은 메모를 하나 더 붙여뒀다.
‘사람의 말을 고치는 일보다, 사람의 마음을 이해하는 일이 먼저다.’
조화는 완벽한 해결이 아니라, 어긋남을 줄이는 작은 시도들의 반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