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 술잔을 채우는 말, 비우는 말

<우리는 다르게 말한다 -부딪히지 않고 부딪히는 법에 대하여>

by 이화

금요일 저녁, 작은 식당. 자리에 앉은 사람들 앞엔 삼삼오오 술잔이 놓였다. 불판 위 고기가 지글거렸고, 맥주잔이 부딪히는 소리가 시끄러웠다. 누군가는 웃었고, 누군가는 웃는 척했다. 모두가 즐거운 척은 하고 있었다.


“자자, 한잔 돌리자고요. 영희 씨부터!”


팀장이 분위기를 띄우려 했고, 영희는 가볍게 웃으며 잔을 들었다. 한솔도 조용히 잔을 채웠다. 그리고 다시 누군가가, 평소보다 조금 큰 목소리로 말했다.


“아 근데 있잖아요, 우리 이번 프로젝트 솔직히 좀 이상했잖아요. 그쵸?”


술기운이 돌기 시작한 듯했다. 공기의 밀도가 바뀌었다.


“아니 그러니까, 다들 생각은 있는데, 왜 회의 때는 말을 안 해요? 그럼 또 누가 떠안잖아. 결국엔 누가 욕먹는 건데.”


정확히 누구를 향한 말인지는 애매했다. 그래서 더 위험했다.


말이 술에 섞이면, 감정은 선을 넘는다. 사람들은 그걸 ‘본심’이라 부르기도 하고, ‘실수’라고 모면하기도 한다.


영희가 고개를 돌렸다. 조용히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한솔은 그 장면을 알아봤다. 익숙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평온했던 얼굴이 속으로 접히는 그 찰나의 공기.


“그냥 다들 눈치만 보고 있는 거 아녜요?”


누군가가 덧붙였고, 그 말엔 웃음이 따라붙었다. 하지만 웃은 사람은 없었다.


“저기요.”


한솔이 입을 열었다. 이번엔 그 누구보다 또렷하게.


“혹시, 지금 분위기 좀 무거워졌다는 거… 알고 계세요?”


그 말에 몇몇이 고개를 들었다. 한솔은 웃지 않았다. 잔을 내려놓은 채, 천천히 말을 이었다.


“오늘은 그냥... 고기 먹으려고 온 거잖아요. 프로젝트 얘기는, 평소처럼 회의 때 해도 되잖아요. 서로 서운한 거 있으면 말해야 하는 건 맞지만, 이렇게 돌려 말하면… 아무도 뭘 고쳐야 할지 몰라요.”


조용해졌다. 술잔을 들던 손이 멈췄다. 누구도 대꾸하지 않았고, 잠시 뒤 팀장이 머쓱하게 웃으며 고기를 뒤집었다.


“그래요. 한솔 씨 말 맞네요. 오늘은 그냥… 편하게 먹읍시다.”


다시 고기 굽는 소리. 고요한 반성이 아니라, 작은 방향 틀기의 순간. 누군가는 물을 마셨고, 누군가는 조용히 소주를 따랐다. 회식이 끝난 뒤, 한솔은 지하철 플랫폼에 앉아 메모 앱을 열었다. 손가락이 빠르게 움직였다. 말은 남지 않지만, 마음은 남길 수 있다는 믿음으로.


『조화일지 03』

사람들은 웃으며 넘기지만, 마음은 꼭 그 자리에 멈춰 서 있기도 한다.

조화는 때때로, 분위기를 바꾸는 한마디에서 시작된다.

침묵을 깨는 게 아니라, 사람들 사이의 온도를 돌려놓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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