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조화의 크기만큼 간격을 잰다

<우리는 다르게 말한다 -부딪히지 않고 부딪히는 법에 대하여>

by 이화

다음 날 아침. 사무실엔 언제나처럼 키보드 소리와 종이 넘기는 소리가 섞여 있었다. 그제 벌어졌던 일이 마치 꿈처럼, 아무 일 없었던 일상처럼 보였다. 아니, 어쩌면 모두가 애써 평온한 척하고 있는지도 몰랐다. 누군가는 아무렇지 않게 팀장과 대화를 나눴고, 누군가는 영희의 자리 옆을 조심스럽게 지나갔다. 내가 앉은 자리엔 어제보다 더 많은 햇살이 들어왔다. 햇빛이 창에 반사돼 책상 위에 부서졌다. 한솔은 조용히 자리에 앉아, 모니터 전원을 눌렀다. 모니터가 켜지는 동안, 마음 한구석이 잔잔히 흔들렸다. (그날 이후로 세상이 바뀐 건 아니었다. 회의실에 따뜻한 햇살이 들이쳤던 그 날 이후로, 바뀐 건 오직 나였다.)


커피를 따르던 손이 멈췄다.


“한솔 씨.”


익숙한 목소리. 어제 회의에서 가장 먼저 목소리를 높였던 선배였다. 한솔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어제, 중재한 거. 그거… 좀 의외였어요.”


무표정한 얼굴, 하지만 담긴 어조는 가볍지 않았다.


“늘 조용해서, 그냥 피하려고만 하는 줄 알았는데.”


한솔은 웃지 않았다. 그 말이 틀리지 않아서, 더 아팠다. 맞는 말이었다. 그동안은 늘 그렇게 피했고, 침묵했으니까.


“…저도 몰랐어요. 제가 그렇게 말할 줄은.”


선배는 고개를 끄덕이며 컵을 내려놓고 자리를 떴다. 그 말엔 칭찬도, 비난도, 격려도 없었다. 그저 지나가는 말처럼 보였지만, 한솔에게는 그 말이 또 하나의 물결처럼 밀려들었다. (변화를 선택하면, 어떤 사람은 그걸 낯설어하고 어떤 사람은 아무 말 없이 넘어가고 또 어떤 사람은 모르는 척한다.)


한솔은 창가 쪽을 향해 의자를 돌렸다. 창밖으론 햇살이 미세먼지처럼 흩날리고 있었다. 어제보다 조금 덜 시끄러운 세상이었다. 아니, 어쩌면 내가 세상을 향해 조금 더 귀를 열게 되었는지도. 그리고, 그 작은 균열 속에서 또 하나의 결심이 생겼다. (앞으로는 회사를 포함해서 내가 속해 있는 어떤 공간이라도 사람들의 말이 부딪힐 때마다 그 말을 하나씩 세어보고 싶었다.)


어떤 말은 감정이 앞서 있었고, 어떤 말은 듣고 싶은 말이 아니어서 튕겨 나갔고, 어떤 말은 표현이 서툴러서 미움처럼 들렸던 거였다. 그걸 한 번쯤은 정리하고, 다시 들여다보는 사람. 그런 사람이 되는 일. 조화는 누군가에게 맞추는 일이 아니었다. 각자의 간격을, 각자의 입장을, 서로가 조금씩 물러나며 이어보는 일이었다.


이해받지 못하더라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어쩌면 그런 날도 있을 테니까. 어쩌면, 어제처럼 조용한 온기가 찾아오는 날도 또 한 번 올 테니까. 한솔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스스로에게. 그날 이후, 나는 ‘무엇이 맞는가’보다 ‘어떻게 맞춰갈 것인가’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건, 생각보다 조용한 일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작가의 이전글1화, 시끄러운 세상 속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