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말이 없던 날, 마음이 움직였다

<우리는 다르게 말한다 -부딪히지 않고 부딪히는 법에 대하여>

by 이화

퇴근길, 한솔은 집으로 곧장 가지 않았다. 돌아가는 길목에 있는 작은 카페에 들어섰다. 낮은 조도의 조명, 잔잔한 음악, 조금은 서늘한 냉기. 이런 공간에서 혼자 앉아 있는 걸, 그는 좋아했다. 창가 자리에 앉아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한 모금 마셨다. 머리가 가볍게 맑아지는 느낌. 의자는 약간 삐걱거렸고, 옆자리엔 두 여자가 앉아 있었다. 대화는 조용했지만, 가끔 들릴 정도로 감정이 실려 있었다.


“그러니까 너는, 항상 내 말 다 무시하잖아.”


“무시하는 게 아니라니까, 그냥 나는 그렇게 생각한 거고…”


“아니, 네가 나한테 하는 말투가 문제라고.”


한솔은 듣지 않으려 했지만, 어딘가 익숙했다. 그 말들. 그 공기. 그 온도. 낯선 누군가의 말임에도, 한때는 나도 저런 대화를 했던 것 같았다. 누군가가 내 말투에 상처받았고, 나도 그 사람의 말이 아프게 꽂혔던.


두 사람은 말을 잇지 못하고 서로 다른 방향을 바라보았다. 한 명은 손톱을 물어뜯었고, 다른 한 명은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아무도 사과하지 않았지만, 둘 다 미안해 보였다. 그 미묘한 공백 속에 커피 향이 맴돌았다. 한솔은 시선을 창밖으로 돌렸다. 가로등 아래, 누군가가 연신 휴대폰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정지된 장면처럼 고요한 풍경이었지만, 그 안엔 분명 무수한 감정이 움직이고 있었다. 카페를 나서며, 한솔은 생각했다. 사람들은 말로 상처를 주고, 말로 풀어보려 한다는 것. 그 말이 너무 많으면 서로를 잃고, 너무 없으면 오해만 남는다는 것이다.


그날 밤, 한솔은 오랜만에 일기를 꺼냈다. 회의록도 아니고, 기획안도 아닌 진짜 자기 자신을 위한 기록.


『조화일지 02』

우리가 어떤 말을 하느냐보다, 무슨 마음으로 듣느냐가 먼저일지도 모른다.

조화는 함께 말하는 법을 배우는 일이기도 하지만, 함께 침묵하는 순간을 견디는 일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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