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말하지 않아도, 알아간다는 것

<우리는 다르게 말한다 -부딪히지 않고 부딪히는 법에 대하여>

by 이화

회의 다음 날, 회사는 또 평소처럼 흘러갔다. 하지만 어제의 그 회의실, 어제의 그 침묵과 그 말들. 그건 쉽게 잊히지 않았다. 점심시간이 지나고, 영희가 한솔 자리 앞에 잠깐 멈췄다. 무슨 일인가 싶어 고개를 들자, 그녀는 말을 꺼냈다.


“커피… 한 잔 괜찮아요?”


예상하지 못한 제안이었다. 한솔은 잠시 머뭇거리다 고개를 끄덕였다. 작은 회의실 옆, 자판기 앞의 좁은 탁자에 마주 앉았다. 사람들이 드나드는 복도 끝에서, 두 사람 사이에 놓인 커피가 김을 피웠다.


“어제… 고마웠어요.”


말이 나오기까지 시간이 꽤 걸렸다. 그 말은 부드럽지도, 아주 진심 같지도 않았지만, 그래서 오히려 더 솔직하게 들렸다.


“제가 좀… 예민했죠. 계속 내 말은 아무도 안 들으려고 한다는 생각만 하게 돼서.”


영희는 고개를 돌린 채 컵을 매만졌다. 한솔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근데 한솔 씨 말 듣고 나니까, 그냥 서로 말이 잘 안 맞았던 거 같기도 하고… 그걸 누가 정리해주는 것만으로도 다르게 느껴지긴 하네요.”


한솔은 작게 웃었다.


“그냥… 저도 답답했어요. 다들 뭔가 말하고는 있는데, 그게 닿질 않아서요.”


영희는 컵을 들어 올렸다가 내려놓았다.


“앞으로 회의 때… 그 ‘기준 정하기’ 얘기, 계속 해봐요. 우리가 뭘 중요하게 여기는지를 정하는 게, 어쩌면 제일 먼저였을지도 모르니까.”


한솔은 이번엔 조금 더 크게 웃었다. 영희는 조용히 일어섰다.


“그거… 되게 한솔 씨 같네요.”


“네?”


“뭔가… 조용히 정리하면서 중심 잡는 거요. 뭘 막 주장하진 않는데, 말하면 딱 맞는.”


그 말에 한솔은 무어라 대답하지 못했다. 말 대신, 고개를 깊이 숙여 컵을 바라봤다. 영희가 자리를 뜨고, 커피는 조금 식어 있었다. 하지만 마음속 어딘가는, 그 온기를 아직 기억하고 있었다. 한솔은 다시 자리로 돌아와, 메모장을 열었다. 한 줄씩, 마음속을 정리하듯 써내려갔다.


『조화일지 01』

사람의 말을 고치는 일보다, 사람의 마음을 이해하는 일이 먼저다.

조화는 완벽한 해결이 아니라, 어긋남을 줄이는 작은 시도들의 반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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